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걷다’ 대구 근대골목 투어, 청라언덕에서 시작된 작은 혁명

대구 중구 동산동 일대, 아담한 언덕과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조용히 흐르는 바람. 이곳은 단지 '오래된 동네'가 아니다. 100년 전, 근대문명이 들어오던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대구사람들의 삶과 신념이 지금도 골목마다 남아 있는 대구 근대골목 투어의 출발점이다. 그 중심엔 청라언덕, 계단길로 이어진 3·1운동길, 계산성당, 이상화·서상돈 고택, 이상정 장군 생가(이상정이 숨었던 굴이 아직도 남아있다, 현재 식당) 등이 있다.

◆청라언덕, 근대 대구의 출발점
푸른 담쟁이 넝쿨로 둘러싸인 언덕 위, 선교사들이 의료선교에 나섰던 1백년 역사의 스윗즈 주택, 블레어 하우스, 챔니스 주택이 들어서있다. 옛 선교사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미국 선교사들이 대구에 정착하며 병원과 학교를 세웠고, 이 언덕은 '선교의 언덕'이자, 대구 근대화의 시발점으로 불린다.

◆대구제일교회, 대구 최초의 교회
구 대구제일교회(1893년 설립). 대구에서 최초로 설립된 개신교 교회로, 한때 의료와 교육, 복지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신명고 쪽 동산에 새 교회를 지어 옮겼지만 구 대구제일교회는 붉은 벽돌로 지어졌 웅장한 외관 만이 아니라 신앙의 중심을 잡아가는 역할도 했었다. 예배 시간 외에는 출입 가능하며 내부에는 빛에 반사된 유리장식이 인상적이다.
◆ 3·1만세운동길, 거리로 나선 사람들
청라언덕에서 내려오면 마주하는 3·1운동길. 이곳은 1919년 기미독립만세 시, 대구 지역 청년들과 시민, 서문시장 상인 등이 계산 성당 앞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던 실제 독립운동 로드다. 당시 경북 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이었으며, 대구가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지금은 작은 표지석과 벽화만이 그날의 기억을 말해주지만, 골목을 걸으면 골목마다 느껴지는 단호한 발자취가 있다. 학생, 상인, 종교인,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외친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이 오늘도 울리는 듯하다. 매년 3.1절이면 이곳 중심으로 재현행사가 펼쳐지기도 한다.
◆계산성당, 붉은 벽돌에 새겨진 믿음
3·1운동의 무대였던 계산성당은 1902년 건립된 고딕 양식의 천주교 성당이다. 지금은 대구 범어대성당이 주교좌본당으로 바뀌었지만 그 이전까지 계속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의 지위를 가졌었다, 계산성당은 보수를 할 때도 다 뜯어내지 않고, 부서진 벽돌만 갈아서 끼워넣었고 한때 칠해졌던 벽돌의 회칠을 다 갈아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중국 대목이 와서 지었다는 계산성당은 지금도 처음 지었을 때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종탑의 종을 치기도 한다. 붉은 벽돌, 뾰족한 첨탑, 스테인드글라스가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건물은 근대 건축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항일운동의 거점, 대구 천주교신앙의 중심지로서의 의미도 크다.
성당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신자는 물론 관광객도 누구나 시간에 맞춰서 미사를 드리거나 묵상기도를 드릴 수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촬영지이기도 해 많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상화 고택, 시인의 저항이 살아 숨 쉬는 집
계산성당에서 뒷문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상화고택이 나온다. 계산성당 정문으로 나가면 왼쪽으로 돌아서 계산 서원을 지나서 나오는 골목길로 들어서면 된다. 바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저항 시인 이상화의 고택이다. 상화 시인은 대구에서 태어났고, 북성로 우현서루에서도 공부했다. 대구에서 태어난 상화 시인이 살던 집은 대여섯번 옮겨다녔고, 지금도 상화시인이 살던 집은 대부분 남아있지만 복원은 되지 않고 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를 짓고, 광복이 되기 직전 유명을 달리한 상화 시인은 일제강점기 내내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노래했다. 고택에는 상화 시인이 바라보던 석류나무가 아직 살아있으며, 내부에는 하나같이 뛰어난 인물들이었던 상화 4형제(장남 이상정 독립운동가 겸 서각가, 차남 이상화, 삼남 이상희 한국 최초 IOC 위원이자 사회학자, 사남 이상오 수렵가)의 사진과 유품, 시 원고 등이 전시돼 있다. 방문객들은 해설사의 안내로 시인의 삶과 문학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 상화고택은 시민들의 기부운동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여러사람이 동참했지만, 전 국립국어원장 이자 현 경북대명예교수인 이상규 교수가 쓴 글에 서양화가 이명미가 삽화를 넣은 책을 판 수익금을 전부 고택보존에 기부했다.
◆서상돈 고택,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
상화 고택 바로 옆에는 서상돈 선생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그는 1907년 '우리 빚은 우리가 갚자'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 운동은 전국으로 퍼지며 민족자립정신을 일깨운 대표적인 시민운동이었다. 이 두 고택은 현재 통합 전시 공간으로 운영되며, 대구 시민의 자긍심이 깃든 역사교육 현장으로 거듭났다. 지금도 서상돈상으로 그 정신을 기리고 있다.
◆근대골목, 걷는 것이 곧 오래된 미래인 길
대구의 근대골목은 단지 오래된 건물이 있는 거리가 아니다. 이 길을 걷는다는 건, 100년 전 이 땅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일이다. 여러 산업화 유산도 많지만, 대구 근대골목처럼 인문학적인 골목도 드물다. 전국적으로도 이렇게 한곳에 집약된 근대골목을 찾아보기 어렵다. 매년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되는 유명한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를 체험하고, 문화재를 배우며, 골목 사이에서 숨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이 길은 이제 대구시민뿐 아니라 전국의 역사 탐방객들에게도 '필수 코스'가 되고 있다.
◆느릿느릿 걸어도 2시간 이면 충분, 곳곳에 예쁜 찻집
이곳은 1.64㎞의 비교적 짧은 코스이지만 볼거리가 많아 다 돌아보려면 2시간 정도 걸리며, 골목투어를 전국 유명 관광지로 만든 가장 인기 있는 핵심 코스이다. 동산 청라언덕, 선교사주택, 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제일교회, 민족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의 고택, 근대문화체험관인 계산예가에서 영상으로 미리 접해봐도 좋다. 조금더 골목투어를 하려면 조선에 귀화한 중국인 두사충의 뽕나무 골목,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약령시, 한의약박물관, 조선의 과거길 영남대로,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옛 대구의 번화가 종로, 화교소학교, 사투리로 길다를 질다로 표현된 진골목으로 걷기를 이어가면 된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권예인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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