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해바라기 ‘경관농업’ 처음 일궈… 年100만명 찾는 ‘핫플’ 만들었다[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어머니가 조성한 농지 물려받아
대기업 임원 관두고 33년前 귀농
첫해 수박농사 대실패후 빚더미
관광농원 변신했지만 적자 신세
청보리·메밀 심자 관광객 몰려와
귀농 10년만에 축제 권유 ‘봇물’
계절마다 품종 달리해 축제 열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촬영 화제

고창 = 박팔령 기자
“영화 ‘자이언트’(1957년)와 ‘에덴의 동쪽’(1957년)을 보고 미국 서부 개척지처럼 드넓은 광야를 꿈꿨죠.”
노령산맥 끝자락, 43만㎡(13만 평)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는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鶴苑)농장’. 축구장 40여 개 넓이인 이곳은 언뜻 보면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 막시무스 집이 있던 이탈리아 토스카나 들녘 같기도 하고,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을 것 같은 제주의 평원 느낌도 난다. 봄이면 여기서 청보리밭 축제가 열린다. 여름이면 해바라기, 가을엔 메밀꽃이 만개한다. 청보리가 절정에 달하기 전인 4월 초엔 아름다운 유채꽃이 피어 본격적인 봄을 알린다. 한가롭고 이국적인 목초지대를 연상시키는 덕에 유명 드라마와 영화, CF의 단골 배경이 되고 있다. 특히, 최근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주인공 애순과 관식이 주로 여기서 데이트를 하며 첫 키스를 나눴다. 제주의 유채꽃밭에서 촬영된 줄 알았던 시청자들은 ‘깜빡 속았수다’다. 대한민국 ‘경관농업(景觀農業)’의 발상지인 이곳을 전국적 명소로 만들어 한 해 100만 명의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며 고창군 일대 지역경제를 살리고 있는 진영호(78) 대표를 지난달 23일 학원농장에서 만났다.
◇금수저에서 농부로= 진 대표는 사실 누가 봐도 ‘금수저’ 패밀리 출신이다. 4선(8·9·11대 고창 지역구, 12대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제5공화국 시절 민주정의당 대표(1983년)에 대한민국 17대(1983년 10월~1985년 2월) 국무총리를 역임한 진의종(1995년 작고) 전 총리가 부친이다. 진 대표도 명문 경복고(1966년)와 서울대 농경제학과(1971년)를 졸업한 엘리트다. 40대에 귀농하기 직전까지 대기업 이사도 지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금수저로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진 대표는 1960년대 학원농장 창업주인 모친 이학(李鶴·2004년 작고) 여사와 청소년기에 함께 봤던 영화(자이언트·에덴의 동쪽)에 대한 추억을 시작으로 자신이 경관 농부로 변신한 스토리를 풀어냈다. 진 대표의 모친은 “우리 둘이 이곳에 영화에 나올 법한 멋진 농장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농업을 전공하게 된 것도, 귀농을 선택하게 된 것도 모두 어머니의 제안을 생각해서였다.
어머니는 실제 농지를 조성하는 결단을 보였다. 1960년대 초 가계 살림을 버틸 요량으로 개간된 구릉지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지형상 아래 전답 주민들이 토사가 무너지고 황토물이 흘러든다며 매입을 요구한 이유도 있었다. 진입도로조차 없던 시골 전답인지라 농지 가격이 싸기도 했지만 민원을 거절하기도 어색해서 조금씩 조금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학원농장이라는 농장 이름도 진 대표 어머니 이학 여사의 작품이다. 진 대표는 “어머니께서 본인 이름에서 ‘학(鶴)’ 자를 따 ‘학의 들’(鶴苑)이라는 의미의 ‘학원농장’으로 명명했다”고 소개했다.
진 대표는 젊은 시절 20년간 몸담았던 대기업 경영이사를 끝으로 1992년 농업인으로 변신했다. 충분히 직장생활도 했고, 어린 시절 모친과의 약속도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는 노년의 모친이 관리하던 학원농장을 그대로 물려받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대학생 ‘농촌봉사활동’으로 친구들과 고창에 내려와 농사일을 도왔고, 대학 졸업 후 1년가량 농장일에 나섰다 포기한 경험도 있긴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농장경영에 뛰어든 것은 그해가 처음이었다.

◇시련의 농촌 정착기= 진 대표가 학원농장에 청보리를 심기 시작할 때 처음부터 경관농업이나 축제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대기업 임원이던 그가 막 농부가 돼 곧바로 승승장구할 리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있듯 고난의 적응 스토리가 숨어 있다.
진 대표의 꿈은 야무졌다. 귀농해서 학원농장 경영을 떠안자마자 1000여 평에 이르는 첨단 비닐하우스에 800평 일반 비닐하우스까지 짓고 화훼류를 가꾸는 한편, 인근 밭 6만여 평에 수박도 12만 본이나 심었다. 기계화된 요즘 영농기법을 활용해도 엄청난 규모인데, 당시엔 수작업에 의존했으니 5개월간 매일매일 수십 명의 인부가 동원돼 수박밭을 가꿨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그해 수박 시세도 박했지만 작황도 형편없이 나빴다. 엄청난 인건비까지 밀려 진 대표는 빚쟁이 신세가 됐다. 진 대표에 따르면 고창 지역 토양은 황토질(黃土質) 성분이 많은데, 농사일에는 황토(荒土)나 다름없다. 물 빠짐이 좋고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작물에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토양의 영양 상태를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구황작물 고구마나 경작해야 할 정도로 척박한 땅이라고 한다. 수박농사를 망친 주요 요인이기도 했다.
진 대표는 “대기업 임원 경험에, 서울대 농과대학 출신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 작물은 저절로 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됐지만, 첫해 농사에 대실패했을 당시엔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한 차례 호된 신고식을 치른 진 대표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1994년 관광농원으로 변신을 꾀했다. 관광농원 인가를 받아 금융권 저리 자금을 융자받아 식당과 판매장, 운동장, 창고, 과수원 등을 짓고 관광농원의 기본 시설을 갖췄다.
그러나 관광농원 사업도 신통치 않았다. 하루 1000명 정도 방문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0~300명이 오는 날도 드물었다. 진 대표는 “그때 만든 관광농원은 영혼과 정성이 배어들지 않은 단순한 시설물에 불과했기에 성과로 이어지기는 더더욱 어려웠다”며 “비닐하우스 화훼류 농사마저 매년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신통치 못해서, 자칫 농장 전체를 빚 담보로 몰수당하고 빈 몸으로 쫓겨날 위기까지 내몰렸다”고 했다.
이런 쓰라린 경험 속에 그는 농사일에서 욕심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대규모 농지는 그 자체로 경쟁력이 강하지만, 많은 인력이 필요한 과채류나 고급 화훼류를 심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소수 정예·기계화 영농을 위해 보리와 콩을 심기 시작했다. 그 덕에 빚이 생기지 않을 정도의 안정적 소득원이 마련됐다. 때마침 2000년대 들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관광 분야의 반전이 일어났다. 눈이 녹고 파릇파릇해진 보리밭에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 5일 근무제와 더불어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한 발길이 이어지면서 농촌 보리밭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제법 관광객이 몰려들고 자신감도 솟아났다. 아직 국내에서는 경관농업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지도 않았던 시기다.

◇사계절 볼거리 갖춘 농장으로= 학원농장의 드넓은 청보리밭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인기를 누리는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한 달여 짧은 기간을 빼면 관광객이 오지 않는 휑한 농촌 풍경이 그대로 연출됐다.
청보리 후작으로 심은 콩은 보리 이상의 농업소득을 보장하지만 면적이 아무리 넓어도 경관성이 떨어져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콩 대신 메밀로 전환해 봤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작품을 떠올리면서, 초가을 드넓은 농장에 메밀꽃이 피면 청보리밭 이상으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선택은 대성공이었다. 시험 삼아 4만여 평에 심었던 메밀밭에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귀농 10여 년 만에 청보리와 메밀꽃이 유명해지면서 주변에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경관농업 축제 권유가 이어졌다. 고창군청의 청보리밭 축제 계획도 세워졌다. 인근 지역 주민 70여 명과 함께 축제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주민들이 또다시 11만여 평의 보리밭을 추가로 조성해 24만여 평에 이르는 대규모 청보리밭을 만들었다.
전국 유일무이 고창 청보리밭 축제는 그렇게 2004년 시작됐다. 같은 해 가을, 6만여 평에 심은 메밀꽃이 만발하며 메밀꽃 축제도 시작했다. 이후 보리와 메밀 작업 중간 여름철 해바라기를 심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관광객들을 위해 백일홍, 코스모스, 유채꽃을 시기별로 나눠 심고 있다.
그 결과 현재 학원농장에는 봄철 청보리, 여름 해바라기, 가을 메밀꽃까지 계절마다 축제와 꽃잔치가 이어진다. 진 대표는 “봄, 여름, 가을 내내 ‘눈이 즐거운’ 풍경, 도심을 벗어난 한가로운 시골 정취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부는 한국 경관농업의 선도자로서 공로를 인정해 2013년 진 대표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진 대표는 “‘오감만족형’ 경관농업을 위해 단기간 몰려오는 관광객들의 방문 시기를 적절히 분산하고, 머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한 시설 보강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많다”고 말했다.
23일간 51만명 찾아… 352억원 ‘경제 효과’
고창 청보리밭 축제 대박
학원농장이 전북 고창군에 안기는 경제적 효과는 매우 크다.
지난 4월 19일부터 5월 11일까지 진영호 대표가 경영하는 학원농장이 주축이 돼 열린 제22회 청보리밭 축제에는 51만 명이 다녀갔다. 지난해 축제 관광객 38만 명에 비해 13만 명이 늘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관광수요가 살아나는 추세 속에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인기까지 더해지며, 이곳엔 말 그대로 역대급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고창군 인구가 5만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순수 외지 관광객으로 볼 수 있다.
전북도와 고창군은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여행조사 보고서(2023년 기준)를 근거로 청보리밭 축제의 경제적 효과를 351억9000만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북 지역 방문 관광객 1인당 최소 6만9000원을 지출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진 대표는 “30여 년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던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창군이 청보리밭 축제를 위해 투입하는 예산은 1억4000만 원 정도.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선 그야말로 ‘저비용·고효율 대박 축제’의 전형이나 다름없다.
또 학원농장에서 열리는 여름 해바라기 축제에 10만~20만 명, 가을 메밀꽃 잔치에도 적게는 30만 명, 많을 경우 40만 명까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청보리밭 축제 인원을 합치면 연간 100만 명 안팎의 관광객이 학원농장을 찾아오고, 연간 690억 원가량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역 농민들의 자긍심도 높여주는 등 경제 외적인 효과까지 고려하면 1000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지역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박팔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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