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관계는 안녕하신지요? [고평석의 인사이드아웃 AI]
(시사저널=고평석 (주)엑셈 대표)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의 1830년대는 두 가지 고민이 공존하던 시대였다. 한편으로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빈곤과 불평등 문제가 대두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이 좀 더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쪽에선 공장의 효율적 운영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천재 수학자 찰스 배비지다. 그는 책 《기계와 제조에 관한 경제학(On the Economy of Machinery and Manufactures)》에서 기계화로 인한 효율성 개선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기계를 사용하는 공장 경영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어디에 힘을 실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이 나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인간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점차 조직을 기계적으로 바라보며 효율 개선을 추구했다. 자연스럽게 인간은 하나의 부품으로 취급됐다. 그러던 중 1929년에 미국발 경제 대공황이 일어나며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게 됐다. 대공황으로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이 팔리지 않았고 실업이 크게 늘어났다. 더 이상 능률 개선도 필요 없고 생산성 고민도 필요 없었다. 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과정에서 강력하게 저항했다. 기업들은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인간관계론이 등장했다. 조직의 생산성이 반드시 물질적 요인에 의해서만 자극을 받는 게 아니고 감정, 기분과 같은 심리적 요인에 의해 강력히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함께한다는 소속감이 중요하게 됐다.

90여 년 전 불티나게 팔렸던 《인간관계론》
1929년 시작된 경제 대공황이 8년째에 접어든 1936년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등장했다. 약 90년 전에 세계적으로 무려 6000만 부나 팔린 책이다. 경제 대공황에 따라 인간을 중시하는 풍조로 인해 이 책에 대한 관심이 탄력을 받았다. 인간관계를 잘 맺으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니, 많은 이가 읽고 또 읽었다. 사람끼리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할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등을 다뤘다.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풍조가 1930년대에 등장한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의 1830년대, 경제 대공황기의 1930년대를 지나 이제 본격적인 AI 시대의 도래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공교롭게 100년 주기다. 모두 알다시피 오픈AI의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로 인해 (지식)노동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일부 노동으로부터 빠르게 해방되고 있다. 젠스파크AI 등 뛰어난 AI 솔루션을 활용해 작업에 몇 주가 걸릴 어마어마한 분량의 제안서를 몇 시간 안에 완성한다. 번역은 말할 것도 없다. 딥엘(DeepL) 등을 사용하면 전문 번역가 수준처럼 물 흐르듯 매끄럽진 않지만 어지간한 아마추어 번역가 수준은 따라잡은 느낌이다.
노동 해방의 기쁨과 별개로 AI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입'의 공간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업종을 불문하고 대체로 신입들이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다. 단순한 허드렛일을 통해 그 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며 노하우를 익히는, 소위 그 일에 대한 눈치를 기르는 과정 말이다. 선배들은 그 과정에서 성실하고 맘에 드는 후배가 있을 경우 자신의 비법을 아낌없이 전수해 준다. 이름만 도제가 아닐 뿐 실제로 수백 년 전의 도제 시스템이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다.
그런데 AI 등장 이후 회사나 조직은 그런 일을 신입이 아닌 AI에게 맡긴다.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프로그래밍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배가 후배의 코드를 보며 리뷰해 주는 것이다. 이제 코드를 짜주거나 코드 리뷰를 대신해 주는 깃허브 코파일럿(GitHub Copilot), 코더시(Codacy) 등 AI로 인해 선후배가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양질의 인력을 양성하는 모습이 점점 보기 힘들어진다. 실제 신입 프로그래머들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거나 선배들과 소통 없이 마냥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선배가 후배에게 일을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
부지불식간에 AI는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강점으로 가져온 협업의 DNA를 무디게 만들고 있다. 더 나아가 인간관계가 불필요하다고 느끼게 하기까지 한다. AI가 인간의 노동과 소통 방식을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시대라 해도 인간관계와 커뮤니티의 가치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물론 AI와의 정서적 유대, 맞춤형 감정 지원은 AI 시대의 새로운 모습이자 흐름이긴 하다. 하지만 AI는 인간의 대체자가 아닌 보조자다. AI가 주는 편의성과 효율성은 우리가 취하되, 인간 고유의 영역인 공감, 신뢰 등은 여전히 인간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AI를 사용하면서도 반복적 스트레스는 줄이고 인간 소통과 협업의 기회는 늘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고 삶에서 힘을 얻게 된다.
200년 전에는 기계의 효율적 사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100년 전에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면, 이제는 또 다른 미래의 관계론이 필요한 때다. AI와 인간의 협력적 공존 위에 인간만의 소통, 협업, 감정 교류는 지켜야 한다. 그 안에서의 성장과 보람의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 앞서 말한 소프트웨어의 일하는 방식에 코드 리뷰를 해주는 AI가 있다 해도 후배가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선배가 지켜보고 코치해 줘야 한다. 그래야 한 사람이 온전한 프로그래머로 성장한다. 단순히 기술 숙련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일을 대하는 긍정적 태도, 업무에서 느끼는 보람의 문제다. 선배가 코치해 주는 모습을 보며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짜는 것만 배우진 않는다. 어떤 가치를 갖고 일에 임하는지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이제 2030년대를 위해 미래의 관계론이 필요하다. AI와 인간과 각각 중요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AI와는 무의미한 반복적 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업무상 효율을 위한 관계를 맺고, 인간과는 진정성 있는 연결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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