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공연으로 지킨 모국어 여전히 굳건한 ‘민족의 얼’
1923년 러시아 연해주 ‘모국어 신문’ 창간
스탈린 고려인 강제 이주에 폐간 시련
1938년 카자흐스탄서 복간 ‘102년 역사’
온라인 콘텐츠 확장 등 정체성 보존 고심
■고려극장
1932년 연해주 설립→1968년 알마티 정착
홍범도 장군 극장 관리인 근무 ‘눈길’
고려어 기반 아리랑 등 공연 발전 거듭
K-컬처 인기 영향 관람객 발길 줄이어
광복 80주년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서 - 16. 뿌리를 잊지 않은 고려인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먼 타국에서 오랜 기간 살아왔음에도 자기 뿌리를 잊지 않았다. 살길을 찾아 한반도를 떠나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을 때도,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보내졌을 때도, 그들은 자신들의 근간을 이루는 언어와 문화를 지켜냈다. 강원도민일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한민족의 얼을 이어 나가고 있는 고려일보와 고려극장을 찾았다. 고려일보와 고려극장의 역사는 고려인의 역사와 닮아있었다.

■ 창간 102주년, 고려일보
1923년 ‘선봉’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창간된 고려일보는 올해로 창간 102주년이라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선봉’은 러시아로 삶의 터전을 옮긴 고려인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들은 선봉을 읽으며 그리운 고향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고려일보의 역사는 한민족의 아픔과 시기를 같이한다. 그렇기에 고려일보도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면서 고려일보는 잠시 폐간되고 말았다. 소련 정부는 고려인의 민족성을 없애고자 이듬해부터 고려인에게 모국어 고등교육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강제이주 이듬해부터 고려사범대학교의 모든 강의는 조선말이 아닌 러시아어로 진행됐다.
고려인이 자신의 뿌리를 상실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고려일보는 1938년 5월 15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레닌키치’라는 이름으로 복간됐다.
유일한 모국어 신문인 레닌키치는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고려인은 신문을 통해 모국어를 보존했고, 언어 교육의 명맥을 이어갔다. 특히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 작가를 다수 발굴, 이들이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했다.
레닌키치라는 이름은 1991년까지 유지됐다. 이후 현재까지 사용 중인 ‘고려일보’로 제호를 변경, 지금까지도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중심으로 모국어 신문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 지속가능한 매체로서의 고민
레거시 미디어인 신문에 기반하고 있기에, 미디어 산업의 디지털화는 종이신문인 고려일보에 변화를 요구했다. 이에 102년 역사의 고려일보는 다양한 경로로 자신들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해 현재는 종이신문 발행 횟수를 주 1회로 줄이는 대신, 틱톡·인스타그램 등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플랫폼을 공략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고려인만이 아닌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고려일보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러시아어로 된 잡지 발행도 시작했다.
고려일보가 변화에 나선 근본적인 이유는 카자흐스탄 내에서 모국어인 한국말을 사용할 수 있는 고려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일보는 카자흐스탄 전역에 걸쳐 15명의 기자가 근무하고 있다.
김 콘스탄틴 고려일보 주필은 “고려일보는 카자흐스탄뿐만이 아니라 모든 한민족의 신문이자 유산”이라며 “비록 종이신문을 읽는 독자가 줄었고, 모국어를 할 줄 아는 이도 줄어 기자 수급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종이신문은 특별하고,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고려일보는 자신들에 대한 일회성 관심이 아닌, 지난 102년간 이들이 쌓아 올린 역사에 온전히 집중해 줄 것을 강조했다.
김 주필은 “그동안 한국의 많은 언론이 우리를 찾아왔다. 하지만 하루 방문해서 궁금한 걸 물어보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면서 “전세계적으로 우리와 같이 어려움 속에서도 자생하며 성과를 보인 언론사가 드물다. 고려인 3·4세대를 거치며 일부 언어를 잃기도 했지만, 정체성은 잃어버리지 않은 채 살았다”고 강조했다.
■ 한민족 최초의 해외극장
한민족 최초의 해외극장인 고려극장은 1932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극동지방고려극단’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고려극장은 스탈린 정부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 상황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 1937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출신의 홍범도 장군은 1939년부터 고려극장 관리인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고려극장은 수시로 이주했다. 이 과정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고려극장이 각각 세워지기도 했다. 두 곳으로 분리돼 운영되던 고려극장은 1950년 한 곳으로 통합됐다. 이어 1959년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이전했다. 1968년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재차 극장을 옮겼고, 2016년에는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아카데미 칭호를 획득, 국가 최고 수준의 지위를 가진 예술극장이 됐다. 고려극장은 여전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2018년에는 알마티 시내에 있는 건물을 구입해 현재까지도 이곳에서 예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고, 2023년에는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대대적인 시설 보수를 진행했다.
고려극장은 러시아와 CIS(독립국가연합)의 고려인 사회와 꾸준히 소통했다. 1982년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순회공연을 진행, 명예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려극장은 일찍부터 대한민국과도 관계를 이어왔다. 1988년 열린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발전상이 고려인 사회에도 널리 알려졌고, 이듬해에는 서울에 초청돼 공연을 갖기도 했다. 지난 2018년에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2019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각각 고려극장을 방문했다. 지난해에는 우원식 국회의장도 고려극장을 찾는 등 현재까지도 한국과 긴밀히 소통 중인 예술기관이다.

■ 알마티에서 울려퍼진 아리랑
고려극장에서 활동 중인 배우는 총 99명으로, 이 중 46명이 고려인이다.
고려극장은 심청전, 흥부와 놀부, 양반전, 아리랑, 견우와 직녀 등 한민족의 전통적인 작품 외에도 카자흐스탄의 작품이나 서구권의 고전적인 작품도 함께 공연하고 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공연도 종종 진행 중이다. 공연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한인들의 언어인 ‘고려어’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고려극장은 다음날 있을 공연에 대한 연습이 한창이었다. 공연팀이 연습 중인 작품은 ‘하루’로, 한국 전통춤을 기반으로 현지에 맞게 재해석한 내용의 작품이었다.
극장 측의 배려로 리허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북, 장구, 꽹과리, 징 등 한국 전통 악기의 연주에 맞춰 시작된 공연을 감상하고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들썩이는 내 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연은 상당히 다채로웠다. 사물놀이를 비롯해 사랑가에 맞춰 발레를 추거나, 탈춤, 부채춤 등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든 채 공연하고 있는 금발의 카자흐스탄 무용수를 바라보고 있으니 기묘한 감정이 일었다.
고려극장은 최근 몇 년간 전세계적으로 급부상한 ‘K-컬처’의 덕을 보고 있다고 했다. 고려인 3세인 전 나지온 고려극장 부극장장은 유창한 한국말로 “관객 100명 중 70명은 현지인”이라며 “한류 덕분에 다들 우리 극장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우리 문화를 알고 싶은 분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정민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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