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 서훈 승격해야"
"공적에 맞게 훈격 재평가" 상향 여론
진천군 1급 대한민국장 승격 추진
지역 기관·단체 동참 범 도민운동 승화
"독립운동가 정당한 평가는 후손 의무"

‘헤이그 특사’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의 서훈을 승격하자는 운동이 그의 고향 충북 진천에서 불타오르고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진천군이 시동을 건 운동은 충북지역 기관·단체들의 적극적인 동참 아래 범 도민 운동으로 확산하고 있다.
진천군은 9일 생거진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충북도교육청과 보재 이상설 선생 서훈 승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양 기관은 서훈 승격의 당위성을 알리는 교육,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펼치기로 했다.
윤건영 충북교육감은 “독립운동의 초석을 다진 선생의 서훈을 업적에 걸맞게 재조정하면 자라나는 세대의 독립 정신을 고취하고 보훈 교육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설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2급)으로 추서됐다. 독립운동가 등에게 추서되는 건국훈장은 1~5등급으로 나뉜다. 지역과 역사학계에서는 선생의 서훈이
공적에 비해 낮게 평가됐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때문에 역사적 재평가와 함께 서훈을 1등급인 대한민국장으로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진천군은 지난 2월 이상설기념관에서 열린 독립운동 기념 행사에서 선생의 서훈 승격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진천군의회에서는 서훈 상향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냈다. 민간 조직인 ‘이상설 선생 서훈 승격 추진위원회’도 발족했다.
충북지역 지자체·의회의 동참도 이어졌다. 지난 3월 여야 구분없이 도내 모든 시장·군수들이 서훈 승격 공동건의문을 채택했다. 이어 충북도의회도 등급 상향 촉구 건의안을 채택, 중앙 부처와 각계에 전달했다.
범도민 릴레이 캠페인도 지난 2일 송기섭 진천군수를 첫 주자로 시작됐다. 다음주자로 지목된 사람이 서훈 승격을 염원하는 피켓을 들고 사진 촬영을 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인증하는 방식이다. 민간 단체를 중심으로 온·오프라인 도민 서명 운동도 이어져, 현재 2만 여명이 참여했다.
진천군은 도민 서명부 등을 토대로 국가보훈부에 서훈 상향 민원을 공식 제기할 방침이다. 아울러 국회 국민동의청원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군은 상훈법상 동일 공적에 대한 승격이 어려운 점 때문에 추가 서훈을 통해 등급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할 참이다. 상훈법 개정 건의도 준비하고 있다.
그 동안 대한민국장으로 서훈이 상향된 사례는 여운형(2005년), 유관순(2019년), 홍범도(2021년) 등 3명 뿐이다. 여운형·홍범도 선생은 정부 주도로,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100주년 때 국민적 여론에 힘입어 추가 서훈된 바 있다.
진천군은 범 도민 운동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선생의 업적을 재평가하면 추가 서훈이 가능하다고 본다. 선생은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유고나 유품 등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다. 선생은 이국 땅에서 임종할 당시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을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말라”고 유언했다. 동지들은 유언대로 시신과 유품을 화장해 아무르강에 재를 뿌렸다.
송기섭 군수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정당한 평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후손의 의무”라며 “도민들의 염원을 모아 광복 80년을 맞은 올해 선생 의 서훈 승격을 꼭 이루겠다”고 말했다.
진천=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이상설(1870~1917) 선생은

1870년 12월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 때 벼슬을 버리고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초기 독립운동의 기틀을 닦았다. 그의 업적에는 최초란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1906년 간도 지방에 최초 민족교육 기관인 ‘서전서숙’을 세워 항일 민족교육을 이끌었다. 북만주에 해외 독립운동 기지 ‘한흥동’을 개척하고, 동포와 만든 ‘성명회’를 통해 일제 규탄에 앞장섰다. 상하이 임시정부보다 5년이나 앞선 1914년 해외 첫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우기도 했다.
27세에 성균관장을 지낸 그는 수학 물리 외국어에도 능통한 신학문의 선구자였다. 고종은 국외 망명 생활을 하던 그를 네덜란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할 ‘헤이그 특사’ 대표로 임명했다. 이준·이준위 선생과 함께 헤이그 특사로 나선 선생은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세계 곳곳에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알렸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북한 우표서 사라진 '남북정상회담'… 이재명 정부 땐 부활할까 | 한국일보
- 장남 결혼식 '소년공 친구' 초대…李 대통령, '울컥' | 한국일보
- 가수 윤딴딴, 결혼 중 외도·폭행 인정… "자아 잃고 자존감 낮아져" | 한국일보
- 대선 끝나도 잊히길 거부하는 김문수... 아른거리는 당권의 유혹 | 한국일보
- BTS가 '도쿄를 다시 위대하게'?...日극우 모자 쓴 정국 사과 "즉시 폐기" | 한국일보
- [르포] 트럼프 생일날... LA 메운 분노의 함성 "미국에 왕은 없다, ICE는 나가라" | 한국일보
- 이재용의 '이재명 자서전' 고백 후 빵 터진 구광모…첫 만남은 화기애애 | 한국일보
- '올해 73세' 박영규, 25세 연하 미모의 아내 최초 공개 | 한국일보
- "신세계 회장 장녀가 아이돌 데뷔? 母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죠" | 한국일보
- '친윤보수'는 14%뿐… '이민 확대'엔 이념 관계없이 우려 높아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