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아니 우리에게 거는 희망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한겨레 2025. 6. 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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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공원 마지막 유세에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빛의 혁명’ 완성을 위한 승리를 주제로 연설하자,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원고 마감이 선거 당일이나 다음날인 경우(이 칼럼 마감일은 6월4일이다), 예측은 무의미하고 전망은 섣부르다. 어떻게 써도 김빠진 맥주 같은 덕담이 되기 쉽다. 이재명 대통령이 잘해주길 당연히 바라지만, 이 글은 공치사로 때우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21대 대선이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짚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그려보자.

이번 대선은 19대 대선과 마찬가지로 탄핵 이후 조기 대선으로 실시됐다. 두번의 탄핵 모두 보수우파 대통령 집권기에 일어났다. 특히 두번째 탄핵은 현직 대통령이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군대가 국회를 점령했다는 점, 그리고 대통령이 체포되자 그 지지자들이 물리력을 동원해 법원을 습격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 차원을 달리하는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이는 크게 두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제도적 취약성이다. 12·3 내란을 통해 우리는, 대통령이 작정하고 ‘미친 짓’을 하면 이를 막아내기 쉽지 않음을 알게 됐다. 재발을 막으려면 대통령의 특수한 권력, 이른바 ‘비상대권’에 몇겹의 안전장치가 더 필요하다. 또한 일부 군 지도부가 쿠데타에 적극 동참한 사실을 고려하면, 군에 대한 민간 통제 역시 지금보다 훨씬 강화될 필요가 있다. 또한 사법 엘리트가 법치의 근간인 ‘법 앞의 평등’ 원칙을 일삼아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판사 지귀연이 전례 없는 ‘시간제’ 계산법을 적용해 내란범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한 사건은 그 절정이었다. 즉, 대통령과 국가 엘리트들이 법치와 민주주의를 유린할 거라는 점을 ‘디폴트’(초기값)로 설정하고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둘째, 문화적 취약성이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있다고 자동으로 성숙하지 않는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민주적 선거, 다당제, 삼권분립 등을 갖추고 있지만 오랫동안 민주주의가 진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군부 쿠데타 등에 의해 전제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는 대체로 민주주의 역시 성숙한 경우가 많지만, 싱가포르나 아랍 산유국 등은 민주주의 수준이 매우 낮다. 이는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에 문화적 요인, 예를 들어 시민의 가치관 및 종교 등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저들 나라와 다르지만, 그렇다고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효과적 민주주의’로 안착한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 민주주의 지수’(EIU Democracy Index)에서 한국은 2019년 딱 한번 16위를 한 것 외에 최근 20년간 20~30위권을 맴돌며 지체되어 있다. 일본은 대체로 10~20위권이고, 대만은 2020년대부터 10위 안으로 진입해 계속 유지하는 중이다.

‘한국의 능력주의’를 출간한 2021년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요인이 제도보다 주로 문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가치관조사 등 여러 데이터를 직접 들여다본 결과, 한국인의 평균적 분배 인식이 민주공화정 이념과 극명하게 충돌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히 불평등 분배에 대한 유별난 선호 및 과도한 능력주의는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차원으로 심화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되었다. 지금도 이 판단에 변함이 없지만, 내란 사태를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결성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과도한 능력주의(불평등 지향)라는 문화적 특성에 더해, 엘리트의 사익 추구, 권한 남용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제도적 취약성이 동시에 발동한 결과다.

물론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끝내 내란을 막아냈다. 그것은 아무리 상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민주주의 마지노선’을 사수하는 싸움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피로감을 야기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런 싸움으로 인해 차별금지법, 불평등 완화를 위한 서민 지원과 부자 증세 등 시급한 사회 의제들이 증발해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극우 대통령을 쫓아내고 자칭 “중도보수” 대통령을 뽑았으니 미뤄둔 문제들이 알아서 해결될까?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러므로 대통령에게 부탁할 게 아니라 대통령이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 대전환의 개헌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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