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 당선된 김대중 이후 가장 힘들다 [아침햇발]


안선희 | 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은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외환위기 속에서 당선됐을 때 이후 가장 벅찬(daunting)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 대통령이 6·3 대선에서 당선된 직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석좌 등이 연구소 누리집에 올린 ‘한국의 새 대통령: 프라이팬에서 불 속으로(설상가상이라는 의미)’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 말이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 5일 “지금은 제2의 아이엠에프(IMF)와 같은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은 아이엠에프 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지만, 이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고 본다. 지금 경제가 힘들긴 하지만,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도산이 속출하고, 실업률과 자살률이 치솟고, 거리에 노숙자가 넘쳐났던 외환위기 당시의 참담한 상황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 이후 가장 어려운 경제 조건에서 취임했다는 말은 무리가 아니다. 김 대통령이 취임한 1998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4.9%였다. 이후 취임 첫해의 성장률은 노무현 대통령 3.1%, 이명박 대통령 3.0%, 박근혜 대통령 3.3%, 문재인 대통령 3.4%, 윤석열 대통령 2.7%였다. 올해 한국은행이 전망한 성장률은 0.8%다.
이 대통령이 맞닥뜨린 난관은 낮은 성장률만이 아니다.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미국과의 관세협상은 이재명 정부의 초기 성적표를 좌우할 수 있는 시험대다. 미국 쪽은 지난달 실무협상에서 우리 정부에 소위 ‘비관세장벽’ 해소를 요구했다. 비관세장벽은 우리 국민의 건강, 환경 등을 지키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가 많아 어느 것 하나 쉽게 포기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미국이 원하는 대로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허용한다면 국민 건강과 축산농가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비등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부과한 고율의 관세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새 정부에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남겨놓은 ‘텅 빈 곳간’ 역시 골칫거리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세 수입은 2022년 395조9천억원, 2023년 344조1천억원, 2024년 336조5천억원으로 2년 연속 줄어들었다. 2년 연속 국세 수입이 감소한 것은 1990년 이후 처음이다. 국세 수입 감소는 기업 실적 저조 탓도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대대적인 감세정책 탓이 크다. 감세정책이 고약한 것은 감세의 효과가 감세를 시행한 그 정권 기간에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두고두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이재명 정부 5년 동안 80조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계산했다. 하지만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당분간은 국채를 상당 규모 발행할 수밖에 없는데, 윤석열 정부의 감세는 방조했던 보수진영은 벌써부터 “나랏빚 증가가 우려된다” “재정건전성을 지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일 태세다.
미래 먹거리 발굴 역시, 시급하지만 정답을 찾기 힘든 난제다. 우리 제조업은 반도체, 조선 정도를 제외하고 철강, 석유화학, 태양광 패널, 디스플레이, 배터리, 전기차, 가전 등이 모두 중국에 따라잡힌 상태다. 중국은 어떤 신산업이든 국가의 막대한 지원과 14억 인구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운 뒤 이후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성장 공식을 활용하고 있다. 중국처럼 강력한 국가주도 경제체제도 아니고 내수 시장도 작은 우리로서는 중국의 전략을 따르기 어렵다. 우리만의 21세기형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새로운 성장전략을 찾아내야 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아직 설왕설래만 있을 뿐이다.
성장률 제고, 대미 협상, 재정 운용, 신산업 발굴 등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다. 경제는 다른 분야에 비해 정부의 의지와 능력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 그런 만큼 국민과의 소통과 겸손한 자세가 중요하다.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을 투명하게 밝히고, 정부 능력의 한계를 솔직하게 토로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섣불리 호언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 부동산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그대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경제에서 ‘반드시’란 없다. 지금은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땀과 눈물, 인내”가 대통령과 국민, 모두에게 요구되는 시기다.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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