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칼럼 제목이 첫 책 제목이 되다 [.txt]

한겨레 2025. 6. 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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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약 이십년 전 이야기다.

때마침 신문사에서 칼럼 연재 제의가 있었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제목의 첫 칼럼을 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추석 칼럼의 유명세로 인해 책을 내게 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순서는 거꾸로다.

이것은 모두 첫 책의 출간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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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책 ㅣ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귀국 후 10년의 침묵 끝에 칼럼 집필
예상치 못한 반응에 출간 제안까지
에세이 쓰기, 연구·교육에도 도움돼
더 많은 사람을 향해 이야기해보자던 참에 칼럼 연재 제의가 들어왔다. 첫 칼럼은 첫 책의 제목이 되었다. 김영민 제공

벌써 약 이십년 전 이야기다. 오랜 유학 생활과 몇년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것이. 귀국하고 나니 차츰 대중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나와서 이야기해달라는 제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어떤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다. 한국을 오래 떠나 있었을 뿐 아니라 소장 학자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자기 연구 분야를 조금 알 뿐이다. 조용히 하던 공부에나 몰두해야지, 이렇게 마음먹었다.

그렇게 십년이 지났다. 오랫동안 목표로 했던 연구도 마무리했고, 전문 분야 이외에도 지식이 어느 정도 쌓였겠다, 한국 사정에도 다시 익숙해졌겠다, 죽기 전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신문사에서 칼럼 연재 제의가 있었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제목의 첫 칼럼을 실었다. 그리고 이 제목이 나중에 내 첫 책 제목이 되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l 어크로스(2018)

첫 칼럼 치고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칼럼을 몇편 더 쓰자, 에세이집을 내자는 출판사 제안이 오기 시작했다. 그중 한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얼마 지나자, 추석 시즌이 되었다. 그때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은 내가 쓴 글 중에 가장 많이 읽힌 글이 되었다. 한 사회과학자가 그 칼럼이 퍼져나가는 과정을 연구하기까지 했으니 예상치 못한 큰 반향을 얻은 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추석 칼럼의 유명세로 인해 책을 내게 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순서는 거꾸로다. 책을 내기로 하고 나서, 그 칼럼이 나오게 되었다.

첫 책이 나온 뒤 이곳저곳에 글을 쓸 기회가 생겼다. 그뿐 아니라, 티브이방송국으로부터 많은 출연 제의, 진행자 제의, 심지어 광고모델 요청까지 있었다. 모두 거절했다. 그 일들을 다 잘할 자신이 없었다. 자칫 힘에 겨워 연구나 교육을 소홀히 하게 될지 모른다. 티브이에 출연하는 일은 글 쓰는 일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최종 방영물에 대한 편집권도 없다. 그런 일은 공부가 일단락된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에세이를 쓰고 책을 내는 일 역시 연구와 교육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고?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연구한 내용은 자연스럽게 에세이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일을 잘 배분만 한다면, 연구와 교육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람들도 알게 되어 좁았던 견문이 조금 넓어졌다. 그리고 상상만 하던 일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이나 졸업생들과 함께 해외 답사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경제적 여유도 없었지만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전이어서 마음껏 세계를 돌아볼 수 없었다. 답답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다시 그러한 답답함을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

그래서 올해 여름에도 떠난다. 이것은 단순히 놀러 가는 일이 아니다. 여행은 함께 가는 사람이 누구냐가 가장 중요하지 않던가. 먼저 심사숙고해서 참가자들을 모은다. 나와의 관계뿐 아니라 학생들끼리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렇게 모인 답사 팀원들은 반년에 걸쳐 그해 답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책을 함께 읽는다. 해당 지역 여행 안내서를 읽느냐고? 천만에. 그 정도 정보는 인공지능을 통해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유럽에 가기 위해 ‘몸젠의 로마사’에서 시작하여 서양 미술사를 거쳐 유럽도시사에 대한 연구서까지 두루 읽는다. 현지에 도착하면, 미리 구해둔 큰 집에 함께 묵으면서 유적지를 보고,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써온 글들을 토론하고, 오래된 고딕 성당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갈 것이다. 이것은 모두 첫 책의 출간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그리고 다음 책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이 책의 부제는 ‘논어 에세이’다. 고전에 자의적인 의미를 마구 부여하는 경향, 고전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경향 등을 비판하고자, 고전을 읽으며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 읽기라고 주장했다. 그 텍스트 읽기의 주된 방법은 역사적 맥락의 이해다. 누구나 자기 주관대로 고전을 읽을 자유는 있다. 동시에 그러한 고전 읽기가 객관적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 책은 올해 출간될 논어 시리즈 책들의 서곡에 해당한다. 사회평론(2019)

공부란 무엇인가

평생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지속적으로 한 일이 있다면 공부다. 그러니 공부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공부는 사실 즐거운 일이며, 그 즐거움은 공부를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을 때 온다고 생각한다. 이런 취지를 역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숨겨진 전제를 밝혀보거나 개념을 재정의해보자는 등의 실제로 어떻게 읽고 쓰고 토론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용적 조언까지 담고자 했다. 물론 휴식의 조언도 포함했다. 잘 쉬는 법도 공부해야 하니까. 어크로스(2020)

중국정치사상사

고대 중국에서 현대 중국에 이르기까지 정치사상의 역사를 썼다. 이 책의 핵심은 수년 전에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라는 영어책으로 먼저 세상에 나왔다. 영어판과 한국어판이 나오고 몇년 뒤 대만에서 중국어판이 나왔다. 그간 중국정치사상사 서사를 지배해온 목적론적, 민족주의적 해석을 탈피하고자 하는 동시에, 과거 중국의 국가가 전제국가였다는 주장을 교정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유교’라는 개념에 의지하지 않고 중국의 사상을 설명한 데 이 책의 특징이 있다. 사회평론아카데미(2021)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정치를 혐오하는 경향을 불식하고, 정치에 대한 건강한 관심을 촉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 공존해야 하는 한, 정치를 피할 도리는 없다. 문제는 정치를 얼마나 잘하느냐일 뿐이다. 정치를 하는 한 권력을 피할 도리는 없다. 문제는 권력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일 뿐이다. 불이 위험하지만 불을 통해 많은 혜택을 입듯이, 정치는 때로 혐오스럽지만 정치를 통해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다. 어크로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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