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독립군 양성 기여한 이장녕 선생
[KBS 대전] [앵커]
광복 80주년을 맞아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하는 기획보도 순서입니다.
오늘은 우리 국군의 뿌리인 독립군을 지휘하며 무장 항일 운동을 펼친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장녕 선생을 소개합니다.
이연경 기자입니다.
[리포트]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자,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한 육군 장교였던 이장녕 선생은 고향인 천안으로 낙향합니다.
이후 가족들과 만주로 망명을 한 뒤 신흥무관학교 설립부터 교관, 교장까지 역임하며 독립군 양성에 나섰습니다.
김좌진 장군이 총사령관이었던 북로군정서에서 참모장을 지내며 체코군으로부터 최신 무기를 구입하고 청산리전투의 후방 부대를 관장하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이후에는 대한독립단 대표로 참가해 신민부 발족에도 기여했습니다.
선생은 김좌진 장군이 암살당한 후 독립운동 무대를 상해로 옮기려다 1932년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인에게 피살되면서 51살에 순국했습니다.
정부는 19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서훈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1980년대 대전 유성구에 선생의 공적비가 세워졌다는 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은 사라진 상탭니다.
공적비가 있다고 적힌 주소지에 찾아와봤는데 보시는 것처럼 이렇게 수풀만 우거져있습니다.
[인근 주민 : "이 동내에 한 40년 가까이 살았는데요. 그분의 공적비나 그런 걸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독립군의 산실인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누구보다 중추적인 역할을 했지만 선생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김주용/원광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인) 이은숙 여사의 '서간도 시종기'에도 '이장녕 일가가 먼저 와서 이미 정착촌을 닦아놨기 때문에 후에 이주한 사람들이 굉장히 편하게 신흥무관학교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선구자인데 잊혀진 인물..."]
평생을 일본과 맞서 싸우며, 생사를 오가는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이장녕 선생.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오직 조국 독립으로만 향했던 선생의 숭고한 이름을 되새겨 봅니다.
KBS 뉴스 이연경입니다.
촬영기자:유민철
이연경 기자 (yg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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