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진학 디자인] 불안한 출발 고교학점제, 여러 모순에 대한 보완 필요하다

이석수 기자 2025. 6. 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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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권 대륜고 교감
곽병권 대륜고 교감

올해부터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우리 교육계의 큰 전환점이다. 그러나 시행 전부터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따라 원래 2022년 도입 예정이었던 정책이 3년 미뤄져 2025년부터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기초소양과 기본학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게 과목을 선택하고, 일정한 이수 기준을 충족하면 학점을 취득해 졸업하는 제도다. 이수 기준은 해당 과목의 출석률이 2/3 이상이고 성취율이 40% 이상일 때 충족되며, 졸업을 위해서는 3년 동안 192학점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기존의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1단위 수업량이 17회였지만, 고교학점제는 1학점당 수업량이 16회로 줄었다. 또한 모든 과목을 학기 단위로 편성해야 하며, 이는 기존의 학년제와 학기제를 병행하던 방식에서 벗어난 변화다.

제도의 설계 자체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완화하고 선택권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취지가 왜곡되거나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 문제점들을 하나씩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과도한 진로 조기 결정 요구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선택권 확대와 진로 맞춤형 교육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이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만든다.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진로에 맞춘 과목 선택을 준비해야 하기에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해 많은 교사들은 학교 교육은 진로 준비를 넘어 사회성, 비판적 사고, 인격 형성 등 전인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두 번째는 학생들의 내신 부담이 오히러 심화된다는 점이다.
고교학점제는 기존의 9등급 상대평가에서 5등급으로 바뀌며 학생들의 내신 부담을 줄일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위권 대학이나 의학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한 과목이라도 2등급을 받으면 내신에 큰 타격을 입게 되어 부담이 더 커졌다. 이는 고등학교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생 수가 적은 학교는 등급을 확보하기 어려워 선택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있다. 예를 들어 학년 인원이 300명인 학교에서는 1등급인 학생이 30명인 반면, 200명인 학교에서는 20명에 불과해 불균형이 발생한다.

세 번째는 실효성 없는 선택권 확대다. 학생들의 교과 선택권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에서는 오히려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학생들은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자신의 진로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과목이나 많은 학생이 선택하는 과목을 고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상위권 학생들이 집중하는 어려운 과목은 경쟁이 치열해 회피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고교학점제의 본래 취지와는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끝으로 수능과의 괴리 문제다.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맞춰 수능도 절대평가로 개편되어야 하지만, 교육부는 2028학년도 수능에서 다시 상대평가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선택과목제를 폐지하고 모든 학생이 동일한 과목을 응시하도록 하여 선택과목으로 인한 유불리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내세웠지만, 이는 고교학점제와의 철학적 불일치를 드러낸다.

특히 수학영역에서는 기존의 수학Ⅰ과 Ⅱ,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중에서 선택하던 방식을 폐지하고, 대수(기존 수학Ⅰ), 미적분Ⅰ(수학Ⅱ), 확률과 통계를 모두 공통으로 응시하게 된다. 자연계 학생들이 주로 응시하던 미적분과 기하 과목은 수능에서 제외되었다. 탐구영역도 마찬가지로, 기존에는 17개 과목 중 2과목을 선택했으나 이제는 통합사회1·2와 통합과학1·2를 모두 응시해야 한다. 이는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의 내용을 기준으로 상대평가를 시행한다는 점에서 평가 신뢰성과 변별력 모두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 개개인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교육을 통해 교육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현재의 제도 운영 방식은 본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조속히 시행착오를 진단하고,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정교한 보완이 필요하다. 교육정책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성장과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 방향성이 교육 현장의 목소리와 괴리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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