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보수라는 간판 내리고 강북·비정규직 품는 정당 돼야"
4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1시간 후 열릴 이재명 대통령 취임식 준비로 부산했다. 평소보다 출입 통제가 엄격해진 의원회관 입구에선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민주당 의원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가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을 만났다. 대선 패배 후 국민의힘은 어떤 길을 마련할지 궁금해서다. 소장파, 서울 강북, 30대… 김 의원을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국민의힘에서 쇄신 얘기가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김 의원은 “유세 과정에서 마주한 민심이 지난 총선보다 차가웠다”며 “‘보수’라는 간판도 내려놓을 각오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대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A : “냉정한 성적표다. 몇 번 모의고사를 치른 뒤 최종 시험 결과가 나온 거다. 12·3 비상계엄 후 국민의 70%가 탄핵에 찬성했다. 그런데 우리는 탄핵에 반대하는 30%의 거품이 빠질까봐 전전긍긍하면서 헌법재판소, 광장, 윤석열 전 대통령 관저 앞으로 달려갔다. ‘오답’이라는 모의고사(여론조사) 점수가 계속 나왔는데도 오답 노트를 무시하고, 해오던 대로 시험을 봤으니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Q : 오답 노트를 왜 무시했을까.
A : “‘이건 오답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소수였고, 한편으로는 그런 지적이 계파 싸움처럼 되어버려 의미가 희석되기도 했다.”
Q : 유세에서 느낀 민심은 어땠나.
A : “지난 총선보다 안 좋았다. 지지자 중에서 ‘이게 뭐냐’며 꾸짖는 분들이 많았고, 책임감과 죄책감에 유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이건 나은 편이다. 선거 치를 때 진짜 무서운 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화를 내면 ‘사실은 이렇습니다’라고 설명을 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민심이 너무나 차가웠다. 이번에 수도권에서 선거 치른 사람들은 여름날의 찬바람을 느꼈을 거다. 도봉갑 득표율은 이재명 후보 49.06%, 김문수 후보 41.18%였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로 되돌아간 셈이다. 탄핵 이후 치른 21대 총선에서 내가 얻은 득표율이 41%였다.” (김 의원은 지난 22대 총선에선 49%를 득표해 당선됐다.)
Q : 대선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건?
A : “복기해 보면 중간중간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다. 한동훈 전 대표가 내건 조건 3가지(탄핵 반대에 대한 당의 입장 선회, 윤 전 대통령 부부와 당의 절연, 전광훈 목사 등 극단 세력과의 선 긋기)가 무리한 게 아니지 않았나. 특히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단일화를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했다. 그런데 김문수 후보가 거부하면서 단일화 가능성도 사라진 거다. 단일화가 됐다면 해볼 만한 선거였다고 생각한다.”
A :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주변에 기권한 사람들이 많았다. 탄핵에 찬성하고 윤 전 대통령과 절연을 요구했던 우리 당 지지자들이 이탈한 거다.”

Q : 당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A :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윤 전 대통령을 배후로 호가호위했던 사람들, 그 연장선에서 당에 해로움을 줬던 분들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김기현·나경원·윤상현, 소위 ‘김나윤’은 빠질 수 없다.”
Q : 민심과 괴리된 ‘TK당’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쇄신이 안 됐다.
A : “이번 대선을 보면 ‘20대는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라는 등식이 또 무너졌다. 젊은 세대가 갖는 박탈감과 사회적 차별을 무시한 결과다. 국민연금 개악이 대표적이다. 30대인 내 친구들은 탄핵 못지않게 분노했다. 국민의힘은 이런 지점에서 새출발해야 한다. 서울로 한정한다면 강남이 아니라 강북, 대기업 노조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세대가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환골탈태는 불가능하다. 이참에 ‘보수’라는 간판도 내렸으면 좋겠다.”
Q : 무슨 말인가.
A : “보수라는 정체성을 우리가 논의해서 채택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붙어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보수는 이래야 한다’며 자신을 옭아맸던 것 같다. 시장자유주의를 지켜야 한다면서, 사실 그걸 잘 지키지도 않았다. 우리가 어떤 가치에 공감하고 무엇을 지향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Q : 당내 논쟁이 필요할텐데.
A : “간절하다. 치열하게 토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당이 무서운 건 토론을 안 한다는 점이다. 당이 어떤 결정을 할 때 관성에 따라 움직인다. 이번에 윤 전 대통령 탄핵 과정도 그랬다. 당론이 가장 중요하고, 과거 사례를 보면 대통령을 잘 지켜야 하고… 그러면서 묵인 속에 흘러갔다. ‘정풍 운동’이 벌어지고, 서로 치고받아야 국민들도 ‘뭔가 하는구나’ 하지 않겠나.”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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