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여있길 거부하는 '소'석구, 아니 손석구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요즘 한 배우의 '열일'이 반갑다. 손석구다. 새삼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그는 이미 정점을 찍은 톱스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열일'이 더 반갑다. 그동안 여러 톱스타들의 행보를 보자. 특정 작품을 통해 급부상한다. 갖은 추앙이 이어지고 단숨에 CF킹으로 거듭난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신비주의 전략으로 간다. 출연 작품이 크게 줄어든다. 희소성을 키우며 몸값을 띄우는 식이다.
하지만 손석구는 다르다. 2022년은 그의 해였다. 영화 '범죄도시2'로 1000만 배우 대열에 합류했고,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렸다. 중요한 건 '이미지'로 승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철저하게 연기력으로 샅바 싸움을 걸었다. 그리고 통했다. '범죄도시2' 속 "너 납치된 거야"라는 대사처럼 그의 스펙트럼 넓은 연기에 대중의 마음이 납치됐다.
이후에도 손석구의 왕성한 작품 활동은 계속됐다. 그해 연말 디즈니+ '카지노'가 공개됐고, 이듬해에는 넷플릭스 'D. P. 시즌2'를 선보였다. 2024년에는 '살인자ㅇ난감'과 더불어 실험적인 작품이었던 단편 '밤낚시'와 영화 '댓글부대'가 개봉됐다. 그 사이 무대에 올라 연극 '나무 위의 군대'를 마쳤다.
그리고 2025년이다. 소처럼 일하는 '소석구', 아니 손석구의 행보는 계속됐다. 상반기가 끝나기 전인데 그는 이미 드라마 두 편을 마쳤다. JTBC '천국보다 아름다운'과 디즈니+ '나인 퍼즐'이다. 두 작품 모두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성적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손석구의 연기다. 두 작품 속 그의 연기에서는 접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식상하다"는 타박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손석구는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주인공 고낙준 역을 맡았다. 생전에는 불구가 돼 아내에게 짐을 안겨주지만, 천국에서는 우편배달부로 일하며 극진한 아내 사랑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선명했다. 상대 역이 하늘 같은 선배인 김혜자였기 때문이다. '국민 엄마' 김혜자와 부부로 연기한다는 것은 과거 '전원일기'의 최불암에게나 허락한 자리였다. 게다가 김혜자가 직접 손석구에게 고낙준 역을 맡기고 싶었다고 하니 손석구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손석구는 최근 진행된 언론 인터뷰에서 "김혜자 선생님을 만난 이후로 연기를 대하는 태도나 방식 자체가 훨씬 더 집요하고 넓어졌다고 생각한다"면서 "선생님과 연기할 때도 좋았지만 연기를 하고 나서 선생님의 연기를 보면서 다른 차원을 봤다. 선생님의 인생이 묻어있는 연기였다"고 감탄했다.
그는 이어 "나도 김혜자 선생님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서 모든 걸 품어줄 수 있는 연기를 해야겠다는 게 아니라, 김혜자 선생님이 본인만의 확고한 철학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에 저런 연기가 나온 것처럼 '나도 나만의 인생을 잘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손석구는 '나인 퍼즐'에서는 전혀 다른 결의 연기를 보여줬다. 그는 앞서 '살인자ㅇ난감'과 '카지노'에서 형사 역을 맡은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인 퍼즐'은 꺼릴 만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가 기꺼이 이 작품에 참여한 것은 윤종빈 감독의 존재 때문이었다. 앞서 영화 '범죄와의 전쟁', '수리남', '공작' 등을 연출한 윤 감독은 남자 배우를 활용한 선굵은 작품을 빚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가 '나인 퍼즐'에서 맡은 강력팀 형사 한샘은 목에 커다란 문신을 하고 항상 비니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요즘 형사'였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정의감은 과거의 형사들과 다르지 않지만 외형과 풍기는 느낌 만큼은 세련됐다. 게다가 10년 전 발생했던 미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용의자, 아울러 지금은 프로파일러가 된 이나(김다미 분)와의 케미스트리도 남달랐다.
손석구는 "윤종빈 감독님의 엄청난 팬이어서 감독님이 '보자'고 한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감독님이 제안을 주셨을 때 추리물은 자신이 없다고 얘기하니까 믿고 오면 된다고 하셨다"면서 "대본을 보고도 나름의 도전의식 같은 게 생겼지만 감독님 때문에 했다"고 답했다.
정작 윤 감독은 대세라 불리는 손석구라는 배우의 존재를 잘 몰랐다고 한다. 손석구는 "윤 감독님은 '나는 널 잘 몰랐어' 하셨는데, 형수님(윤 감독의 아내)께서 저를 추천해 주셨다고 하더라. 보는 눈이 정확하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학생의 입장으로 배운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연기를 배우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노하우나 태도 전반적인 걸 배웠다. 윤 감독님은 저에게 감독님이면서도 멘토"라고 소감을 전했다.
손석구는 잠시 쉼표를 찍는다. 웹툰 원작 영화 '문유' 등이 차기작으로 거론됐으나 아직 확정 소식은 없다. '나인 퍼즐' 역시 속편 제작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무리됐기 때문에 손석구가 다시 참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손석구는 안주하길 거부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로 대중의 추앙을 받은 후 그가 보여준 행보가 이를 입증한다. 조만간 또 다른 준수한 작품으로 손석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손석구는 그런 대중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배우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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