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작곡가와 46세 지휘자, 국악관현악 ‘선’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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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스테이지] 작곡가 이하느리·지휘자 최수열, 서울시국악관현악단 공연
‘K클래식 시대’라지만, K작곡가의 기악곡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 윤이상, 진은숙 정도다. 그런데 무서운 10대가 나타났다. 지난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바르톡 국제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한 한예종 재학생 이하느리(19)다. 지난 3월과 4월 임윤찬이 통영과 런던에서 그의 피아노곡을 연주했고, 오는 19일 홍진기창조인상을 최연소 수상하는 등 요즘 가장 핫한 음악가다. 26일에는 선을 넘는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최수열(46) 수석객원지휘자가 이끄는 ‘장단의 재발견’ 공연에 선보일 ‘Unselected Ambient Loops(언셀렉티드 앰비언트 루프스) 25-25’는 그의 첫 국악 도전이다. 최수열은 서울시향 부지휘자 등을 지낸 국내 대표적인 젊은 지휘자로, 2023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현대음악 프로젝트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를 이끌고 있다. 이하느리에게 첫눈에 반한 최수열이 7월 3일 예술의전당에서 초연할 다른 곡까지 한꺼번에 위촉했단다.

“2년 전 작곡가님이 제 공연을 보러 왔을 때 독특한 예술가의 아우라를 느꼈어요. 지난해 중앙음악콩쿠르 1등 기사를 보고 더 큰일을 벌일 것 같다 싶었는데, 바르톡 콩쿠르까지 우승하더군요. 감이 맞는구나 싶어서 음악을 들어봤죠. 30초 듣자마자 바로 같이 해야 되겠다 결심했어요. 공공기관으로선 모험일텐데, 오히려 신선하다고 받아주더군요.”(최)
국악기에 관심 있던 이하느리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하지만 국악기만의 편성으로 40분 짜리 곡을 쓰라는 주문은 ‘노답’이었다고. 종묘제례악도 들어본 적 없는 국악초보는 정일련, 김성국 등 기성 작곡가의 악보와 전통국악을 학습하며 국악 안에서 취향을 찾는 작업부터 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는데, 쓰다 보니 너무 조심하면 음을 못쓰겠더라고요. 그냥 맘대로 하고 디테일한 부분은 리허설 하면서 고친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썼습니다.”(이) “국악관현악에서 40분은 이례적이죠. 길어야 15분인데, 저는 늘 그게 답답했어요. 중심이 되는 곡이 없으니까요. 작곡가님이 그런 곡을 써줄 걸 믿고 있어요. 국악기만 써 달라고 한 건 제 원칙이고요. 국악기 음량이 작다고 보통 더블베이스나 팀파니로 음량을 늘리는데, 국악기의 재밌는 소리로만 조합해도 되거든요.”(최)
‘장단의 재발견’이란 공연명도 작곡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작곡에 있어 ‘반복’에 꽂혀있기 때문이고, ‘Unselected…’란 곡명도 그런 맥락이란다. “국악을 공부해보니 국악에서 사용하는 장단도 결국 반복이 관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본 아이디어는 일정 주기로 반복되는 것들에 대한 거예요. 이건 비밀인데, 악장을 7개로 나눠서 전반부 3개와 후반부 3개 안에 각각 작은 구성이 있고 그 사이를 ‘인터미션’이 연결하죠. ‘볼레로’ 같은 무한 루프냐고요? 비슷할 수도 있겠네요.”(이)
악기에 영감을 받는다는 그는 국악에서 특히 타악기에 영감을 받았단다. “국악 타악기들이 정말 재밌어요. 일단 박부터 엄청난 악기에요. 서양에는 그런 비슷한 소리도 스피릿도 없거든요.”(이) “오케스트라에선 타악기가 곡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특수 효과를 낼 때 쓰는데, 국악관현악은 타악이 주류죠. 장단을 기본으로 깔면서 가고 장구 같은 악기가 곡의 흐름을 쥐고 있으니까요. 그게 양악과 가장 다른 점이에요.”(최)
두 사람은 국악관현악에 수혈된 초록 피다. 둘 다 현대음악가로서 국악에 대한 의무감 없이 국악기로 소리 실험을 하고 있을 뿐인데, 왠지 크게 사고 칠 기세다. “악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공부한 것 말고는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썼어요. 듣도 보도 못한 곡일지는 모르겠네요.”(이) “저도 현대음악 관점이고, 국악에 대한 애정은 몰라도 국악기가 좋아요. 오케스트라에 없는 소리니까요. 음정도 잘 안 맞는데, 그게 기본인 게 너무 좋아요. 시작할 때 튜닝을 하는데, 저거 왜 하지 싶어요. 정확한 E♭이 아니라 그 언저리에서 아무도 안 맞거든요.(웃음) 그냥 하나의 의식인가 봅니다.”(최)
임윤찬, 이하느리 피아노곡 초연하기도
두 사람은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하느리가 최수열보다 차분했는데, 틈 날 때마다 초콜릿을 까먹어 껍질이 수북이 쌓인 걸 보니 소년 맞다. “어리다는 편견은 조심스러워요. 깍듯이 존대말을 쓰고 ‘작곡가님’이라고 부르고 있죠. 저보다 27살 어린데도 말이 잘 통하고 저보다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최)
쉴 때는 클래식을 전혀 듣지 않고 김동률의 노래로 힐링한다는 최수열과 달리 이하느리는 최근까지 자나깨나 클래식이었다. “걸그룹이요? 관심 없어서 아예 몰라요. 얼마 전 우연히 제이딜라라는 힙합 프로듀서의 음악을 듣고 시야를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중음악도 좀 듣게 됐죠. 대중음악도 전위적인 걸 좋아하고, 지금은 일본의 하세가와 하쿠시에 꽂혔어요. 굉장히 전위적인 전자음악인데 팬이 엄청 많죠.”(이)
홍진기창조인상 수상 소감을 물으니 “어려서부터 인복이 엄청나다”고 답한다. 임윤찬과의 만남도 같은 차원이다. “늘 운이 좋아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상도 그런 일환인 것 같아요. 윤찬 형은 저 자체를 포커싱 한 게 아니라 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이 많아요. 저와 대화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위촉했을 뿐이죠. 윤찬 형뿐 아니라 지금까지 만났던 연주자들이 다 제 작품을 잘 대해주셨고요.”(이)
7월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될 10분 길이의 타악기 협주곡은 ‘Unselected…’와는 무관하지만, 둘 다 ‘미친 곡’이 될 것 같다. “짧은 곡이라 다른 곡과 커플링을 해야 되는데, 이 곡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작곡가님에게 아이디어를 구했어요. 슬로베니아의 비토 주라이를 추천하더군요. ‘미친 곡’이라길래 들어봤는데, 정말 미쳤던데요.(웃음)”(최)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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