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를 넘어선 채색주의와 원시주의 미학의 거장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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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6월 7일, 19세기 후반 유럽 미술계를 뒤흔든 후기 인상주의 거장 중 한 명인 화가 폴 고갱이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871년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증권 중개인으로 안정적인 삶을 시작하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문명에 대한 회의와 원시적인 삶에 대한 갈망으로 고갱은 1891년 타히티로 떠났다.
생전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폴 고갱은 인상주의를 넘어선 독창적인 종합주의적 색채론과 원시주의적 미학을 구현한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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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48년 6월 7일, 19세기 후반 유럽 미술계를 뒤흔든 후기 인상주의 거장 중 한 명인 화가 폴 고갱이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고갱은 진보적인 언론인 아버지와 페루계 사회주의 활동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했다. 그는 세 살 때 페루 리마로 이주했고, 어린 시절 페루에서 겪은 경험은 그의 예술에 이국적인 영감을 불어넣었다. 일곱 살 때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해군 예비학교 입시 낙방 후 상선 견습생으로 세계를 항해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
1871년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증권 중개인으로 안정적인 삶을 시작하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주말마다 그림을 그리며 아마추어 화가로 활동했고, 카미유 피사로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했다. 그는 1879년부터 1886년까지 인상주의 전시에 꾸준히 참여하며 미술적 역량을 키웠다. 1879년에는 고수입을 올리는 성공적인 사업가이자 그림 수집가로 자리매김했다.
1882년 프랑스 주식 시장 붕괴를 계기로 고갱은 전업 화가의 길을 선택하고 예술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는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에서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했다. 1888년에는 아를에서 빈센트 반 고흐와 짧지만 강렬한 예술적 교류를 나누었으나 성격 차이로 결별했다.
문명에 대한 회의와 원시적인 삶에 대한 갈망으로 고갱은 1891년 타히티로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원주민의 삶과 자연을 강렬한 색채와 단순화된 형태로 화폭에 담았다. 타히티에서의 삶은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고갱은 생의 마지막 10여 년을 타히티를 비롯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보냈다. 그는 1901년 마르키즈 제도의 히바오아로 이주했고, 1903년 5월 8일 5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생전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폴 고갱은 인상주의를 넘어선 독창적인 종합주의적 색채론과 원시주의적 미학을 구현한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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