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홍준표, 이준석 그리고 보수우파의 민낯
여전히 ‘졌잘싸’ 운운하는 세력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 한 때

뜬금없는 계엄으로 시작된 혼란이 조기대선으로 마무리됐다. 어리둥절하게 시작된 계엄과 탄핵, 대선의 시간표는 우리 정치 양집단의 현주소를 너무나 극명하게 보여줬다. 한쪽은 우왕좌왕이었고 다른 쪽은 일사불란했다. 준비된 진보좌파는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집권이라는 경험치를 살려 보수우파의 급소를 찔렀다. 한밤중에 자다 깬 얼치기 보수는 비몽사몽간에 머리만 흔들어댔다. 그렇게 딱 여섯 달을 보냈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명약관화(明若觀火)다.
그 혼란의 와중에 보수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보수우파가 오뉴월 땡볕에 아랫목으로 기어들어 갔다. 흉내만 보수, 외투만 보수를 걸친 얼치기들은 몸을 사린채 눈알만 굴렸다. 혹자는 진보는 단결이 주특기고 보수는 분열이 동력이라고 하지만 말장난이다. 미안하지만 분열이 동력이었던 시절은 오래전 퇴계와 기대승의 사칠논쟁(四七論爭) 무렵에 막을 내렸다. 인간의 본성을 두고 8년의 논쟁을 마다하지 않은 보수논객의 치열한 토론은 실상 분열과 대립으로 비치지만 정반합을 끌어낸 절차의 미학이었다. 그런 선배들의 고뇌에 지금의 보수우파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지만 분열이 동력이라는 꼴 같잖은 변명을 단칼에 자르기엔 확실한 예다.
현대사에서 보수우파가 망조를 보인 단초는 여럿이지만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방만의 집권 때가 그 뿌리다.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노무현 정부의 실각 이후 진보는 세대교체가 진행됐다. 정통 야당의 핵심부가 원로가 되면서 이른바 386이 전면에 등장했고 골수좌파로 전열을 가다듬을 무렵 진보는 수뇌를 정하지 못했다. 얼떨결에 좌파 두령이 된 정동영은 지금의 민주당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대선에 나섰다. 당시 진보좌파는 전열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결정적인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유산인 정치 기득권의 철저한 개혁 때문이었다.
기득권 타파는 진보좌파의 수뇌부를 정치 1선에서 퇴각시켰고 이른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유시민, 손학규, 한명숙, 이해찬은 아직은 진지 구축을 완성하지 못한 때였다. 어부지리는 무색무취의 정동영이 차지했다. 색깔에 빛깔까지 없는 인물 정동영은 애당초 보수우파의 새 주자로 떠오른 이명박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그때의 대선은 진보좌파가 26.1%의 득표라는 제1당 역사상 최저 득표율을 기록하며 보수우파에 531만표 차의 대패라는 치욕을 남겼다.
20년 가까이 지난 이 치욕스러운 역사는 진보좌파에게 반면교사가 됐고 보수우파에게는 독이 됐다. 500만표 이상의 차이로 집권한 보수는 자기도취에 빠져 정권초기부터 분탕질을 거듭했다.
이른바 '강부자 내각'부터 '고소영 정권'까지 도덕성보다 주군의 눈도장을 찍은 순서로 권력을 나눠 가진 부패의 시작이었다. 원칙이 무너진 정치는 편법이 난무했고 그나마 이명박 정부의 희망이던 경제도 비틀거렸다. 국민의 엄청난 지지로 정권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자만으로 둔갑시킨 결과는 참담했다. 500만표 승리로 재건한 보수우파의 붕괴는 의외의 사건이 단초였다. 바로 미국 소 파동이다.
이른바 광우병 괴담은 2002년 불의로 사망한 효순이·미선이 사건과 연계돼 반미운동으로 번졌고 모 방송사의 '퍽'하고 쓰러지는 미국 소 장면으로 촛불바다가 됐다. 어린 학생의 죽음과 주한미군에 대한 반감, 그리고 식탁에 오르는 미국 소의 광기는 집단적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됐지만 흥분을 가라앉힐 대안은 전무했다. 오만한데다 느슨해진 정권과 사욕으로 외투를 잠근 관료는 횃불로 번진 촛불을 입김으로 끌 생각만 했고 중심을 잡아야 할 청와대는 대통령이 뒷산에서 아침이슬이나 부르며 미친 소에 미쳐가는 형국이었다. 딱 그 지점에서 오늘의 진보좌파는 전열을 정비했고 보수우파는 각자도생의 길을 택했다.
21대 대선이 끝나자 다양한 진단과 예측이 난무한다. 41.15%라는 보수우파의 득표를 두고 '졌잘싸'라는 이야기부터 41.15와 8.34(이준석 득표율)를 합한 49.49가 진보좌파 득표율 49.42를 0.7% 포인트 앞선다는 주장까지 '썰'로 밥 먹고 사는 논객들의 입방아가 요란하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보수우파가 이번 선거에서 40%를 못 넘겼다면 폭망 수준이 됐을 텐데 40%를 넘기고 우파 합산 49.49가 나왔으니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식이다. 딱 1년 전 총선에서 100석이 무너지지 않고 고뇌의 108석을 얻은 것이 희망이라 이야기했던 논리와 비슷하다. 이준석이 짐을 싸고 아랫목에 숨은 샤이보수가 조금 더 대문을 나섰다면 이길 수 있었다는 패배한 보수우파의 마스터베이션이었다.
딱한 이야기가 안쓰럽게 회자하는 보수우파 진영에게 찬물을 끼얹은 인사는 홍준표다. 자신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신앙처럼 가진 그는 "두 번 탄핵 당한 당이었지만 상대가 이재명 후보라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게임이었는데 아쉽게 됐다"고 운을 뗀 뒤 "노년층과 '틀딱', 유튜브에만 의존하는 이익집단에 미래는 없다"고 침을 뱉었다.
패배의 당사자인 김문수는 느닷없이 아군에 총질이다. "우리 당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신념, 그걸 지키기 위한 투철한 사명이 없다"라며 "과연 어떤 사람을 당 대표로 뽑느냐, 공직 후보로 뽑느냐, 민주주의가 완전히 사라졌다. 삼척동자가 봐도 말이 안 되는 방식으로 공직 후보를 뽑지 않았나"고 경선과정에서 드러난 친윤의 행태를 직격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다.
집 나간 자는 침을 뱉고 패배한 자는 도리어 삿대질을 했다. 대선이 끝난 보수우파의 현주소다. 흔히 보수를 두고 도덕성과 준법성, 안정성을 기둥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지금의 보수는 기득권 지키기가 지상과제다. 그래서 지금의 보수우파는 모태보수나 기회주의 보수, 무지몽매형 보수로 놀림감이 됐다. 전투력에 유연성까지 갖춘 진보좌파에게 보수는 손쉬운 먹이감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해체 수준의 철저한 자기반성이다. 해법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실천하지 않으니 구태의 무한 반복이다. 41.15라는 숫자를 희망으로 보느냐 경고로 보느냐의 문제가 핵심이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