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취임에서 발견한 기쁨과 슬픔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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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꼭 무덤 같다"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 돌입 일성을 듣고 새삼 전임자들에게 감사하게 됐다.
필기도구를 제공해줄 직원도, 컴퓨터도, 프린터도, 결재할 시스템도 없다는 대통령실과 달리 〈시사IN〉 편집국의 국장직 인수인계는 매끄럽고 원활했다.
2주간 인수인계 코스를 거치며 훈련을 받았고 전임 국장에게서 '편집국장 업무 인수인계서'라 적힌 두툼한 '비책' 문서까지 건네받았다.
제대로 된 업무의 처음과 끝은 인수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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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꼭 무덤 같다”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 돌입 일성을 듣고 새삼 전임자들에게 감사하게 됐다. 필기도구를 제공해줄 직원도, 컴퓨터도, 프린터도, 결재할 시스템도 없다는 대통령실과 달리 〈시사IN〉 편집국의 국장직 인수인계는 매끄럽고 원활했다. 2주간 인수인계 코스를 거치며 훈련을 받았고 전임 국장에게서 ‘편집국장 업무 인수인계서’라 적힌 두툼한 ‘비책’ 문서까지 건네받았다. 그렇다. 제대로 된 업무의 처음과 끝은 인수인계다. 전임자가 인수인계 없이 내빼는 이유는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이다. 제대로 한 일이 없거나, 심하게 켕기는 게 있거나.
조직에 선례가 있다는 건 후임자에게 참 든든한 일이다. ‘선배들은 어떻게 했더라.’ 책을 만들다 벽에 부닥칠 때마다 과거 발행된 〈시사IN〉 종이 잡지를 뒤적여 답을 찾았다. 대통령선거 같은 역사적 이벤트를 치르고 난 직후 마감하는 호는 더더욱 참고서가 필요했다. 과거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주에 제작된 〈시사IN〉 제757호, 제505호, 제276호를 책꽂이에서 꺼내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제276호(2012년 박근혜 당선) 표지 제목은 ‘5060의 역습’이었다. 커버스토리 기사 제목은 ‘‘세대 전쟁’이라는 이름의 비극’. 당시 기사는 세대 전쟁의 선이 ‘2040(문재인 지지)’과 ‘5060(박근혜 지지)’ 사이에 그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13년 전이니 그때의 2040은 지금 대략 3050, 5060은 6070이 되었겠다. 야권의 패인으로 ‘고령화로 인한 보수화’와 ‘진보의 불편한 태도’ 등을 짚었는데 기사 본문 한 구절에 눈길이 갔다. “(진보세력에 대한 50대의 반응에 대해) 나만 옳다는, ‘진리를 독점하는 태도’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는 거다. ··· ‘저만 잘났나’ 반감이 드는 거다.”
소소한 발견(?)도 하나 했다. 그때 대선 특집호는 마침 〈시사IN〉 송년호와도 겹쳤다. 〈시사IN〉은 송년호에 매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싣는 게 전통인데, 그해 선정된 인물은 ‘파괴력 강한 1년 차 정치인’ 안철수 전 후보(당시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했다)였다. 기사 속 이런 구절도 있다. ‘“정치를 계속하실 건가요?” 대답은 반문이었지만 그만큼 더 강조한 듯 들렸다. “제가 전에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제505호(2017년 문재인 취임)의 표지 제목은 ‘거대한 변화’, 커버스토리 기사 제목은 ‘‘새 시대의 첫차’가 출발했다’였다. 그때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조기 대선이어서 지금처럼 당선한 바로 다음 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취임식 아닌 취임선서 행사를 열었다. 로텐더홀 위층에서 내려다본 사진 구도가 이번 이재명 대통령 때와 거의 비슷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튿날 ‘김밥 국무회의’를 연 것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식후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참모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제505호의 소소한 발견은 ‘홍준표(당시 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다. 당시 ‘와글와글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여론을 참고해 기자가 풍자를 섞어 논평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 주 소재가 바로 ‘낙선 후 미국으로 간 홍준표’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갔고, 거기에서 SNS에 “세상이 나를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희한한 ‘역사의 도돌이표’라고 느꼈다.

제757호(2022년 윤석열 당선) 표지 제목은 ‘0.73, 차기 대통령의 숫자’였다.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 차이가 0.73%였다. 이때 편집국장이 쓴 ‘편집국장의 편지’를 읽고 흠칫 놀랐다. 제목은 ‘검사 출신 대통령이 등장했다’.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윤석열 당선자가 움직이는 검찰 권력이) 민주공화국에선 용납될 수 없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단지 기우일까요?” “유세와 토론에서 망언 수준의 발언들을 서슴지 않고 내놓았던 윤 당선자가 믿을 만한 판단력의 소유자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 선배가 돗자리를 까셨나.
이어지는 페이지들을 넘겨 보니 3년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별일이 다 지나갔구나 실감이 났다. 노란색 현수막이 걸린 정의당 선대위 해단식장에 모인 당시 심상정 후보, 류호정·장혜영 의원의 모습이 아련했다. 앞머리를 내린 38세 이준석이 ‘윤석열’ 이름이 적힌 빨간색 점퍼를 입고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에 앉아 있는 사진도 보였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다 79쪽, ‘기자의 프리스타일’에서 다시 손이 멈추었다. 나경희 기자가 쓴, 한 산재 사망 노동자 유가족에 대한 글이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하던 아들 김용균씨를 잃은 어머니 김미숙씨의 이야기. 3년 뒤 바로 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한 명이 ‘끼임사’ 당했다. 6월2일, 제21대 대선 하루 전날이었다.
추억 여행 하듯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번뜩 뒤통수를 맞은 듯 현재로 다시 돌아왔다. 나의 후임자는 훗날 제926호에서 무엇을 찾아내게 될까. 부디 슬프고 불행한 ‘역사의 도돌이표’를 발견하지 않기를, 새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는 동시에 무거운 책임을 주문하며, 기원해본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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