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믿음으로 참패 기억 지운 롤랑가로스의 새 여왕 21세 코코 고프

김종석 2025. 6. 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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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나이로 프랑스 오픈 여자 단식 정상에 선 코코 고프. 3년 전 결승 완패의 충격에서 벗어난 그는 독실한 신앙심도 경기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한 21세 코코 고프(미국)는 구원이라는 단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2022년 프랑스 오픈 여자 단식 결승을 앞두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의 긴장감에 시달렸습니다. 경기 전에는 울기까지 했습니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다툰다는 극심한 압박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첫 세트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자신과의 싸움에서 무너진 그의 경기 결과는 안 봐도 뻔했습니다.

고프는 당시 세계 랭킹 1위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에게 0-2(1-6, 3-6)로 완패한 뒤 다시 눈물을 쏟았습니다.

3년이 흘러 다시 프랑스 오픈 결승에 오른 고프는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세계 랭킹 2위 고프는 현 세계 1위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를 2시간 38분 접전 끝에 2-1(6-7<5-7>, 6-2,  6-4)로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2023년 US 오픈 우승 이후 개인 통산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안은 고프는 우승 상금 255만 유로(약 40억 원)를 받았습니다.

세계 언론은 고프가 미국 남녀 선수를 통틀어 2015년 서리나 윌리엄스 이후 10년 만에 메이저 대회 단식 챔피언으로 등극한 사실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고프는 2002년 윌리엄스 위후 미국 선수로는 최연소 프랑스 오픈 우승자라는 기록도 남겼습니다.


<사진> 강력한 서브를 넣고 있는 고프. 롤랑가로스 홈페이지

미국은 유럽과 함께 세계 테니스를 양분하는 초대형 시장이지만 지난 10년 동안 스타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이제 고프가 미국 테니스를 이끌 차세대 여왕에 오를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이미 고프는 지난해 연간 476억 원의 수입을 올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여자 운동선수에 등극했습니다. 이번 우승을 통해 그의 은행 잔액은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고프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3년 전 결승에서 졌을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예전에는 경기에서 지면 세상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패한 다음 날에도 해가 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많은 사람이 결승에서 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일들을 인생에서 마주한다. 결승에 오른 것만으로 행운이고 특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발렌카를 맞아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패할 때만 해도 고프의 승산은 적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2세트 들어 놀라운 회복력으로 베이스라인 플레이의 정확도를 높인 끝에 상대 서브 게임을 3차례나 브레이크했습니다.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고프는 강약 완급을 조절한 영리한 플레이로 사발렌카의 실수를 유도한 끝에 승리를 마무리했습니다. 

사발렌카는 준결승에서 대회 4연패를 노리던 시비옹테크를 제압했지만,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한층 성숙한 고프의 벽을 뚫지는 못했습니다.


<사진> 경기를 마친 뒤 기도하고 있는 고프. 

고프는 탁월한 운동력뿐 아니라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통해 새로운 도전의 발판으로 삼고 있습니다. 프랑스 오픈 우승 직후 그는 소셜 미디어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10대 중반에 이미 스타성을 인정받은 그였기에 자신을 향한 지나친 기대감은 부담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신앙심을 바탕으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코트에서도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2023년 US 오픈에서 우승한 후 그녀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달 마드리드오픈 결승에서 패해 2위에 머문 뒤 그는 “먼저 저의 주님이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이 자리에 계셔서 결승전에서 뛸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다”라는 감사 표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이런 종교적인 행동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견해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내 신념을 공유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우리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에게는 그것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이 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또한 다른 누군가의 삶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진> 고프가 프랑스 오픈 우승 후 공개한 메모지. 롤랑가로스 홈페이지

고프는 프랑스 오픈 우승 직후 메모 한 장을 공개했습니다. 작은 종이에는 빼곡하게 손 글씨로 ‘나는 2025년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할 것’이라는 글을 8차례나 반복해 적었습니다. 그는 
“가브리엘 토머스가 이렇게 한 것을 봤다. 나도 똑같이 해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하버드대 출신의 ‘석사 스프린터’로 화제가 된 토머스(미국)는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육상 여자 200m 포함 육상 3관왕에 올랐습니다. 토머스는 200m 금메달을 따낸 뒤 “이전부터 자신이 200m 올림픽 챔피언이 되겠다”라는 메모를 써왔다고 밝혔습니다. 

AI에 고프의 프랑스 오픈 의미를 밝혀달라는 질문을 했더니 “구원, 회복력, 믿음의 힘에 관한 이야기”라는 답을 하더군요. 근육질의 파워 테니스를 구사하는 사발렌카에 대한 기술적 어려움, 3년 전 프랑스 오픈 결승 완패의 트라우마라는 정신적 장애물에 맞선 고프는 신앙심과 긍정적인 태도로 롤랑가로스의 적갈색 코트를 정복했습니다.

이제 다음 여정은 윔블던의 파란 잔디일까요. 올해 프랑스 오픈은 그가 앞으로 써 내려갈 숱한 이야기 가운데 그저 한 단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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