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 들어가봤다]20대 청년의 옥살이, 46년 만에 사과한 법원
■ 옥중에서 "긴급조치 해제하라" 유죄였던 외침

나.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통신 등 공중전파수단이나 문서·도서·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다. 학교 당국의 지도, 감독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의례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 관여 행위.
이 조치 위반의 죄는 일반법원에서 심판한다.
1975년, 유신 정권에 맞선 전국적인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선포된 긴급조치 9호입니다.
언론도 침묵했던 시대, 그러나 대학가는 민주화를 염원하는 외침으로 들끓었습니다.

서강대 2학년이던 김용진 씨도 그 한복판에서 학내 시위를 이어가다 결국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긴급조치 해제 구호를 외친 대가로, 형량 1년 6개월이 더해졌습니다.
"감옥에 있더라도 하여튼 뭐라도 좀 해야 하니까 한 거죠.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2013년,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9호를 위헌이라 선언했고, 대법원도 그 결정을 확정했습니다.
위헌 결정 직후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이 이어졌고, 김 씨도 10여 년 전 민주화 시위를 하다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첫 번째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계엄을 계기로, 다시 정의를 바로잡고 싶다는 마음에 두 번째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에 대해서도 다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 46년 만의 재심⋯피고인 '무죄'

과거, 옥중에서도 반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을 선고했던 대한민국 법원은 46년이 지나서야, 그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대전지방법원 "긴급조치 9호는 발동 요건 자체를 갖추지 못한 채, 국민의 자유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했다"라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어 김병만 부장판사는 "과거에 유죄를 선고한 법원도 대한민국 법원이고, 오늘 무죄를 선고한 법원도 대한민국 법원"이라며 "피고인이 겪었던 고초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의 구성원으로서 늦었지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언급했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가슴 깊이 새기고 업무에 임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 과거가 현재를 구했다⋯"내 친구, 보고 싶어"
법원을 나온 김 씨는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직접 목격하고 계엄군이 지키는 서울의 한 건물에서 유인물을 뿌렸던, 당시 21살의 절친한 친구, 김의기 열사입니다.
함께 억압에 맞서자던 친구는 유인물을 배포하던 중 건물 밖으로 추락해 숨졌습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서둘러 '투신 자살'로 처리된 죽음.
여전히 하지 못한 말들이 더 많아보였던 김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떠나간 친구에게 고맙고, 보고싶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구한다는 거,
그 말에 해당이 되는 거죠.
정말 보고 싶은 친구인데,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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