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은 유학이 아니다? 틀렸다” [사람IN]

이상원 기자 2025. 6. 6.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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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치세는 조선 후기의 마지막 중흥기로 알려져 있다.

정조가 중용한 대표적 '실학자'가 정약용이다.

책은 정조와 정약용의 문답을 번역·정리했다.

정약용과 정조의 문답 역시 '성리학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철저히 '성리학적 이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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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신창호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시사IN 조남진

정조 치세는 조선 후기의 마지막 중흥기로 알려져 있다. 정조가 중용한 대표적 ‘실학자’가 정약용이다. 두 사람이 성리학의 틀에서 벗어난 급진적 개혁을 꾀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최근 〈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하다〉를 펴낸 신창호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60)는 견해가 다르다. 〈주역〉 〈맹자〉 〈논어〉를 풀이하고 정약용, 이황 등 조선 사상가들에 대한 책을 펴내온 신 교수는 말했다. “단언컨대 ‘실학’은 가짜다.”

책은 정조와 정약용의 문답을 번역·정리했다. 정약용이 직접 기록한 책을 따랐다. 인재 등용, 농업 진흥, 유학 논쟁, 미신과 잡기까지 학자형 군주와 당대 최고 학자의 담화는 갖가지 주제를 넘나든다. 신창호 교수는 원문을 충실히 싣되 현대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일부 문장을 손보았다. 18세기 인물들의 문답을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다.

신창호 교수가 ‘실학은 가짜’라고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우리가 실학자라고 알고 있는 분들 가운데 스스로 ‘유학자가 아닌 실학자’라고 칭한 이는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실학은 변한 사회상을 반영했으나, 여전히 유학의 틀 안에 있었다는 것. ‘실학과 유학은 배치된다’는 일각의 인식 밑바탕에는 “성리학은 허황되고 관념적인 공리공담”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실천’이야말로 성리학의 본령이라고 신 교수는 말했다. “성리학은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의리에 목숨을 거는데 어떻게 행동을 등한시할 수 있나?” 본래 ‘실학’은 유학이 스스로 붙인 별칭이었다. 불교 등 다른 사상을 ‘허학’으로 부르며 실용적 가치를 내세운 것이다.

정약용과 정조의 문답 역시 ‘성리학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철저히 ‘성리학적 이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두 사람을 ‘개혁가’로만 알던 독자로서는 의외의 대목도 등장한다. 당대 유행하던 새로운 문장 스타일, 이른바 ‘패관문체’에 대해 정조가 강하게 비판하자, 정약용은 “그런 문서는 모두 불태워야 한다”라며 동조한다. 반면 성리학의 본질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근대적 혜안이 돋보이는 문답도 있다. 정조가 붕당에 따른 인재 안배를 묻자 정약용은 “먼저 붕당 밖을 살펴야 한다”라고 답한다. 차별받는 서북 지방의 선비나 서얼 등도 유능하다면 기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년 전 정책 문답에서 현대인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신창호 교수는 리더십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지도자는 공부해야 한다.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야 한다. 권위만 내세워 ‘일단 따라와’라고 하면 쉽게 틀린다. ‘이런 정책을 펴려는데, 이게 잘 먹힐까?’라고 타인에게 물어야 유능한 리더가 된다. 공동체를 옳은 방향으로 이끈다.” 신 교수는 넓게 보아 최근의 탄핵 사태 역시 ‘공부하고 질문하지 않는 리더’가 초래했다고 말했다. ‘왕이 곧 국가’인 성리학적 질서에 기반한 군주정의 임금마저 치열하게 고민하고 질의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웅변한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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