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70년 넘게 몰랐다” 가장 오래된 충혼탑, 최남단 제주에 있었다!

김찬우 기자 2025. 6. 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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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읍 충혼탑 1953년 4월 건립…1955년 11월 탄금대 2년 앞서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 불구 관리 부실…무관심에 잊힌 유산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 있는 충혼탑. 이 충혼탑이 지어진 때는 6.25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3년 4월 30일이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충혼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충북 충주시 탄금대 충혼탑(1955년)보다 2년 앞선 기록이다. ⓒ제주의소리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 당시 백척간두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충혼탑.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충혼탑이 '호국 1번지' 제주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충혼묘지 인근 언덕에 건립된 한국전쟁 충혼탑이 주인공이다.

대정읍 충혼탑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3년 2월 7일 착공, 4월 준공된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 시설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당시 대정면민 일동 이름으로 눌동산에 세워졌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충혼탑으로 알려진 1955년 11월 건립된 충북 충주시 탄금대 충혼탑보다 약 2년 반이나 앞선 기록이다.

대정읍지에 따르면 충혼탑은 기단을 제외한 높이 5m, 둘레 11.44m 크기로 세워졌다. 문화유산법이나 조례에 따라 지정 보호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못지않은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

당시 대정면민들은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고향 출신 전몰용사들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충혼탑 건립을 추진했다. 민간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충혼탑 가장 아래에는 착공 단기(檀紀, 단군기원) 4286년 2월 7일, 준공 단기 4286년 4월 30일, 대정면민 일동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면민들이 돈을 모아 세웠다는 증거다.
충혼탑 아래 적인 글씨. 착공 단기 4286년 2월 7일, 준공 단기 4286년 4월 30일, 대정면민일동. 여기서 착공에 쓰인 날짜 중 한자 '卅'은 30을 뜻하는 '서른 삽'자다. ⓒ제주의소리
충혼탑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게 팔을 뻗어보이고 있는 강태권 대정역사문화연구회 사무국장. ⓒ제주의소리

또 당시 제주도지사와 육군훈련소장-부소장이 충혼탑에 관여한 기록도 의미를 더한다. 

최승만 제6대 제주도지사가 '위국헌신(爲國獻身)'이라는 글자를 붓으로 쓰고, 모슬포 육군제1훈련소 제8대 소장(所長)을 맡은 오덕준 소장(★★)은 이를 충혼탑에 새겼다.

이어 육군훈련소 부소장을 맡았던 김종평(훗날 김종면으로 개명) 준장(★)은 충혼탑 동·서 측면에 '충혼송(忠魂頌)'을 새겨넣었다. 여기서 '송(頌)'은 공덕을 기리는 글을 뜻하는 말이다.

"그대 살과 피의 뼈가루 마저 조국의 주춧돌로 바치고 낯익은 월롱마을 동산에 돌아오다 그대의 핏물 거름하여 호국의 꽃내음 강산에 풍기나니 그 충혼 천추에 남으리 어화 어화 길이 구천에 진좌하시라" - 단기 4286년 4월 25일 육군준장 김종평 -

이처럼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4월, 국토 최남단 대정읍에 뜻깊은 충혼탑이 세워졌지만,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50만 신병을 배출한 육군제1훈련소와 중공군포로수용소가 있었던 '호국 1번지' 대정에 현존하는 충혼탑 중 가장 오래된 충혼탑이 있었지만, 정작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된 충혼탑은 무관심 속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출입구가 없고 개인 사유지를 조심스럽게 거쳐 들어가야 해 찾아가기도 어렵다.
2022년 당시 충혼탑 모습(사진 위)과 현재(2025년) 모습. ⓒ제주의소리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악한 페인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의소리

현재 충혼탑은 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이 관할하고 대정읍이 관리 중이다. 현장을 직접 가보니 충혼탑 주변은 깔끔하게 제초된 상태였으며, 충혼탑도 페인트를 새로 칠한 듯 깨끗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황당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도지사와 육군소장이 새긴 글귀와 준장의 충혼송은 페인트로 덮여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유색 페인트가 아무렇게나 덧대져 있었다.

현장에 동행한 강태권 대정역사문화연구회 사무국장은 "관리를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원래 모습대로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며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거나 해서 보호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해버리니 완전히 망쳐버린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대정읍 관계자는 "의례적으로 대정읍에서 관리해오던 것으로 예산 문제도 있어 조금씩 기회가 될 때마다 보수하고 있다"며 "가장 오래됐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앞으로 관리에 더욱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제주도보훈청 역시 대정흡 충혼탑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충혼탑이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주도 보훈청 관계자는 "대정읍 충혼탑이 가장 오래된 충혼탑인 사실은 몰랐다. 대정읍 충혼탑의 건립 시기 등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대정읍과 협조해 정비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하겠다"고 답변했다.
2022년 당시 충혼탑 모습과 현재(2025년) 모습. 위국헌신 아래로는 '제자 육군소장 오덕준, 휘호 도지사 최승만'이 적혔다. ⓒ제주의소리
충혼탑과 충혼송에 대해 설명 중인 강태권 대정역사문화연구회 사무국장. ⓒ제주의소리
현재 대정읍 충혼탑으로 들어가는 공식적인 길은 없다. 사유지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