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공존을 실천하는 팽나무 그늘 아래서

왕태석 2025. 6. 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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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당진에서 본 팽나무 한 그루가 문득 떠올랐다.

마을 어귀에 굽어진 가지를 드리운 채 서 있던 그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마을의 안녕을 빌며 제를 올리던 그 나무는 공동체의 정신적 기둥이었다.

특히 팽나무는 줄기가 단단하고 병충해에 강하며 넓은 그늘을 드리워 당산나무로 자주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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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한 마을 어귀에 굽어진 가지를 드리운 채 서 있는 팽나무 한 그루.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위안을 건넨다. 당진=왕태석 선임기자

지난달 당진에서 본 팽나무 한 그루가 문득 떠올랐다. 마을 어귀에 굽어진 가지를 드리운 채 서 있던 그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오래된 기억을 품은 듯, 조용히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더위를 피했고, 숨을 고르며 이야기를 나눴다. 예부터 조상들은 마을 입구나 중심에 큰 나무를 심어 ‘당산나무’라 불렀다. 마을의 안녕을 빌며 제를 올리던 그 나무는 공동체의 정신적 기둥이었다. 특히 팽나무는 줄기가 단단하고 병충해에 강하며 넓은 그늘을 드리워 당산나무로 자주 쓰였다.

충남 당진 한 마을 어귀에 굽어진 가지를 드리운 채 서 있는 팽나무 한 그루.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위안을 건넨다.

팽나무는 수백 년을 살아오며 바람과 가뭄을 견뎌냈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마을의 희로애락을 지켜본다. 말은 건네지 못하지만,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위안을 건넨다. 동네 아이들은 그 아래서 놀고 어르신들은 막걸리 한 잔에 웃고 운다. 나무는 사람들을 부르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그 곁으로 모여들었다. 경쟁하지 않고 공존을 실천하는 나무는 새, 벌레, 풀과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법을 보여준다. 중심에 서려 하지 않아도 결국 중심이 된다.

충남 당진 한 마을 어귀에 굽어진 가지를 드리운 채 서 있는 팽나무 한 그루.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위안을 건넨다.

과거엔 제를 올리던 마당이었고, 지금은 마음을 쉬게 하는 그늘이 됐다. 의례는 사라졌어도 그 아래 모였던 따뜻한 마음은 남아 있다. 이런 팽나무는 우리가 잊고 지낸 삶의 태도를 일깨운다. 기다림 속에서 고요함을 배우고, 침묵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을 익힌다. 서두르지 않고, 억누르지 않으며, 다름을 품는다. 그런 나무 하나쯤 우리 곁에도 있었으면 한다. 오늘도 팽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묵묵히 바람을 맞고 있다.

충남 당진 한 마을 어귀에 굽어진 가지를 드리운 채 서 있는 팽나무 한 그루.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위안을 건넨다.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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