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 조선총독부와 공산주의로 보는 ‘폭력’

공산주의운동과 조선총독부의 통치권력은 현대 한국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금단의 영역'이었다. 폭력의 시대, 그 중심에 언제나 공산주의와 일제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것들에 관심을 가질 경우 자칫 그것들에게 동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폭력을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는 이미 역사 속에 남아버렸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폭력이란 무엇일까? 어떤 환경과 배경에서 폭력이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는 '폭력'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할 수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1920년대 조선에서의 공산주의운동과 조선총독부 통치권력을 고찰한다는 것은, 다양한 측면과 사례를 포괄한 폭력의 역사에 관한 기나긴 고찰에 입문하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글은 조선총독부의 통치권력이 공산주의운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에 관한 사법 대응을 어떤 과정을 통해 전개해나갔는지 규명하고자 했다. 일제가 '동양평화'와 '문명화'를 내세우며 사실상 폭력을 동반한 확장정책을 일관되게 고수한 사실은 명백하다. 그런데 그 문명과 평화를 내세운 확장정책의 중심엔 언제나 천황이 있었다. 당시 천황이 얼마나 침략적인 확장정책에 진심으로 동조했는가에 관한 문제와는 별개로, 일본제국의 내치와 외정은 천황의 이름으로 관료와 군벌, 의회정치인 등의 손에서 시행되었다. 결국 일제의 폭력은 '문명과 평화를 지향하는 천황의 통치'란 이름 아래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일제의 부속기관인 조선총독부도 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써 활약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조선총독부의 통치권력은 메이지 천황의 '병합조서'와 다이쇼 천황의 '관제개혁 조서'에 의거하여 천황 중심 통치 권력의 원리를 천명하며 형성되었다. 천황은 일본제국 전체 통치 대권을 소유한 국체의 핵심이었으며, 천황에 대한 침해 행위는 통치 권력의 근본적 침해로 간주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20년대 이전까지 일본 본토의 사법계는 천황 및 천황가에 대한 물리적 위협만을 천황 침해로 인식하고, 이에 대해 일본제국 형법 제73조인 대역죄를 적용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도 일본 본토와 마찬가지로 일본제국의 천황 중심 통치권력 인식을 배경으로 조선 내외에서의 한인 독립운동에 관한 사법대응을 전개해야 했다.
흥미롭게도 조선총독부는 사법적인 측면에서 1920년대 초까지의 독립운동을 천황 중심 통치 권력의 근본적 변혁 시도로 판단하지는 않았다. 독립운동은 '일본제국 통치 권력으로부터의 이탈'을 목표한 정치활동으로 인식되었으며, 그 대응은 보안법, 일본제국 형법, 그리고 3.1운동 이후 제정된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제령 7호)'을 통해 이루어졌다. 보안법은 '안녕질서의 유지'와 '정치에 관한 불온한 동작 및 치안방해 행위 통제'를 목표로 했으며, 제령 7호는 '정치 변혁'을 목적으로 다수가 공동으로 안녕 질서를 방해하거나 방해하고자 한 행위를 처벌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물론 보안법과 제령 7호는 '조선총독부 통치 권력이 통제하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변혁'을 겨냥한 것이었다. 특히 조선총독부는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정치적 위상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제령 7호를 신설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법령들은 천황이나 천황가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처벌하는 대역죄와는 구별되었다. 당시 독립운동의 목적은 주로 대한제국의 복귀이거나 공화국 수립이었으며, 천황제 폐지나 일본제국 국가 체제의 근본적 변혁을 지향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도 독립운동을 일본제국의 천황 중심 통치권력에 대한 근본적 변혁 시도로 간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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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제78호, 2025. 3.)에 '조선총독부의 통치 권력과 치안유지법 도입의 배경'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논문을 '제주의 소리'에 싣기 위해 일부 수정,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이희을(李熙乙)
계명대학교 사학과 학사졸업, 동 대학교 일반대학원 역사고고학과 석사졸업,
경북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경북대학교 사학과 4단계 BK연구단 참여대학원생
일제시기 정치사 전공, 현재 1920년대 조선 내 공산주의운동 관련 연구를 진행 중
논문
"권오설의 민족혁명운동론 수용과 민족해방운동 전술"
"1920년대 조선공산당의 민족개념과 민족해방운동의 성격"
" 조선총독부의 통치 권력과 치안유지법 도입 배경 -1920년대 초 공산주의운동 대응 변화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