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흐를 불멸로 끌어올린 불굴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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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의 작품은 당대 문학지에 게재될 때마다 큰 충격을 줬다.
이런 노력은 고흐 사후 10여 년이 지난 뒤인 1905년 그가 기획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전시회가 대중의 관심을 모으면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고흐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작품 전시와 구매 요청이 쇄도했는데, 당시 그녀의 하숙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집 전체가 온통 고흐 작품으로 가득해 침실 벽에는 남은 공간이 거의 없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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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아내인 ‘요 반 고흐 봉어르’… 고흐 사후에 작품 관리-홍보 전념
10여 년 뒤 전시회 통해 인기 얻어… 형제의 편지 필사-번역해 알리기도
◇빈센트를 위해(요 반 고흐 봉어르, 빛의 화가를 만든 여성)/한스 라위턴 지음·박찬원 옮김/716쪽·4만2000원·아트북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의 수석 연구원인 저자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생전에 작품을 한두 점밖에 팔지 못할 정도로 홍보나 판매와는 거리가 멀고, 3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고흐가 어떻게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됐을까. 자기 삶과 예술,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며 겪는 고통을 절절하게 담은 그의 편지는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

“중대한 순간이었다. 요가 테오의 역할을 자임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트레스가 무척 컸지만, 그녀는 여행 가방에 빈센트의 드로잉을 확실하게 챙겼다. 급격하게 나빠지는 테오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빈센트의 작품이 브뤼셀 전시회에서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전시되도록 세심하게 살폈다. 이것이 앞으로 그녀가 평생 맡아 수행하게 될 반 고흐 예술 유산의 홍보와 전파라는 명예로운 과업의 출발점이었다.”(PARTⅡ ‘테오와 빈센트, 두 사람과의 생활’에서)
남편 테오가 숨졌을 때 요는 28세였다. 결혼 생활은 불과 2년 남짓. 충분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나이였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당연한 듯 보였다. 하지만 요는 고흐 형제가 남긴 예술적 유산을 관리하고 알리는 걸 자신의 소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하숙집 경영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동시에 고흐 형제의 편지를 손수 필사하고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는 등 ‘고흐 알리기’에 나섰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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