“오이는 어디에 들어갈까”…맛지도 만들며 식재료와 친해지기

한겨레 2025. 6. 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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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식습관 개선하려면
미각은 경험을 통해 학습되고 발달하는 능력
돌 전후부터 7살까지의 미각 교육 매우 중요
음식 주제로 한 공간에서 다양한 체험해보기
관찰 및 나만의 맛지도·레시피 만들기 추천
특정 식감을 거부하는 아이들에게는 질감 단계별로 접근해보자. 재료를 갈고, 다지고, 작게 썰어 맛보게 하고, 마지막으로 원래 형태로 맛보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황주형씨 제공

편식이 심하거나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아이를 먹이느라 식사 때마다 고군분투하는 보호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음식 앞에서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질끈 감고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편식이나 음식 거부의 원인을 미각 발달과 감각 경험의 부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각은 고정된 감각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학습되고 발달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시작하는 실천적 미각 교육

돌 전후부터 7살까지의 시기는 아이의 미각이 급속도로 확장되는 황금기로, 이때 형성된 식습관은 평생에 걸쳐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현대 아이들이 단맛과 짠맛이 강한 가공식품에 조기 노출되면서 자연 재료 본연의 맛을 경험할 기회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 조미료에 길들여진 미각은 쓴맛, 신맛, 감칠맛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새로운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기 쉽다.

미각은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는 능력이 아니다. 다양한 감각에 열린 태도, 자신의 몸 상태를 인식하는 능력, 새로운 경험에 대한 수용력과도 직결된다. 이는 곧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기초 체력이 된다.

미각 교육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일상 속 소소하고 꾸준한 실천이 훨씬 도움이 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황주형씨(43)는 평소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단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려고 애쓴다. 이때 식사를 다 먹어야 호떡, 붕어빵 등의 탄수화물을 주는 방식으로 먹는 순서를 제한하며 일상 속 식습관을 실천한다. 새로운 식재료나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면 ‘딱 하나’는 먹어본 후 먹을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도시락을 쌀 때 시각적으로 예쁘게 꾸미고, 평소 잘 안 먹던 음식을 하나 정도 넣어주는 것도 아이의 마음을 여는 팁이다.

이외에도 일상에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이 있다. 영유아기에는 기본 감각을 깨워주면 좋다. 예를 들어 미각 탐정 놀이는 아이의 미각적 흥미를 자극하는 활동이다. 아이의 눈을 가린 후 서로 다른 과일이나 채소를 작은 조각으로 먹여주고 맞히게 한다.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달콤한 정도가 어떤지” “씹을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혀끝에서 어떤 느낌인지”를 표현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새로운 과일이나 채소를 소개할 때는 먹기 전에 충분히 관찰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당근은 어떤 색깔이지?” “손으로 만져보니 어떤 느낌이야?” “냄새를 맡아보자” 순서로 진행한 후 마지막에 맛보기를 한다. 시각, 촉각, 후각이 먼저 경험되면 미각에 대한 거부감이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

5살 이상이면 조금 더 심화된 미각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나만의 맛 지도 만들기’는 아이가 먹어본 음식들을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매운맛의 5가지 기본 맛으로 분류해서 그림이나 스티커로 정리하는 활동이다. “오이는 어떤 맛 구역에 들어갈까?” 하며 함께 토론하고 기록해보자. 요리 놀이도 추천한다. 간단한 요리를 함께 하면서 재료의 변화를 관찰하자. 양파를 생으로 먹을 때와 볶았을 때의 맛 차이, 당근을 날것으로 먹을 때와 삶았을 때의 식감 변화 등을 함께 경험해보자.

마지막으로 나만의 레시피를 개발해보는 것도 좋다. 이때 아이가 좋아하는 요리에 새로운 재료를 한 가지씩 추가해보는 실험을 해보자. 김치볶음밥에 단호박을 넣어보거나, 샐러드에 견과류를 추가하는 식으로 스스로 맛의 조합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특히 친구들과 함께하는 요리 활동으로 사회성 발달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귀엽고 재미있는 도시락에 아이가 낯설어하는 식재료 하나를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다. 황주형씨 제공

재미있는 교육 활동으로 식습관 개선

식습관을 주제로 한 체험이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아이의 식습관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일례로 경기도 구리시는 오는 6월16일에 갈매건강생활지원센터에서 성장기 유아의 편식 예방을 위한 체험형 건강 식생활 프로그램 ‘영양 놀이터’를 진행한다. ‘오이’를 주제로 12개월에서 36개월 사이의 유아와 보호자 8개 팀을 대상으로 한다. 프로그램은 오이 관찰과 성장 과정 이해, 연필꽂이 만들기, 오이 카나페 요리 등으로 구성된다. 오이를 직접 만지고 요리 등을 만들어가는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음식을 주제로 한 공간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식재료와 친해지는 하루를 보내도 좋다. 전북 순창에 위치한 순천발효테마파크는 ‘발효 여행 순창’을 주제로 어린이 동반 가족들의 교육과 놀이, 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국내 유일의 발효 종합 문화공간이다. 다양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놀면서 발효음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친숙해질 수 있다. 발효 미생물 프로젝트(간장 만들기), 발효 쿠킹 클래스 등 음식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참여해볼 만하다. 순창발효테마파크에 대한 자세한 내용 확인 및 클래스 신청은 누리집(sftp.or.kr)에서 할 수 있다.

아이의 식습관 변화에서 가장 강력한 변수는 보호자의 태도다. 함께하는 어른들의 식사 태도, 말투, 반응 하나하나가 아이의 감각 기억에 각인된다. 황주형씨 제공

보호자의 태도가 만드는 식탁 분위기

아이의 식습관 변화에서 가장 강력한 변수는 보호자의 태도다. 함께하는 어른들의 식사 태도, 말투, 반응 하나하나가 아이의 감각 기억에 각인된다. “이건 네가 싫어할 텐데” “안 먹으면 혼난다”와 같은 부정적 언어는 맛보다 감정적 불쾌감을 먼저 자극한다. 반면 “어떤 색깔이 제일 예뻐?” “입에 들어가면 어떤 기분이 들어?”처럼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은 아이의 감각을 깨우고 주체적 선택을 유도한다.

한편, 아이의 편식을 교정해야 할지, 존중해야 할지는 많은 부모가 고민하는 지점이다. 전문가들은 편식이 성장과 영양에 실질적 영향을 주는지 먼저 판단하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특정 식품군을 아예 거부하거나 식사 자체를 회피하는 수준이라면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부 음식에 대한 기호 차이는 성장과 함께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편식을 무조건 ‘나쁜 습관’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감각 발달의 일부로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다만, 흔하게 일어나는 식습관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의 가이드를 갖고 있으면 좋다. 한두 입을 먹다가 멈추는 입 짧은 아이에게는 소량을 자주, 다양한 형태로 제공해보자. 식사 30분 전에 간식으로 새로운 재료를 소개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과 섞어서 제공해보면 좋다. 이때 식사량보다는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데 집중해보자.

음식의 겉모습만 보고 거부하는 아이에게는 같은 재료를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형해 제공하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는 갈아서 수프로 만드는 방식이다. 좋아하는 색깔 재료와 함께 조리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모양 틀이나 캐릭터 도시락으로 시각적 재미를 더해봐도 좋다.

특정 식감을 거부하는 아이들도 많다. 이럴 때는 질감 단계별로 접근해보자. 해당 재료를 갈아서 만든 음식부터 익숙하게 만들고, 다음 단계로는 다져서 제공하고, 이후에는 작게 썰어 맛보게 하고, 마지막으로 원래 형태로 맛보는 방식이다.

아이와 부모님이 함께하는 편식 예방 영양놀이터 포스터. 구리시 제공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

결국 아이의 미각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오늘 당장 브로콜리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가 아니다. 브로콜리를 보고도 울지 않게 되었다면, 손으로 만져보았다면, 향을 맡아보았다면 그 모든 것이 소중한 진전이다.

부모의 조급함 대신 아이의 리듬을 기다리는 여유, 완벽한 식단 대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진정한 미각 교육의 시작점이다. 매일의 식사가 작은 감각 실험이 되고, 맛있는 실패와 발견이 쌓여갈 때, 아이는 어느새 건강하고 풍요로운 식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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