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이자 단짝, 한 모녀의 처절한 싸움기 [기자의 추천 책]

권은혜 기자 2025. 6. 7.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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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녀 이야기는 좀 뻔해.' 그런 생각을 할 때쯤 40여 년 전 모녀가 나를 또 홀려놓았다.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비비언 고닉과 그녀의 어머니 베스 고닉에 대한 이야기다.

이탈리아계 유대인 출신으로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헌신했던 어머니 베스 고닉은 "당장 그만두고 집에서 애들이나 키우라"는 남편의 불호령에 공산당 활동을 중단한다.

"이 징글징글한 애증 때문에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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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글항아리 펴냄

‘이제 모녀 이야기는 좀 뻔해.’ 그런 생각을 할 때쯤 40여 년 전 모녀가 나를 또 홀려놓았다.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비비언 고닉과 그녀의 어머니 베스 고닉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모녀의 처절한 싸움기다. 이탈리아계 유대인 출신으로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헌신했던 어머니 베스 고닉은 “당장 그만두고 집에서 애들이나 키우라”는 남편의 불호령에 공산당 활동을 중단한다. 자신만만하고 똑똑했던 젊은 활동가는 부엌을 주무대로 삼으며 오직 로맨틱한 사랑으로만 자신의 삶을 설명하게 된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엄마는 스스로를 불행 서사에 가두었다. 딸 비비언은 대학 입학을 계기로 그런 엄마에게서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지성의 성전에서 한때 엄마가 꿈꿨던 다른 세상, 진짜 세상을 맛본다.

문제는 딸이 엄마에게 맞설 만큼 ‘지나치게’ 똑똑해졌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싸운다. 어느 토요일 오후, 쫓고 쫓기는 육탄전을 벌인 끝에 피와 비명, 깨진 유리 조각으로 난장판이 된 거실을 바라보며 비비언은 생각한다. “이 징글징글한 애증 때문에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 싸움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왜냐하면 모녀는 거울처럼 닮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꼭 너 같은 딸을 낳아’라는 저주는 전승되고, 신랄하게 비난해온 엄마의 단점을 딸이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유구한 역사다.

모녀는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납더라도 ‘애착’ 관계이기에. 엄마가 가진 오만과 경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었음을 깨달은 딸은 묵직한 돌을 가슴에 얹는다. 노모가 딸에게 사과하며 솔직하게 자신의 모자람을 고백하는 책 말미의 문장은 압권이다. “너한테는 일이 있었잖아. (···) 나한테는 네 아빠 사랑밖에 없었어. 인생 살면서 누릴 게 그것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그 사랑을 사랑했다. 아니면 뭘 어쩔 수 있었겠니?”

돈도 되지 않는 문학을 한답시고 대학을 두 번이나 간 딸을 조롱하던 엄마는 결국 딸의 등을 강하게 밀어준다.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

권은혜 기자 kik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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