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움직이는 순간, 한반도 안보의 판도도 바뀐다 [박수찬의 軍]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기싸움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자기 행동에 근거해 중국을 억측하고 비춰보는 고질병을 고치고 중한 관계를 도발하는 것을 중단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달 31일 나카타니 겐 방위상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국가간 단일 협력을 뜻하는 오션(OCEAN) 구상을 제안했다. 겉으로는 인도태평양 내 안보협력을 강조하지만, 일본이 동북아시아 안보를 주도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평가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후폭풍을 막 벗어난 한국으로선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강대국의 힘겨루기 한복판에 선 셈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대선으로 국내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칠 카드를 잇달아 꺼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주한미군을 중국의 대만 침공 등 동북아시아의 다양한 위기에 투입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할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달 16일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 육군협회(AUSA) 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서 “주한미군은 북한, 러시아, 중국 지도부의 셈법을 바꾸고, 비용을 부과하며 어느 충돌에서든 우리나라의 고위급 지도자들에게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션 아래에서 각국이 손을 잡고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며 “일본은 그 중심에서 계속 있을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이전에는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을 제안한 바 있다. 시어터는 전쟁이 벌어지는 무대인 전역(戰域·전쟁 구역)을 뜻한다. 원 시어터는 한반도와 동중국해·남중국해 일대를 단일 전쟁 구역으로 간주하는 개념이다.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은 한반도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잠재력을 갖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위협을 최우선으로 분류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에 따라 주한미군은 북한 도발을 억제하는 전투부대보다 미군의 인도태평양 역내 전개 허브 성격을 더 강하게 지닐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위협 대응에 ‘올인’하면서 세계 각지의 분쟁 대응은 동맹국에 떠넘기고 있다. ‘세계의 경찰’을 더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일본은 여기에 편승하는 모양새다. 원 시어터나 오션 구상은 미중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일본이 역내 안보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미다.
미국을 등에 업고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를 넘어서서 동북아 안보를 주도하는 지역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을 드러내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일본의 오션·원 시어터 구상은 한국에 심각한 문제를 안겨줄 수 있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도 딜레마다. 동맹국을 경시하는 트럼프 행정부 성향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가 반대해도 미국은 자신들의 대전략과 리스크를 계산하면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 또는 주한미군 감축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 또는 묵인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주한미군이 대만 해협이나 남중국해로 투입되면, 중국과의 관계도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된다.
전략적 유연성 거부에 따라 미국이 주한미군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면 한반도 내 전투태세 약화 우려도 크다.
주한미군 일부 병력이 이동한다면 충분한 대체전력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것이 필수다.

중국 위협을 제외한 방위 문제를 동맹국에 떠넘기고 자국의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미국. 이때를 틈타 동북아 안보 정세 주도권 장악에 시동을 거는 일본. 한미 관계를 파고들려는 중국, 이들의 움직임은 새 정부가 갓 출범한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전략 경쟁으로 인한 국제 정세의 변화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개념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대응을 하려면, 적절한 수준의 실행력과 의지를 갖춘 우리만의 대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윤석열정부는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을 앞세운 인도태평양 전략을 갖고 있었다. 역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뜻은 적절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광범위한 영역을 다뤘기에 지속 가능성에 의문에 제기됐다. 외교부 홈페이지에서도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주요 발언은 2023년 5월에 마지막이었다.
이같은 전략 수립·실행은 한국의 외교안보 분야 신뢰를 떨어뜨린다.
역내 우방국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외교안보 분야 협력까지 늘리려면 ‘선택과 집중’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한미군의 지위·규모·성격 변화에 관계 없이 한반도에서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려면, 한국군의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비대칭 전력을 지속적으로 키워야 한다. 현무 탄도미사일과 사이버·전자전 무기체계, 다출처정보융합체계, 초고속·대용량 네트워크 등을 확보해서 북핵 위협에 맞서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서해를 비롯한 한반도 해역을 주변국들이 침범하는 것을 막는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대함탄도미사일(ASBM)이나 드론 등을 통한 새로운 비대칭무기 개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유사시 전쟁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도 필수다. 한미 연합방위태세에선 미군이 이를 주도했다.
하지만 한국군이 주도하는 국면이 빨라질 가능성에 대한 준비, 한반도 전구 작전을 내실화해 일본의 오션·원 시어터 구상에 한반도가 포함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미래전을 전망하고 기획·지휘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서둘러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군 수뇌부가 수 분 내 전술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인공지능(AI) 지휘통제체계를 구축, AI로부터 다양한 대안을 제시받아 수뇌부가 빠르게 선택해서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 경쟁은 국제사회를 신냉전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갈등과 대립이 심해지는 국면에서 한국이 외교·군사적 입지를 지키려면, 한반도 위기를 자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전략과 의지, 실행력이 중요하다. 갓 출범한 새 정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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