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과거와 싸우기만 해선 안 된다

한준규 2025. 6. 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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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정부 악마화한 역대 대통령들
경제 위기 발생하면 이전 정부 탓
과거에만 집착 말고 미래 보여줘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후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박근혜 정부의 국정 슬로건은 ‘비정상의 정상화’였고,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는 ‘적폐 청산’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지만, 대통령은 늘 ‘카르텔 척결’을 강조했다. 각기 표현은 달랐으나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 비리와 부정부패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는 비슷했다.

이런 국정 과제·목표는 앞선 정부에 대한 역대 대통령의 시각을 보여준다. 전임 정부를 이끈 세력과 그들의 통치·정책은 비정상이고, 누적된 병폐 덩어리이며, ‘이권을 나눠 먹는 부패한 패거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통령이 전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정치적 몸집을 키웠고, 전임 정부의 실정(失政)을 발판으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과거=악’이라는 프레임이 자리 잡았다.

국민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정치가 보여줄 미래를 기대하지만, 집권자들은 과거에만 집착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상의 정상화’는 정치적 반대파를 옥죄는 데 주로 이용됐다. “이명박 정부 때 좌파 척결에 한 일이 없어 나라가 비정상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재판 때 공개된 수첩 메모에서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바꾸려고 한 비정상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정작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극치인 ‘민간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몰락했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과거와 싸웠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기에 과거와의 단절은 시대적 요구이기도 했으나, 그 정도가 지나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거와 싸우는 동안 어설프게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 임대차 3법, 비정규직 제로 등의 정책들은 부작용 등 논란만 남기고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3년 동안 전임 정부의 정책을 뒤집고, 책임 떠넘기기만 하다가 불법 계엄으로 스스로 붕괴했다. 그가 초래한 정치·경제·사회적 위기를 온 국민이 겪고 있다.

권력자들이 특히 과거에 집착하는 분야는 경제다. 전임 정부와 비교해 경제 상황이 나아지고 있음을 숫자로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랑할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 책임을 이전 정부에 떠넘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년여간 부진했던 경기 흐름을 성장률 반등(2013년 2분기 1.1%)으로 회복시켰다”고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국채로 마련한 17조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쏟아부은 반짝 효과였다. 집권 기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이명박 정부(3.34%)보다 박근혜 정부(3.06%)가 더 낮았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관련해 “이전 정부(박근혜 정부)가 규제를 풀어버린 탓”이라며 책임을 전가해 거센 비판을 받았고, 경제성장률·가계부채 등 모든 지표가 역대 최악이었던 윤석열 정부 역시 전임 문재인 정부 탓을 했다.

이재명 정부가 맞닥뜨린 상황은 과거에 집착하기 좋은 조건이다. 계엄 관련자들을 신속하게 처벌해야 하고 전임 대통령이 망친 경제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는 윤석열 정부의 마이너스 성장 기저효과가 있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해도 눈에 띄는 성과를 숫자로 제시할 수 있겠지만, 이전과 비교한 지표 회복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자영업자부터 대기업까지 모든 경제 주체가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데 숫자만 챙기다 그 이면의 절박한 현실을 놓칠 수 있다.

과거와의 싸움은 환부만 도려내는 정밀타격 방식으로 단기간에 끝내길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 집권 내내 윤석열 세력 때려잡기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위기 때마다 윤석열을 끄집어내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면 과거 정부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기억에서 윤석열을 신속하게 제거하고, 이재명의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것이 새 대통령이 이기는 길이다.

한준규 경제산업부문장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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