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아 기업이 증명한 혁신의 본질

한겨레 2025. 6. 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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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333333;"><span style="color: rgb(0, 184, 177);">이코노미 인사이트 </span>_ Economy insight</span>
편집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틀을 깨는 사람들’
샐리 퍼시 지음 | 정윤미 옮김 | 미래의창 |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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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너무 엉망이라 보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이것이 2013년, A24라는 작은 영화사가 받은 첫 평가였다. 10여 년 뒤 A24는 멀티버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오스카 7관왕, 골든 글로브 6관왕을 포함해 약 158개의 트로피를 쓸어 담게 된다. 신발 브랜드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크록스도 마찬가지다. 사업 초반 크록스는 ‘지독하게 못생긴 신발’이라는 조롱에 시달렸다. 열혈 안티 블로그인 ‘나는 크록스가 싫어요 닷컴’까지 개설될 정도였다. 현재 15억 명의 게스트 이용자와 함께하는 에어비앤비 역시 초기에는 ‘이상하고 위험한 플랫폼’이라는 의심을 견뎌야만 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간명하다. 업계 내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전례 없는 혁신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A24는 영화제작자의 자유를 절대 보장하며 작품의 개성에 손대지 않는다. 옥외광고판 등의 전통적 마케팅 채널도 버렸다. 대신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익살스러운 포스팅, 감각적인 티저 등을 전파하며 Z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크록스는 ‘못생긴 신발’이라는 인식 자체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내세웠다. “추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라는 재치 있고 메타적인 슬로건을 제시하며 사업을 확장해갔다. 에어비앤비는 생면부지의 타인과 집을 공유한다는 괴짜 같은 상상을 과감히 현실로 옮겼다. 플랫폼을 둘러싼 회의적인 여론이 불거질 때면 보증 제도의 금액을 높이는 동시에 외려 글로벌 진출을 모색했다. 가히 업계의 이단아라 할 만하다. 창업 단계에서 이들은 명백한 아웃사이더였다.

중요한 것은 혁신을 관철하는 태도

상상해보자. 시장에 혁신을 일으키겠다는 야심을 품고 서비스를 론칭했는데, “사업 방식을 신뢰할 수 없다”라거나 “너무 실험적이라 계약하고 싶지 않다”라는 차가운 피드백이 돌아온다면? 보통 이런 혹평은 기업의 개성을 다지는 데 걸림돌이 된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떠나 핸들을 꺾었다가도, 막상 길이 전혀 나지 않은 울창한 밀림을 마주하면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틀을 깨는 사람들’에 소개되는 13개 기업은 기꺼이 그 밀림으로 들어선 별종들이다. 때때로 돌부리에 바퀴가 걸리고 나뭇가지에 유리창이 긁히더라도 혁신적 경영을 지속했다. A24는 이후로도 흥행에 실패한 작품들을 배출해 평론가들의 쓴소리를 들었지만 굽히지 않고 브랜드의 색을 담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냈다. 크록스는 타임지가 뽑은 ‘최악의 발명품 50개 목록’에 뽑히는 수모를 겪고서도 끝내 고급 브랜드 발렌시아가와 컬래버레이션하며 위치를 증명했다.

‘틀을 깨는 사람들’이 꼬집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이 책은 단순히 B급에서 출발해 전설이 된 이들의 신화적 구도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비난과 불신을 즐기며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는 ‘관철의 태도’야말로 혁신의 진가임을 상기시킨다. 한때 톱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갈등을 빚었던 스포티파이, 글로벌 언론사에 무차별 폭격을 당했던 틱톡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의 문법에 복종하는 대신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뚝심이 곧 브랜딩이 돼 주목을 샀다.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다. 날카로운 안티 여론이 조성될수록, 범재들의 의심이 증폭될수록 반작용처럼 열성 팬덤의 충성심도 커져간다는 사실을. 이러한 대립이야말로 기업의 존재감을 키우는 결정타라는 사실을.

세상은 게임체인저를 원한다

혁신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품고서 편집을 시작했을 땐 얼핏 고민이 들었다. 혁신은 이미 그 자체로 강렬한 메시지를 지닌 키워드가 아닌가. ‘파격을 실행하라’는 강권 외에 어떤 이야기를 던질 수 있을까. 그러나 원고를 소화한 끝에 얻은 것은, 모든 혁신이 곧 파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본질적 이해였다. 책 속의 기업들은 화제성을 이유로 혁신을 택한 트러블메이커가 아니다. 단지 브랜드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레드오션을 이탈하고 새로운 경로를 찾은 끈기의 개척자들이다. 미움받기 일쑤인 모난 돌이 될지언정 신념을 꺾지는 않았다. 이처럼 ‘틀을 깨는’ 작업은 일회성 파격을 위한 신의 한 수라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성장의 첫걸음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오늘날 대중은 정석 코스를 밟은 엘리트를 맹신하지 않는다. 맹렬한 끈기와 독창성으로 무장한 게임체인저를 기다릴 뿐이다. ‘틀을 깨는 사람들’은 그 신선하고 짜릿한 여정을 밝혀줄 헤드라이트다. 혁신의 본질을 깨닫고자 하는 근미래의 모든 이단아에게 일독을 권한다.

조소희 미래의창 편집자cabank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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