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에게 평등은 너무 비싸다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5. 6. 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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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28일 필자가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필자 제공

소하 | 성소수자·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일상이 긴장의 연속이다. 공중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누군가 나를 남자라고 지적하지 않을까 두렵다. 속으로는 늘 “저 여자예요”라고 말할 준비를 한다. 모든 화장실이 남녀로 구분되어 있고 성중립 화장실은 희소하니, 가능하면 화장실 이용 자체를 피하고 있다.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확신하였다. 생물학적으로 지정된 몸과 실제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그 전까지는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외면하며 살아왔다. 개인 차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주어진 성별을 완벽히 바꿀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주변에 퀴어 친구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들은 편견 속에 박제된 트랜스젠더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내가 만난 그들은 ‘미완의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모습으로 완성되어가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트랜스젠더로, 여성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11월2일 필자가 인천퀴어문화축제 무대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필자 제공

모든 게 쉽지 않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일자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채용을 꺼리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남녀의 업무가 구분되어 지원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일을 할 때는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임을 들킬까 내내 불안했다. 주민등록상 성별인 ‘남성’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사람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며 수상해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런 경험들 속에서, 자연스레 인권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정체성을 드러내고도 안전한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일을 구할 때 스스로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밝히기 시작했고, 인권에 관심이 높아질 무렵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하게 되었다. 반상근으로 근무하는 상임활동가가 되어 100만원 남짓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업이 필요해서, 청소 일을 병행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화장실에서 분변과 사투를 벌이는 일은 육체적으로 고되었지만 급여와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관리소장님과 경비과장님 덕분에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가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가졌는지 마음대로 판단하려는 시선이 있었다. 결국 청소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다시 구직의 어려움이 닥쳐왔다.

지난해 11월16일 필자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에 참석하여 발언을 하고 있다. 필자 제공

대부분의 일상에서 나는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숨기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남자’였던 시절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최근에 있었던 할머니 장례식이 그런 경우다. 친척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는 트랜스젠더에게 가장 난감한 공간일 것이다. 슬픔과 엄숙함이 지배하는 장례식 같은 장소에서 커밍아웃이란 쉽지 않다. 나는 부모님과 친척들이 받을 충격을 염려해 중성적인 양장을 입고 조문객을 맞았다. 나를 남성으로 알고 있는 친척들 앞에서 ‘남자인 척’ 행동하였고, 머리에 리본핀을 한 여성들 사이에서 상주 완장을 찼다. 남자의 방식으로 규정된 절을 했으며, 장손의 위치에서 영정사진을 들었다. 전형적 남성성을 연기하는 게 불편했지만, ‘여성이 남성 역할을 수행하는 성 역할 전복의 현장’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외양을 통해 여성으로 인식됐다면 이런 고생은 없었을까? 스스로 밝히지 않아도 ‘여성’으로 인정받는다면, 매번 내 상황을 설명하거나 증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여성으로 존재하기 위해 여러차례 성형수술을 받았다. 수술비도 2천만원이나 들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여성처럼 보이지 않아서, 지금도 “남자야, 여자야?”라는 질문을 아프게 듣곤 한다. ‘이마를 깎고, 가슴 확대 수술을 받으면 좀 더 자연스럽게 보일까?’ 기대도 해보지만, 현재의 수입으로는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다. 이러한 성형수술은 끝이 없을뿐더러 주민등록상 성별을 바꾸는 데는 더 큰 비용이 들어 막막하다. 한국에서 법원에 성별 정정 소송을 제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성기 수술 여부’다. 성기가 여성형으로 수술되어 있지 않으면, 법적인 여성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그러나 구직 자체가 어려운 트랜스젠더가 그 많은 돈을 준비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성별 정정이란 매우 드물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3월26일 필자가 윤석열 퇴진 집회가 있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행진하며 깃발을 세차게 흔들고 있다. 필자 제공

차별의 문제도 돌고 돌아 돈의 문제로 불거진다.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차별이 일상적일 때, 사회가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을 때, 그 대가는 소수자들에게 비싸게 청구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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