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여성·노동자·장애인 놓지 않은 ‘1% 진보 정치’

“이번 선거는 내란 세력을 심판하고 청산하는 데 표심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광장에서 외쳤던 목소리들이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적어도 진보 정치가 살아 있어야 함을 확인한 표심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전 후보에게 대선의 벽은 높았습니다. 지난 3일 치러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권 전 후보는 0.98%, 반올림해서 1% 득표율로 4위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1%의 가치’는 단순 득표율 이상으로 평가받습니다. 원외 군소 진보 정당이라는 한계와 짧은 조기 대선 국면에서도 선명한 목소리를 낸 권 전 후보. 200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이 그랬듯 진보 정당의 존재감을 다시 대중에게 각인했습니다.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전 후보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후보까지도 ‘중도 보수’를 자처한 이번 대선에서 권 전 후보는 사실상 유일한 진보 후보였습니다. 중도층을 공략하려 일찌감치 빅 텐트를 친 민주당은 여성·노동·소수자 등에 관한 언급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합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약은 두드러지지 않았는데요. 권 전 후보는 다른 후보가 관심을 두지 않은 ‘소수자 의제’를 꺼내 들었습니다.
권 전 후보는 노동자·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노동자·기후 문제 언급을 꺼리지 않습니다. ‘불안정 노동자 1500만 명의 권리 보장’을 1호 공약으로 앞세우고, 선거 기간 내내 위험에 내몰린 노동자를 찾고,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의 이름을 읊으며 중대재해처벌법을 옹호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 ‘여성가족부 격상’ 등을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고요. 이주민·장애인을 집중해서 대변합니다. 상속제 최고세율 인상, 부유세 신설 등 타협 없는 진보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죠.
권 전 후보는 TV토론에서도 다른 후보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소수자 대변인’을 자처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당장은 어렵다’고 답한 이재명 당시 후보를 향해 “영원히 못 할 것 같다”고 말하죠. 이준석 전 후보의 정책이나 생각도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 전 후보가 내놓은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화’에 “이렇게 차등화하면 수도권으로 다 몰린다. 헌법이 왜 정했겠나. 차등 임금 두지 말라고”라며 지적했고요. 이 전 후보가 ‘동덕여대 학생들의 공학 전환 반대 시위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를 왜 민주당이 옹호하냐’고 묻자 “질문이 잘못됐다. 전장연 시위, 동덕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왜 발생했는지 그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정의당 대표였던 권 전 후보는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을 비롯한 노동·사회운동단체가 참여하는 ‘사회대전환 연대회의’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정치적으로 진보 정당이 가장 어려운 시기 대선에 나선 것인데요.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2022년 대선에서 2%대 득표율로 참패했고, 녹색정의당 연합은 지난해 총선에서 원외로 밀려납니다. 이런 상황에 권 전 후보는 진보 의제가 사라진 대선에서 “광장의 목소리를 되살리겠다”며 출마를 선언합니다. 토론회를 통해, 사회적 약자와 함께한 유세장에서 그의 약속은 지켜졌죠.
그의 노력이 유권자에게도 와닿았던 것일까요. 권 전 후보는 20대 이하 여성, 30대 여성에게 각각 5.9%, 2.1% 지지(방송 3사 출구조사 기준)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투표가 종료된 지난 3일 오후 8시부터는 무려 3억5000여 건의 후원금이 쏟아져 13억 원가량이 모이기도 합니다.
권 전 후보는 고공 크레인 노동자를 찾는 것으로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했고, 대선 투표 당일까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고(故) 김충현 노동자를 조문했습니다. 그는 대선 패배 후 “노동자 농민 여성 자영업자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그리고 기후정의. 우리가 대변해야 할 존재들과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히며 이렇게 말합니다.
“지지율 1% 남짓 나오는 후보가 아니고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그 배제되고 밀려난 아픈 마음들의 의미를 잘 헤아리겠습니다. 진보 정치가 해야 할 일, 진보 정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시민 여러분께 분명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1%의 기반, 1%의 희망, 1%의 미래를 확인한 진보 정치. 그 ‘1% 가능성’이 점점 덩치를 키워 우리 사회 다양성을 확장할 수 있기를. ‘1% 진보 정치’가 ‘배제되고 밀려난 아픈 마음들’과 함께 걸어갈 길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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