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75> 남원서 지리산 청학동으로 이거해 시 읊은 이규진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물고기는 강과 바다, 새는 숲에 의지하는데(魚游江海鳥投林·어유강해조투림)/ (세상이) 시끄러워 무단으로 깊이 들어왔다네.
/ 차라리 요동에서 벼슬을 부정한 유안이 되고 싶어(願作幼安遼榻否·원작유안요탑부)/ 오직 도심이 본연심이라네.
위 시는 회천(晦川) 이규진(李圭鎭·1877~1948)의 '청학동 새 거주지에서의 감회'(鶴洞新居感懷·학동신거감회) 2수 중 첫수로, 그의 문집인 '회천유고(晦川遺稿)' 권 1에 수록돼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강과 바다, 새는 숲에 의지하는데(魚游江海鳥投林·어유강해조투림)/ (세상이) 시끄러워 무단으로 깊이 들어왔다네.(慅爾無端轉入深·소이무단전입심)/ 차라리 요동에서 벼슬을 부정한 유안이 되고 싶어(願作幼安遼榻否·원작유안요탑부)/ 오직 도심이 본연심이라네.(道心只是本然心·도심지시본연심)
위 시는 회천(晦川) 이규진(李圭鎭·1877~1948)의 ‘청학동 새 거주지에서의 감회’(鶴洞新居感懷·학동신거감회) 2수 중 첫수로, 그의 문집인 ‘회천유고(晦川遺稿)’ 권 1에 수록돼 있다.
이규진은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간재 전우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1922년 46세에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 청학동으로 이거(移居)했다. 위 시 첫째·둘째 구에서 청학동으로 들어온 이유를 밝힌다. 셋째 구에서 중국 한(漢)나라 때 학자로, 자가 유안(幼安)인 관녕(管寧·158~241)의 고사를 가져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얻기보다 청학동에 은거할 생각이라고 재차 밝혔다. ‘榻否(탑부)’는 관영이 정치 혼란을 피해 요동으로 가 검은 모자((遼東帽·요동모)를 쓰고 농사지으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사실을 뜻한다. 넷째 구 ‘도심’은 사욕에 오염되지 아니한 마음, ‘본연심’은 본디 타고난 마음이다.
이규진은 자신보다 7년 앞선 1915년 청학동에 들어간 전북 진안 출신 습재(習齋) 최제학(崔濟學·1882~1961)과 교유하며 지냈다. 두 사람에 대해서는 오세현(전 경남과학고 교장) 박사가 최근 펴낸 ‘묵계동천과 학로계’(전3권·도서출판 실천)에 상세히 나온다.
청학동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 살았던 오헌(旿軒) 양삼준(梁三俊·1928~2012)은 이규진의 사위가 됐다. 양삼준도 문집 ‘오헌유고(旿軒遺稿)’를 남겼다. 그의 시도 한 수 보겠다. “몇 년이나 이 산중에 살았던가(幾年能住此靑山·기년능주차청산)/ 약초 캐며 시 읊으니 스스로 한가롭네.(採藥吟詩意自閑·채약음시의자한)/ 길 바뀌는 개울 깊은 풀 속 꽃향기 나네.(路轉川深芳草地·노전처심방초지)/ 한 마을이 세 집인 곳 사람 산다네.(三家一洞是人間·삼가일동시인간)” 요즘 묵계 출신 양영욱 시인에게서 ‘회천유고’와 ‘오헌유고’를 빌려 읽고 있다. 그는 양삼준의 집안 동생이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