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의 핵심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방민준 2025. 6. 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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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용과 관련 없는 참고 사진입니다.프로 선수가 대회에서 경기하는 모습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그리스 신화에 아르고스의 왕 다나우스(Danaus)의 딸 49명이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벌을 받는 이야기가 있다.



 



리비아의 왕 벨로스(Belos)와 강의 요정인 안키노에(Anchinoe) 사이에서 쌍둥이 형제 아이깁투스(Aegyptus)와 다나우스가 태어난다. 50명의 아들을 둔 형 아이깁투스는 나일강 유역을, 50명의 딸을 둔 동생 다나우스는 리비아지역을 통치했다.



 



형은 자신의 아들들과 다나우스의 딸들을 결혼시키려 했으나 다나우스는 반대했다. 형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게 되자 다나우스는 딸들에게 결혼 첫날밤 남편들을 모두 죽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나우스는 딸들과 함께 그리스로 피신해 아르고스에 도착한다. 당시 아르고스는 극심한 물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다나우스는 헤라 여신의 신탁으로 땅속 깊은 곳에 감춰진 물을 찾아내 아르고스의 왕으로 추대된다.



 



한편 50명의 딸 중 히페르네스트라(Hypermnestra)는 그녀의 남편 린케우스(Lynceus)를 사랑해 죽이지 못했다. 살아남은 린케우스는 다나우스의 딸들이 자신의 형제들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를 결심, 아르고스로 쳐들어가 히페르네스트라와 다나우스를 제외하고 모두 죽인다. 린케우스와 히페르네스트라는 차례로 아르고스의 왕이 되었다. 



 



49명의 다나오스 딸들은 결혼 첫날밤 남편들을 죽인 죄로 명계의 왕 하데스로부터 밑 빠진 독에 끝없이 물을 채워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Sisyphus)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Aeolus)와 그리스인의 시조 헬렌(Hellen)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란 칭송을 들었으나 엿듣기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하며 특히 신들을 우습게 여겨 신들의 눈 밖에 났다.



 



천부의 도둑질을 타고난 전령의 신 헤르메스(Hermes)가 태어난 바로 그날 강보를 빠져나가 이복형인 아폴론(Apollon)의 소를 훔친 뒤 강보에 들어가 시치미를 땠으나 이를 알아챈 시지프스는 아폴론에게 고자질하고 아폴론은 신들의 왕인 제우스(Zeus)에게 고발했다. 이 사건으로 시지프스는 인간이 감히 신들의 일에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헤르메스는 물론 제우스의 미움을 샀다.



 



이런 차에 시지프스가 결정적인 괘씸죄를 저지른다. 어느 날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현장을 목격한 시지프스는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신(降神) 아소포스(Asopos)를 찾아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면 딸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시지프스는 코린토스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물이 귀해 백성들이 고생하고 있었다. 시지프스가 아소포스에게 코린토스에 마르지 않는 샘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자 딸을 찾는 게 급했던 아소포스는 시지프스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고 시지프스는 그에게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납치해 간 섬을 가르쳐 주어 구출되도록 했다.



 



자신의 비행을 고자질한 자가 시지프스라는 것을 안 제우스는 저승신 타나토스(Thanatos)에게 당장 시지프스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제우스의 보복을 예상한 시지프스는 타나토스가 나타나자 쇠사슬로 묶어 감옥에 가두었다. 명이 다한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묶여 있으니 당연히 죽는 사람이 없어졌고 명계(冥界)의 왕인 하데스(Hades)는 이 황당한 사실을 제우스에게 고해 제우스는 전쟁의 신 아레스(Ares)를 보내 타나토스를 구출하게 했다. 시지프스는 아레스에게 맞섰다간 온 코린토스가 피바다가 될 것임을 알고 순순히 항복했다.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가면서 꾀를 낸 시지프스는 아내에게 자신의 시신을 화장도 매장도 하지 말고 광장에 내다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고 은밀히 일렀다.



 



저승에 당도한 시지프스는 하데스에게 이렇게 읍소했다. "아내가 제 시신을 광장에 내다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것은 죽은 자를 수습하여 저승에 이르게 하는 이제까지의 관습을 조롱한 것인즉 이는 곧 명계의 지배자이신 대왕을 능멸하는 것이니 제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아내를 벌한 뒤 다시 오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사흘간만 말미를 주십시오."



 



시지프스의 꾀에 넘어간 하데스는 그를 다시 이승으로 보내 주었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하데스가 몇 번이나 타나토스를 보냈지만 시지프스는 온갖 말재주와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피했다. 그러나 인간이 신을 이길 수 없는 법, 마침내 시지프스도 타나토스에 끌려 명계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명계에서 그에게 주어진 형벌은 큰 바위를 높은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것이었다. 시지프스가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지만 바로 그 순간 바위는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했다.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는 하데스의 명령에 따라 시지프스는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리기는 골퍼에게 주어진 형벌과 너무도 흡사하다.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 대부분 100타만 깨겠다는 소박한 기대를 한다. 100타를 깨고 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90대, 80대를 목표로 삼는다. 80대를 달성하는 순간 싱글 스코어를 꿈꾸고 이븐파, 언더파, 에이지 슛이란 신기루를 좇는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골프에서 "이만하면 됐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골프는 항상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아닌 다음 계단을 향하고 있고 그 너머로 또 다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계단은 눈을 감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영원한 아마추어'로 '구성(球聖)'으로 추앙받은 바비 존스가 "골프란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다. 스코틀랜드 사람이 말했듯 골프란 끝이 없는 게임이다.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골프를 자신이 생각한 대로 플레이한 사람은 없었고 또 더 이상 절대로 더 잘 칠 수 없었다고 만족할 만큼 흡족한 라운드를 해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골프가 모든 게임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라고 설파한 이유를 알 만 하다.



 



차이가 있다면 시지프스나 다나오스의 딸들은 형벌을 형벌로 받아들이지만 당해야 하지만 골퍼들은 자발적으로 형벌을 자청해 고통 속에서도 희열을 맛본다는 점일 것이다.



 



골프에서 밑 빠진 독이란 참 아쉽고 허탈하기 짝이 없지만 심리적인 면에서는 밑 빠진 독은 저 높은 골퍼의 꿈에 이르는 데는 더없이 좋은 화두가 될 수 있다.



 



심리적으로 밑 빠진 독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지나간 모든 기억들을 머리나 근육 속에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낸다는 뜻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웅장한 화두냐.



 



지나간 홀의 모든 것들은 결국에는 당신에게 짐이 되어 작용하기 마련이다. 악몽 같은 순간들은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아야겠다는 강박관념과 함께 지난 홀에서의 손실을 반드시 만회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이런 강박과 과욕은 필경 또 다른 미스 샷을 유발할 뿐이다.



 



좋은 샷의 기억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십상이다. 지난 홀의 멋진 드라이브 샷이나 기막힌 어프로치, 버디로 이어진 퍼트 등은 자신의 실력 이상의 과욕을 부리게 만들어 역시 강박관념과 과욕을 심어준다. 



 



지난 홀의 모든 기억들은 잊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골퍼는 밑 빠진 독이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모든 기억들은 나의 밑 빠진 독에서 남아있지 않고 빠져나가 버린다면 그야말로 무심의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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