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 습격한 친일·독재의 주구

한겨레 2025. 6. 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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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의 고비마다 장경근의 이름이 보인다.

그런데 이듬해 초, 이승만은 장경근을 내무부 차관으로 임명했다.

1949년 6월6일, 장경근은 경찰 병력을 동원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국회를 무시하고 장경근의 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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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span style="color: #333333;"><span style="color: rgb(0, 184, 177);">[나는 역사다]</span> </span>장경근 (1911~1978)</strong>

이승만 정권의 고비마다 장경근의 이름이 보인다. 그런데 오늘날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젊어서 수재였다. 동경제국대학을 들어갔고, 법학부 재학 중 고등문관시험을 패스하고 엘리트 판사가 되었다. 출세길이 열린 듯 보였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1945년에 해방이 됐다. ‘친일 법관’으로 눈총 받던 장경근은 1948년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같은 해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됐다. 특별경찰대라는 조직까지 갖춘 기구였다. 일제강점기 때 잘나가던 장경근 같은 사람들이 궁지에 몰린 듯 보였다.

그런데 이듬해 초, 이승만은 장경근을 내무부 차관으로 임명했다. 장경근은 반민특위를 문 닫게 할 공작을 폈다. 1949년 6월6일, 장경근은 경찰 병력을 동원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다. 무장 경찰 수십명이 반민특위 조사관을 구타하고 특별경찰대원을 무장해제시켰다. 수사 문서들을 탈취하고 훼손했다. “반민특위는 빨갱이!” 장경근의 주장이었다.

이튿날, 국회는 장경근을 파면하고 반민특위의 문서를 원상복귀하라고 결의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국회를 무시하고 장경근의 편을 들었다. 반민특위는 해체되고 장경근은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

법 기술자 장경근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도왔다. 1954년의 악명 높은 ‘사사오입 개헌’도 그의 작품. 이승만이 장기 집권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려 했는데 한표가 모자랐다. 이때 장경근은 “정족수를 반올림(사사오입)하면 개정안이 통과된다”는 논리를 펴고 욕을 먹었다. 의원총회 자리에서 같은 당 소속 김두한이 장경근에게 주먹을 날리기도.

1960년에 장경근은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 유명한 ‘3·15 부정선거’다. 경찰을 동원해 투표와 개표를 조작했다. 이번에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4·19 혁명이 일어났고, 5월에 장경근은 감옥에 갔다. 7월에 당뇨병이라며 병보석을 받았는데, 11월에 병원에서 탈출, 일본으로 밀항했다. 해외 도피 17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이듬해 죽었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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