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오 홍진의 흔적을 찾아서] “민족 통합 리더…현대인에 더 많은 이야기 알려지길”
국무령·의정원 의장 등 주요 인사 활동
좌·우 갈등 심했던 시기 조직 단합 헌신
시민답사단, 中 상하이 등 6개 도시 방문
청사 유적지에선 회의하던 모습 등 가늠
비상탈출구 갖춘 임시 피난처 살피기도
참가자 “잘 보이지 않던 행적들 알게 돼
교과서·소설·드라마 등서 삶 조명되길”
기념사업회 “다양한 프로그램 만들 것”


"만오 홍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지난 3일 오후 3시30분쯤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유적지 2층.
중국 현지 해설사가 임시정부의 주요 인물을 소개하던 중 한국에서 찾아온 시민들이 "국무령 직위를 갖고 콧수염을 기른 사진 속 인물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라며 이같이 물었다.
임시정부 수반들의 모습이 전시된 이곳에는 석주 이상룡과 백범 김구 가운데 홍진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상룡은 독립군을 길러냈던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맡은 인물이며, 김구는 1930년대 임시정부에서 무장독립투쟁을 주도하고, 광복 후에는 통일정부를 수립하려 했던 대표적 독립운동가다.
해설사는 난처한 웃음을 짓고는 "미안합니다. 홍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아 설명드리기 어렵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관람객들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내며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라도 홍진이 누구인지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는 인천의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중국에 찾아온 '만오 홍진 제2차 인천시민답사단'이 첫날 겪은 일이다.
한 남성 답사단원은 "유명 독립운동가에 가려져 다른 독립운동가의 노력과 성과가 기억되지 못하는 것 같아 쓸쓸한 느낌"이라고 전했다.

▲만오 홍진, 인천 독립운동가이자 통합의 리더
홍진(1877~1946)은 임시 정부 내 좌·우 갈등이 극심했던 1926년 임시정부 수반인 국무령을 지냈고, 임시의정원 의장(1921년·1939년·1942년)을 세 차례 맡으며 독립운동가의 통합과 조직의 안정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법조인이었던 그는 1919년 3·1 운동 이후 국내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했으며, 인천 만국공원에서 13도 대표자회의를 열어 임시정부 정통성을 인준받은 뒤 상하이로 넘어가 임시정부 주요 인사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임시정부 소속 요인으로 활동하면서 항상 독립운동가들이 단합할 방법을 끊임 없이 고민했으며, 1940년대 초 한국독립당을 만드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광복 후에도 비상국민회의를 창립해 좌·우 합작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으나, 1946년 9월9일 70세 일기로 숨을 거둔 뒤 인천 미추홀구 문학산 선산에 묻힌다. 1984년 12월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으로 옮겨졌다가 1994년 10월부터 국립묘지 임시정부 수반 묘소로 이장됐다.
학계에서는 그는 독립운동가로 탄생하는 과정과 마지막까지 인천지역과 많은 인연을 가졌다는 점과 독립운동 조직 내 통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점을 의미 있게 보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나타나는 홍진의 흔적들
인천시민답사단이 둘러본 지역은 중국 상하이와 자싱·하이앤·항저우·난징·전장 등 6개 도시다.
이들 지역은 임시정부 청사가 머물렀거나 정부 요인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임정 요인들은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 탄압을 피해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투쟁을 이어 나갔다.
항일 유적지에 전시된 내용은 백범 김구와 다른 임시정부 요인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홍진에 대한 설명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답사단은 그 사이에서 홍진의 흔적을 찾으려 노력했다.
상하이에서는 임시정부 유적지를 다니며 홍진이 국무령을 지낼 당시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조직의 운영 방향을 논의했을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싱과 하이앤에서는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임시 피난처를 둘러보며 독립지사들의 고난을 상상했다. 4일 찾은 자싱 매만가 76-4의 2층 숙소는 안에 있는 사람이 손님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고, 바닥에 비상 탈출구도 갖춰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번 답사단에 참가한 김경은(58·여)씨는 "마치 한 편의 첩보작전을 다루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며 "독립운동사에서 홍진은 안개처럼 잘 보이지 않았는데 김구의 행적과 같이 보니 그의 삶이 좀 더 선명해졌다"고 전했다.
답사단은 홍진이 의형제인 김응섭과 함께 유람했던 곳인 항저우 고려사와 서호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곳은 1923년 독립운동을 하며 느꼈던 시름을 달래고자 찾았던 곳이다.
1920년대 임시정부는 독립운동기구를 새롭게 설립하자는 창조파와 기존 임시정부를 개조하자는 개조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다.
전장은 홍진이 임시정부에 회의를 느껴 1923년 5월부터 1925년까지 은거했던 곳으로,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에 글을 기고하며 현재 독립운동계의 문제점을 짚고 민족 간 결합을 강조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번 답사에 해설사로 참여하고 책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만오 홍진>의 공동 저자인 신춘호 박사는 "1920년대 중국 여러 지역을 다니며 항일강연을 했을 때 홍진도 함께 갔을 것"이라며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답사단은 항저우 임시정부 유적지와 전장 임시정부 유적지 등에 인천일보·만오홍진기념사업회가 펴낸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만오 홍진>을 기증하며 중국 학계와 해설사들에게 홍진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펼쳤다.

▲인천시민답사단 "만오 홍진의 길 앞으로 더욱 발전하길"
'만오 홍진 인천시민답사단'은 만오홍진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인천일보·여행인문학도서관 길위의꿈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처음 진행된 데 이어 올해도 열리며 행사를 무사히 마쳤다.
참여자들은 인천지역의 독립운동가 홍진을 제대로 알 기회가 돼 뜻깊었다는 반응이다.
답사단 멤버 원미정(64·여)씨는 "중국지역을 직접 여행하고 독립운동가들 삶의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면서 많은 공부를 한 것 같다"며 "훗날에는 홍진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리거나 소설·드라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홍진은 1930년대 만주 지역에서 민족유일당 운동을 하고 무장투쟁운동도 펼쳤는데, 기념사업회가 이런 홍진의 활동도 조명해 프로그램을 확대하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세일 만오홍진기념사업회 상임대표는 "올해 프로그램에는 작가나 역사 강의 등을 하며 홍진 이야기를 알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와 의미가 깊었다"며 "사업회 내부에서 논의해봐야겠지만 만주 쪽에서도 홍진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그에 대한 새로운 모습도 볼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진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시절 좌·우의 통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점은 현대에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 점을 준다"며 "앞으로도 우리 인천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홍진이 시민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글·사진 안지섭 기자 ajs@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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