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 소재로 ‘천만 영화’ 나왔으면”

“‘국가폭력 범죄 공소시효 배제’,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신속한 출범’ 등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되길 바랍니다. 이제 잘못된 역사 질서가 바로잡혔으면 합니다.”
한국전쟁 앞뒤로 전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담은 ‘기억전쟁’(도서출판 고두미)을 완간한 박만순(59)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의 바람이다. 박 대표는 최근 ‘박만순의 기억전쟁4’를 냈다. ‘기억전쟁4’는 지난 2018년 충북지역 민간인 현장 학살 현장과 유족 등의 증언을 담은 ‘기억전쟁’을 낸 지 7년 만에 낸 ‘기억전쟁’ 시리즈를 마무리 판이다.
‘기억전쟁4’에는 강원 횡성, 충북 충주·청주·영동, 경북 안동, 전남 신안·영광 지역 국민보도연맹사건, 경북 안동·문경, 충남 조치원, 충북 청주, 전남 신안 등에서 발생한 군경, 좌익 등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담았다.

첫 장부터 충격이다.
“구덩이 파”, “작업 중지”, ”사격”…
1950년 7월1일 강원 횡성에서 벌어진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현장이다. 당시 학살은 6사단 헌병대가 주도했는데, 박 대표는 6사단 헌병대 일등상사 출신 김만식씨를 찾아가 관련 증언을 들었다. 박 대표의 고교 시절 교련 교사가 김 선생을 소개했다. 그는 “처음엔 머뭇대다 예닐곱번 찾아갔더니 입을 열었는데 핵폭탄급 증언이 쏟아졌다. 그의 입을 통해 6사단 헌병대가 자행한 강원·충북·경북지역 보도연맹원 학살 실태가 세상에 나왔다. 수천명 학살에 관여하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ㅅ학원 이사장을 지낸 ㅅ씨와는 판이한 위대한 증언자”라고 밝혔다.
실제 진실화해위는 선생의 증언을 국민보도연맹 사건 최종 보고서에 담았고, 선생은 국내외 언론에도 관련 증언을 했다. 김 선생은 증언 뒤 “평생 죄책감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편해졌다. 죽기 전에 증언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털어놨다.
충북 지역 ‘민간인 학살 현장’ 찾아
피해자 7320명 규명한 1권 시작으로
최근 보도연맹 등 기록한 4권 펴내
‘기억전쟁4’에선 민간인 400명을 수류탄·총격 등으로 희생시킨 청주 오창 양곡창고 보도연맹원 학살 현장을 생생하게 그렸다. 대청호에 수장한 청주 광원마을 보도연맹원 학살, 섬 주민 13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전남 신안 임자도 지방 좌익 사건, 하루에 426명이 숨진 전남 영광 백수면 사건 등은 충격 그 자체다. 인민군복으로 위장한 나주 경찰부대 민간인 학살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당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수첩 메모로 불거진 ‘수거’, ‘수집’, ‘북한군 위장’ ‘암살’ 등을 연상케 한다고 기록했다.
박 대표는 “전남 신안·영광 등의 학살은 글로 담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이고 비참한 것이었지만 훗날 기억과 기록을 위해 일시, 장소, 관여자 실명 등을 사실대로 담았다”며 “처절한 학살 속에서도 주민을 살린 신안 임자교회 이판일 장로의 아들 이인재 등 ‘전남의 쉰들러’를 찾아낸 것은 그나마 위안”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억전쟁4’를 마지막으로 23년 동안 이어온 한국전쟁 앞뒤 민간인 학살 관련 ‘기억전쟁’을 마무리한다. 그는 2002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워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민간인 학살 발굴 전쟁에 “참전”했다. 충북지역 마을 2천여곳을 찾아 학살 목격·증언자 6천여명을 만나 기록한 ‘기억전쟁’을 2018년 냈다. 그는 당시 어림으로만 알려지던 충북지역 학살 피해자 7320명을 규명하고, 학살 장소·일시 등을 적시했다. ‘골령골의 기억전쟁’에선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을 낱낱이 담았다. 이후 충북뿐 아니라 전국의 민간인 학살 현장과 증언을 담은 2권과 3권을 잇달아 낸 데 이어, 최근 ‘기억전쟁4’로 마무리했다. 그가 전국에 산재한 학살 현장에서 만난 학살 희생자 유족 등을 대신하거나 안내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신청서’만 600~700여 건이다. 그는 “그 사이 제 발로 찾은 마을은 줄잡아 2500여곳으로 늘었고, 만난 이들은 아마 8천명이 넘을 것이다.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그들의 말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고 했다.
23년간 전국 2500여 마을 누비며
목격자 등 8천여명 만나 증언 기록
“3기 진실화해위 바로 가동하고
‘국가폭력 조사기구’ 상설화해야”
그는 국가에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해서 국가 권력이 저지른 불법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의 울산국민보도연맹 사건 공식 사과가 지금도 생생하게 울린다. 국가폭력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지지부진해 너무나 안타깝다”고 했다.
2기 진실화해위 조사 기간이 지난달 26일 마무리(최종 보고 활동 종료는 오는 11월26일)됐다. 당시 박선영 위원장은 신청 사건 89.9%를 마무리했다고 자평했지만, 박 대표는 “한마디로 수박 겉핥기 조사에 기가 찰 노릇”이라고 혀를 찼다.
그는 “3기 진실화해위를 바로 가동하고 ‘국가폭력 조사기구’(가칭)를 상설화해야 한다. 대통령 약속처럼 국가폭력 사건 공소시효도 배제해야 한다”며 “국가폭력 사건 교과서 수록·평화 인권 교육 등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1천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하는 민간인 학살 소재 영화가 제작·상영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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