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 빼고 다 가능"…윤종빈 감독의 '나인 퍼즐', 성공적 궤도 이탈 [인터뷰]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5. 6. 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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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윤종빈 감독 / 사진=

물리적 단서와 감정의 실마리를 동시에 좇는 추리극 디즈니+ 시리즈 '나인 퍼즐'은 윤종빈 감독에게도 새로운 실험의 무대였다. 리얼리즘의 세계를 중심에 뒀던 윤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보다 상징적이고 만화적이며 미장센이 강조된 서사 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 연출 과정에서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법을 적용했고, 시청자들의 집요한 추리를 끌어내며 더 넓은 가능성을 보게 했다.

이전까지 '범죄와의 전쟁', '공작', '수리남' 등을 통해 남성 중심의 권력 지도와 그 작동 방식을 펼쳐온 윤종빈 감독은 '나인 퍼즐'에서 전혀 다른 방향을 택했다. 캐릭터를 성별의 틀로 구획하지 않고, 고통과 상처, 감정의 궤적에 따라 이야기를 배치하며 정서를 중심에 놓았다.

특히 각본도 직접 써오던 그가 펜을 내려놓고 이은미 작가의 시선과 서사를 앞에 펼쳐 두고, 그것을 내밀하게 받아들여 서사의 밀도를 끌어올렸다. 그런 그의 변주는 '나인 퍼즐' 속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근본적인 힘으로 작동했다.

"제가 리얼리즘에 베이스를 둔 작품을 많이 했잖아요. 남자들이 많이 나오고요(웃음). 이 작품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여성 중심 서사인 데다가, 제가 했던 작업 방법과 거리가 있어서 흥미를 느꼈어요. 공간이나 캐릭터성, 의상도 새롭게 창조해야 했고요. 특히 이번 작품은 현실과 만화 사이의 세계를 연출해야 했기에 그 경계감 자체를 새롭게 설계하는 게 가장 도전적이었어요. 처음 해보는 작업이다 보니 재밌더라고요."

윤종빈 감독은 '나인 퍼즐'의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 이은미 작가가 설계한 이야기 흐름에 단숨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추리 장르에 익숙한 편은 아니지만, 관객의 관점에서 대본을 읽으며 이 이야기에 충실히 "낚였다"고 털어놓았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얘가 범인 같은데? 어 아니네?' 하면서 저 역시 충실하게 낚였어요. 추리물의 고수와 하수가 있다면 저는 중하수라고 생각하는데, 그만큼 관객처럼 순수하게 이야기를 따라갔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써놓은 설계대로 잘 낚였죠. 이야기가 그만큼 재밌기도 했고요."

윤종빈 감독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윤종빈 감독은 '나인 퍼즐'의 연출을 하면서 원작 대본의 구조를 최대한 존중하되, 캐릭터들의 감정선과 디테일을 섬세하게 조율해 나갔다. 특히 이나(김다미)와 한샘(손석구)이라는 두 주인공의 톤을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재해석이 이뤄졌다고 한다.

"전체 이야기의 큰 틀은 작가님이 짜놓은 판을 그대로 썼고, 제가 수정한 건 캐릭터의 디테일이에요. 이나나 한샘 같은 경우는 배우들과 이야기하면서도 바꿨어요. 작가님도 워낙 유연하게 열어주셨기 때문에 제가 편하게 고칠 수 있었던 것도 크고요."

가장 먼저 구축한 인물은 이나였다. 그는 이나를 단순히 유능한 프로파일러로 그리기보다 삼촌(지진희)의 죽음을 목격한 기점부터 내면적으로 퇴행하고 감정적으로 고립된 인물로 설정했다. 이나는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면 나머지는 인지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우리(제작진)가 내린 결론은 이나는 뭔가에 집중하면 거기에만 사로잡히는 인물이고, 집중 대상 말고는 블랙아웃을 하자라는 의견을 취했죠. 그런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사람의 감정은 일직선이 아니라 굉장히 닫혀 있는 상태고, 그래서 더 집요해 보일 수 있어요."

이나의 외형에는 탐정물의 상징성이 녹아 있다. 단정한 셔츠, 안경, 넥타이 같은 소품은 그가 탐정처럼 보이길 원하는 내면의 유아적 욕망을 상징하고 이질적인 자기 연출의 하나로 작동한다.

"저희끼리도 이나 캐릭터를 '보스 베이비' 같다고도 이야기했어요. 외형적으로는 어른 같지만, 감정의 결은 굉장히 유아적이에요. 그리고 그게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적 이미지를 더 역설적으로 보여주더라고요. 김다미 배우의 연기도 굉장히 좋았어요. 기존 프로파일러와 다르게 굉장히 섬뜩하면서도 익살스럽기도 했고요. 이런 느낌들이 잘 살아서 저도 재밌게 봤어요."

윤종빈 감독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나와 공조하는 한샘 캐릭터는 톤을 일치시키기 위해 비니, 문신을 취했다. 윤종빈 감독은 "정신적으로 뚜껑이 열릴 때마다 비니를 벗는 그런 모습들은 새로운 설정이었다. 문신도 마찬가지다. 이 세계 안에서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나의 만화적인 톤과 맞췄다"고 설명했다.

"'나인 퍼즐'의 스토리텔링 자체가 '어떻게'보다 '왜'에 설계가 맞춰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왜 이승주(박규영)라는 인물이 이런 일을 저질렀는가, 그 당위성을 부여하는. 그래서 이 인물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지를 설득하는 데 집중했어요."

마지막 에피소드 속 범인의 자가적 화형 장면은 원래 대본에는 없던 장면이었다. 윤종빈 감독은 더 극적이며 감정적으로 상징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 방식으로 화형을 택했다. 이는 곧 자기 자신에게 주는 처벌이자, 죽은 어머니에 대한 속죄로 읽히기도 한다.

"화형이 극악의 고통이라고 들었어요. 스스로에게 주는 최고의 벌이자 어머니가 죽은 방식으로 죽음으로써 용서를 비는 게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약물을 먹고 자살하는 거였는데, 그 결말로는 이 인물의 심리가 충분히 수렴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공간의 구성 역시 이야기와 감정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각 장소에 시대감과 질감을 부여함으로써 재개발이라는 주제를 시각적 층위로 풀어냈다. 그는 "경찰청은 신관 느낌, 한강경찰서는 구관 느낌, 한샘의 본가는 새것, 그의 거처지는 재개발 들어갈 것 같이 낡은 느낌을 일부러 냈다. 리얼한 현실 공간으로 촬영하기보다는, 톤을 의도적으로 올린 공간들을 통해 극 전체의 정서를 유지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체로 먼저 등장하는 피해자들의 존재감을 시청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이름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한 결정도 연출적 선택의 일부였다. 지진희, 이성민, 이희준, 황정민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초반에는 다들 시체로만 나와요. 잘 모르는 조단역을 캐스팅해서는 각인이 잘 안될 것 같은 거예요. 얼굴이 익숙해야 나중에 회상이나 플래시백 장면에서도 관객이 따라갈 수 있고, 감정적으로 연결되기도 쉽다고 생각했어요."

윤종빈 감독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1회에서 퍼즐 연쇄 살인범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왜 사람을 죽여서 사람 살 곳을 만들지?"라는 대사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윤종빈 감독 역시 이 대사를 '나인 퍼즐'을 설명하는 가장 큰 키워드라고 이야기한다.

"대본을 읽었을 때 이 대사가 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큰 키워드라고 생각했어요. 도시 재개발이라는 게 한국처럼 서울 중심으로 돼 있는 나라에선 안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많은 비극이 있었죠. 그 말 한마디가 이 작품 전체를 설명해 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래는 다른 인물의 대사였는데 범인에게 넘겨준 거예요"

이번 작업은 윤종빈 감독에게 특별한 도전이었다. 그는 한국 콘텐츠에서 추리물이 드문 만큼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해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흥미가 일었다고 한다.

"전 안 해봤던 작업이어서 재밌었어요. 이번에 안 하면 평생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해보고 싶었고, 실제로 재밌었어요. 한국은 일본이나 유럽과 달리 추리 장르의 정통이 거의 없는 편이잖아요. 그래서 더 하고 싶었죠. 사실 작품을 연출하는 데 장르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야기가 매력 있고 흡입력 있는 대본인가가 저한테는 중요해요. 할 말이 있는 이야기인가, 그게 핵심이죠. 로맨틱 코미디만 빼고요. 그쪽은 제 DNA가 없어요. 잘 못 봐요."

현재 그는 차기작으로 군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2016년에 처음 구상해 오랫동안 간직해온 시나리오로,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 이후 두 번째 군인 소재 영화다.

"2016년에 대본을 썼고 계속 영화를 찍으려다가 올해 구체화를 해서 내년 봄쯤에 촬영 들어갈 것 같아요. 제가 원래 해왔던 남자들만 나오는 이야기예요(웃음).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의 두 번째로 내놓는 군인 주연 영화예요. 그 정도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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