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도 넘겨도 혐오·비방...정치부 기자들 "쇼츠 대선이었다"
"쇼츠 의식한 의원들, 일부러 자극적 발언...유튜브 크리에이터 같아"
숏폼 중심 콘텐츠 대세…최근 2주간 이준석 유튜브 채널 178건 생산
"숏폼, '저널리즘적 재앙'에 가까운 장르...해답도 없다고 느껴진다"
[미디어오늘 정민경, 김예리, 윤유경 기자]

내란 사태 심판과 탄핵 여파 속에 치러진 제21대 대선은 어김없이 '정책 실종'이란 지적이 따라붙었다. 여기에 더해 '숏폼' 소비가 중심이 된 미디어 환경이 대선 국면에서 더욱 정치인의 자극적인 발언만 유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부 기자들은 “국회의원들이 마치 유튜브 크리에이터 같다”, “보좌진들이 숏폼을 찍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거나 “숏폼을 찍기 위해 일부러 더 강경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연출한다”고 지적했다. 숏폼이 주요한 플랫폼이 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숏폼을 만들 수 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나왔다.
대선 기간 후보들은 적극적으로 '쇼츠'를 만들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5월20일부터 6월3일까지 2주 동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91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70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178건의 쇼츠 영상을 후보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것으로 확인했다. 여기에 각 정당별 공식 계정에서 만든 쇼츠, 언론사에서 만든 쇼츠, 후보 유세를 따라다니는 유튜버들이 만든 쇼츠에 더해 이들 쇼츠를 복제하는 무수한 쇼츠들까지 합하면 유권자들에게 노출되는 쇼츠의 양은 사실상 셀 수 없는 수준이다.
'이재명' 채널의 쇼츠 중에선 '막차 탑승해도 괜찮아?'라는 15초 분량의 댄스 콘텐츠 조회수가 28만 회를 기록했다. 이재명 후보가 '괜찮아 딩딩딩' 챌린지를 하면서 '괜찮아'라는 기존 가사를 '투표해'라고 말하면서 춤을 추는 내용이다. '김문수TV'에선 '너무 다정하게 손녀 연락받는 문수 할부지'라는 25초짜리 쇼츠가 3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콘텐츠 중에선 '이재명의 수수께끼 그냥 맞혀버린 이준석' 제목의 영상 조회수가 4일 기준 292만 회를 기록했다. 언론사 가운데서는 오마이TV '이재명 파이널 유세장서 열정 춤사위 선보인 김상욱' 제목의 8초 영상이 2주 동안 299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채널A의 '김문수, 유세 중 댄스 권성동 반응은'의 경우 3주 동안 88만 회를 기록했다.
위와 같은 쇼츠는 그나마 문제가 덜한 편이다. 대선 막판 논란의 발언들은 대부분 쇼츠로 확산됐다. TV토론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성폭력 재현 발언, 김문수 후보 배우자 설난영씨에 대한 유시민 작가의 비하 발언 등이 쇼츠로 편집돼 퍼졌다. 각 발언에 대한 평가나 비판, 맥락이 삭제된 쇼츠는 이런 발언 중에서도 자극적인 언사만 부각 될 수밖에 없었다. 대선 TV토론에서의 후보 간 날 선 비방과 조롱도 쇼츠를 통해 확산되었다. 쇼츠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준석 후보의 인기 쇼츠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대부분이었다.
정치부 기자들은 '숏폼' 미디어 환경에서 정치인들 역시 자극적인 '후크'(HOOK, 강한 인상을 주는 문구)를 의식한다면서 '숏폼'의 유해성을 지적했다. 8년 동안 정치부에서 취재한 인터넷 매체 A기자는 “최근 정치 현장에선 전반적으로 '의원들은 거의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보좌진들도 정치인들의 댄스 영상을 찍고 후킹을 잡는 게 일과로 자리 잡았다”면서 “평소에도 '숏폼'으로 연출될 만한, 그런 발언을 의식해서 연출한다는 비판도 많이 나왔다. 현장에서 실제로 맥락에 잘 안 맞는데 갑자기 센 발언을 하면서 '숏폼'을 만들려는 의도가 읽힐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정치부에서 대선을 취재한 전문지 B기자는 “이번 대선은 전반적으로 정책 공약이 마지막에 발표됐고, 정책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의 대선이었다”며 “특히 이준석 후보의 경우 쇼츠 등을 통해 여성혐오 발언이 젓가락 발언으로 퍼졌다. 너무 자극적인 발언인데 '삐' 처리 없이 보내는 쇼츠도 많았다. 이걸 보면서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기대감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우려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여의도 정치가 점점 짧아지고 센 발언을 꼭 한 문장씩 넣는 식의 유세나 기자회견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쇼츠를 염두에 둔 발언이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이준석 후보의 TV토론 발언 경우도 확대 재생산될 것을 염두하고 자극적 발언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정당 출입을 하다 탄핵 및 대선 국면에서 영상을 담당하고 있는 C기자 역시 “이준석의 전국민 성희롱 발언이 쇼츠 위주로 확산되는 것을 보고 문제라 느꼈다”며 “이준석 후보가 중요한 정책과 대선후보 검증을 논하는 자리에서 해당 발언을 꺼낸 것 역시 쇼츠를 중심으로 이슈가 형성되는 사회적 현상과 연관이 있다. 오로지 자극적이고 중독성 있는 1분 내외의 장면으로 확산되는 쇼츠 환경을 이용하려고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현실적으로 쇼츠를 만들어야 하는 미디어 환경을 짚기도 했다. 미디어 이용자의 선호를 인정해야 하며, 쇼츠의 유익한 면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C기자는 “숏폼 콘텐츠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편집·촬영 기술, 장비 등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만들어서 업로드가 가능하다”며 “선거 운동 당사자들이 겪는 일 중 언론이 놓칠 수 있는 일도 전 국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쇼츠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골치 아파 보여 평소에는 클릭을 피했던 주제도 무심결에 쇼츠로 접하게 되면서 파악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C기자는 그러나 “1분 정도의 영상으로 전달하기에 정확한 사실관계나 방대한 정책을 전달하는 데에는 큰 한계가 있다. 내용보다 인상적 장면 위주로 확산되는 경향은 당연하다”며 “다만 최근 선거에서 정책보다 자극적인 장면과 발언만 이슈가 된 건 알고리즘 탓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와 관련된 롱폼 영상과 숏폼 영상을 모두 만들고 있는 한 방송사 정치부 D기자는 “현재 정치인, 보좌진, 기자 모두 숏폼을 만들고 있다. 롱폼은 수천 조회수를 얻기도 힘든데 같은 영상을 짧게 편집하면 수만 조회수가 나오기 때문에 안 만들 수가 없다”며 “우리가 쇼츠를 안 만들면, 많은 유튜버들이 우리 영상을 잘라다가 쇼츠를 만들고 그 콘텐츠가 터지면서 우리 원본은 묻힌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죽 쒀서 개 준다'는 생각이 들어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들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D기자는 “쇼츠는 맥락이 잘라지고 자극적이지만, 독자들이 쇼츠 형태를 선호하는데 롱폼만 고집하며 독자와 멀어지는 것도 문제”라며 “현실적인 입장에서 쇼츠는 언론사의 '자극적인 메뉴'이지만 이런 수단이 없으면 아예 식당(언론사)이 망한다”고 전했다. 이어 “어쩔 수 없이 쇼츠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면, 유익한 쇼츠를 만들 생각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쇼츠는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또 누구나 관심 없던 주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10년 이상 정치부를 출입한 E선임기자는 “'숏폼'은 앞뒤 상황이 없고 맥락이 완벽하게 제거된 상황에서 특정 정치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부분만 떼어내기 때문에 '저널리즘적 재앙'에 가까운 장르라고 생각한다”고 우려를 전했다. 그는 “그러나 워낙 쇼츠, 릴스로 콘텐츠를 보는 시대이기 때문에 실제로 아무리 기사를 써도, 한 개의 숏폼을 이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굉장히 허무하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개선할 해답도 없다고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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