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없었다면 반 고흐도 없었다
평생 형 돌봐준 아우
빈센트 형제 죽음 뒤
예술적 유산 떠안은
동생 테오의 부인 요
Mrs. 반 고흐 메이커
숨겨진 삶·헌신 담아
빈센트를 위해/ 한스 라위턴/ 박찬원 옮김/ 아트북스/ 4만2000원



요는 반 고흐 형제의 서신을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로 하나하나 읽고 필사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파킨슨병으로 펜을 쥘 수 없게 된 말년까지 이어갔다. 1914년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서간집은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대중이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후대 연구자들과 미술사가들은 요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반 고흐 신화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 평가한다. 그녀는 테오가 살아 있을 때 미처 완성하지 못한 예술적 유산 관리와 작품 보급이라는 중대한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반 고흐 작품이 현대 미술사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결정적 토대를 마련했다.
가장 궁금한 대목은 요가 동생에게 후원받는 무명의 화가 ‘아주버님’을 처음 만난 순간이다. 요는 두 형제의 예술혼에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다. 테오와 결혼하면 빈센트도 자신의 인생에 들어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결혼 전 테오에게 보낸 요의 편지엔 “우리가 결혼하면 내가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될까요. 그가 나를 성가신 존재로 볼까 봐 두렵습니다…. 그에게 편지를 써서 당신의 조그만 아내는 거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니 모든 게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을 거라 전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요양원에서 파리로 나온 후에야 빈센트를 처음 만난 요는 동생에게 이렇게 썼다. “나는 아픈 사람을 예상했다. 그런데 내 앞에는 건장하고 넓은 어깨에 혈색 좋은 사람이 서 있었다. 유쾌한 표정에 뭔가 아주 단호함이 풍기는 외모였다…. 테오가 그를 침실로, 그의 이름을 물려받은 우리 아기의 요람으로 안내했다. 두 형제는 평온하게 잠든 아이를 말없이 바라보았고, 둘 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빈센트가 웃으며 나를 돌아보더니 요람 속 소박한 뜨개 이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를 너무 떠받들어 키우지 마세요, 제수씨’”
요는 여성운동에 참여하며, 정의롭고 독립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한 진보적인 여성이기도 했다. 방대한 반 고흐 작품 판매자로서 요는 빈센트의 미술 알리기만큼이나 ‘예술이 대중을 고양한다’는 신념에 투철했다. 그래서 미술관을 상대로는 가격을 낮추기도 했다. 핵심 컬렉션은 가족 소장을 결정하고 절대 판매하지 않았다. 예술가들의 조력자를 넘어 사회변화를 꿈꾼 사상가이자 행동가였던 것이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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