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선거에서 '미래의 가치'를 찾았다면
[기고] 홀로 '사회적 약자' 의제 붙든 권영국, 언론은 가치 의제를 어떻게 다뤘을까
[미디어오늘 김한주 금속노조 언론국장]

줄곧 투명인간이었다. 신문에서도, 여론조사에서도 권영국 후보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윤석열 12·3 내란 사태 이후부터 줄곧 광장의 아스팔트 바닥을 지켰던 그였다. 눈이 와도, 밤을 지새워도, 후보 일정이 아무리 바빠도 광장엔 늘 빨간색, 초록색 유니폼과 함께 권영국이 자리했다. 국회 밖, 어디서든 보였던 권영국은 언론에서는 찾기가 힘들었다.
권영국은 왜 거리를 지켰을까. 응원봉의 빛이 채운 광장은 박근혜 퇴진 광장과 달랐다. 밤새 시민 자유 발언, 즉흥 무대가 이어졌다. 20~30대 여성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퀴어퍼레이드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가 한데 모인 적이 있었을까. 새로운 공기로 가득 찬 이곳에서는 삶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아니, 생존 구술에 가까웠다. 차별, 폭력, 배제의 경험이 서로 오갔다.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집회 참여자들은 연대감을 더욱 키웠다. 재야 정치인, 명망 높은 운동가,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릴레이 연설만 이어지던 과거엔 볼 수 없던 장면이었다. 한 명의 화자와 나머지는 수동적 청중이었던 경험을 뒤바꿨다. 서로가 나눈 경험은 다방면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었다. 각자의 이야기에서 모두가 함께 만든 '생존의 이야기'. 이를 직접 들은 권영국은 정책으로 화답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책, 평등과 분배를 담은 정책은 한 구호로 담았다. 그 구호는 '차별 없는 나라'였다.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권영국 대통령 후보는 광장과 가장 가까운 후보였다.
그런데 언론은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매일, 그것도 거리에 풍찬노숙하면서 이어진 광장을 취재한 언론은 적었다. 권력의 향배가 어디로 갈 것인지가 더욱 중요한 언론이었다. 경마 저널리즘이 잘 팔렸다. 그렇게 '윤석열 이후 사회의 가치'를 얘기할 틈은 좁아졌다. 한 사회의 다양한 가치 중에서 어느 것을 우선으로 둘 것인가, 재조정할 수 있는 적기는 대규모 군중집회, 그리고 선거다. 군중집회는 장기화하면서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당장 조회수는 '이재명', '김문수' 두 이름을 넣은 기사에서 챙겨야 했을 것이다. 관심 밖에서 광장은 가치를 이야기했으나 사회적 전파가 이뤄지지 못했다. 언론은 '이후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묻지 못했고, 선거 기간 가치의 재정립을 들고 나선 권영국을 소환하지 못했다. 단순히 후보의 인지도, 영향력의 문제가 아닌 저널리즘의 태도에서 지금의 결과를 엿본다.
한국처럼 여론조사가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있을까. 모두가 여론조사 뉴스를 소비하고, 또 매일 같이 기다린다. 오래된 '침묵의 나선(특정한 의견이 다수라면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해 침묵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대중매체 이론)'은 새로운 가치, 소수가 주장하는 가치의 등장을 가로막기 일쑤였다. '나의 편이 곧 다수'라는 사실을 인정받으려 투쟁하는 행위는 곧 일상이 돼버렸고, 투쟁의 목표는 어느새 상대를 향한 조롱과 멸시, 혐오로 발전했다. 매일 같이 쏟아진 여론조사는 정책 경쟁이 아닌 경마 저널리즘에 불만 지폈다. 또 정치 고관여자에게는 주식 등락과 같은 도파민만 충족시켰다. 이런 영향으로 다수는 선거 시기 '지향하는 사회'보다 '불호의 퇴출'을 판단의 우선으로 삼았다. 기성 정치와 언론의 책임이 적잖다.

독자 완주로 이를 깨고자 시도한 권영국은 토론회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호명했다. 평등과 분배를 강조했다. 부자 증세를 홀로 외쳤다. 모든 후보가 '성장'을 외치는 가운데 외로이 다른 가치를 우선했다. 성장이 가치가 아니란 뜻은 아니다. 이제껏 강조되지 않은, 호명되지 못한 약자는 어떻게 공론장에 나왔나에 대한 얘기다. 내란 이후 공론장에 처음으로 대두한 의제였다. 광장 참여자들이 반응했다. 차별금지법, 비동의강간죄가 절실한 이들이 기다리던 목소리를 만났다. 하청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은 아예 토론회장에 권영국과 함께 입장했다. 그 반향은 '기타 후보'가 아닌 '권영국 후보'라는 보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면 사진이 3등분이 아니라 4등분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언론은 이때야 권영국이 내세운 가치와 이에 동의하는 유권자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광장과 권영국은 미디어가 주도하는 의제 설정 기능을 역전해 '사회적 약자' 의제를 먼저 띄워냈다.
언론은 각자의 가치 지향을 담는다. 지향에 따라 사실을 보고, 편집해 보여준다. 그렇게 프레임을 형성하고, 여론을 키운다. 정파적 이해관계가 없는 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 담론을 우선하는 미디어 역시 소수나마 명확히 존재한다. 만약 권영국이 내세운 사회의 가치에 동의하는 언론이 먼저 나서 그에 대한 의제 설정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윤석열 이후 한국 사회는 새로운 다양성 민주주의 단계에 더 빠르게 진입하지 않았을까. 물론 권영국을 전면에 내세운 레거시 미디어가 없지 않았다. 과거와 다른 진보 의제의 확대 시도가 분명히 보였다. 진보 담론에 적극적인 기자도 과거보다 더 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여전히 적은 지면이 문제다. 지면 반응과 가치 제고를 위한 상관조정활동(단순 객관적 정보 전달을 넘어 정보의 의미를 분석하고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일) 사이에서 후자에 힘을 쏟을 때 사회 가치의 재정립은 더 힘을 얻을 것이다.

'사회대전환'에 방점을 찍은 권영국의 여정은 1%로 마감했다. 내란 세력 청산이란 메시지의 힘이 압도했다. 하지만 돌이켜본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승리 이후 문재인 정부 초기의 방점은 '적폐 청산'이었다. '청산'이 모든 걸 집어삼키는 정치에서 미래 사회의 가치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두 번의 탄핵을 겪은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을 어떻게 해야 할까. 혐오의 발화가 제3지대로 인지되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고 다수가 동의한다면 대안 권력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앞으로 꾸준히 질문해야 한다. 생명이 먼저인가, 이윤이 먼저인가. 인권이 먼저인가, 배제가 먼저인가. 약자가 우선인가, 강자가 우선인가. 중요한 것은 평등인가, 경쟁인가. 경계할 것은 차별인가, 존속인가. 1%의 작은 씨앗은 우리에게 역할을 남겼다. 모두의 몫이지만 '윤석열 이후의 저널리즘'에도 질문을 던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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