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무대 뒤, 슬픈 텅장"…연예계 불공정 계약의 민낯 [리폿-트]

[TV리포트=이지은 기자] 셀 수 없이 쏟아지는 플래시, 터질 듯한 환호, 수억을 웃도는 광고 계약, 영화는 천만 관객을 넘겼고, 드라마는 글로벌 플랫폼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의 끝에 서 있는 ‘주인공’의 통장은 종종, 텅 비어 있다. 불공정 계약은 오래전부터 알아주는 연예계 고질병이지만, 출연료 미지급은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다. 작품이 흥행해도, 주연이어도, 데뷔 20년 차여도 예외는 없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도, 정작 그 중심에 선 스타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조용히 고통받는다.
연습생 시절 들인 비용을 ‘선투자’라 명명하고, 데뷔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적자’라는 이유로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사례는 무수하다. 반짝이는 스타에 시스템은 구식, 이 아이러니는 특히 K-콘텐츠의 글로벌 성공과 겹쳐지며 더욱 뼈아픈 현실로 다가온다. “선배들은 그랬다”, “원래 이 바닥이 그래”는 변명이 될 수 없다. 선배가 참았고, 희생했으니 너도 감내하라는 암묵적 강요. 이 업계의 악순환은 바로 ‘관행’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된다.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배우 故 김수미도 생전 출연료 미지급 문제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미는 14년간 출연한 뮤지컬 ‘친정엄마’의 제작사로부터 출연료를 받지 못해 소송을 준비 중이었다고. 김수미의 아들이자 나팔꽃F&B 이사 정명호는 “어머니께서 친정엄마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셨다”고 밝혔다. 김수미는 ‘친정엄마’에 대해 “무덤까지 가져갈 작품”이라며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김수미는 2007년부터 지난 5월 26일까지 ‘친정엄마’에 주인공 봉란 역으로 공연에 출연했으나, 제작사가 원작 연극 ‘친정엄마’의 일부 내용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표절 논란에 휘말리며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김수미뿐만 아니라 주요 출연자와 스태프들 또한 출연료를 받지 못했으며, 미지급된 금액만 약 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수미의 며느리이자 배우 서효림 역시 전 소속사와의 정산 문제로 고통받았다. 지난해 12월 방송가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효림은 연예 매니지먼트사 마지끄로부터 지난 2021년 5월부터 2022년 7월까지 드라마·영화 출연 및 광고료 정산금 약 8900만 원을 지급받지 못했다. 이 금액엔 2021년 촬영한 광고료,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출연료, 2022년 영화 ‘인드림’ 출연료 등이 포함됐다.
마지끄의 김 모 대표가 2022년 7월 정산에 나서겠다고 각서까지 작성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서효림 측이 약정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96단독 이백규 판사는 마지끄와 김 대표에게 미정산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효림 측은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에 분쟁조정중재도 신청했지만, 김 대표로부터 매달 70만 원씩 갚겠다는 답만 얻었다”고 토로했다.

배우 박원숙도 출연료 미지급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4월 21일 방송된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는 박원숙, 혜은이, 홍진희, 윤다훈이 출연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박원숙은 “출연료 맨 처음에 주고 그럴 때 ‘왜 그래 싫어 안 받아’라고 쑥스러워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왜 빨리빨리 안 줘. 자기들 월급 늦으면 가만히 있을 거야’ 그랬다”고 털어놨다. 이어 “내가 영화 데뷔작 출연료가 25만 원이었다”며 “계약할 때 ‘미스 박, 이번에는 25만 원이고 다음에는 진짜로 올려줄게’라고 한다. 근데 한 번도 올려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를 듣던 가수 혜은이도 “전속가수로 한달 6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다. 당시 6만원이면 한달 생활비 이상의 큰 돈이었다. 드레스 한 벌이 2000원이었다”며 “무교동에서 일을 하는데 다른 가게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한달 7만 원의 출연료를 주는데, 다른 가수와의 형평성을 위해 만원은 따로 받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만원을 주지 않더라. 며칠만 있다가 준다고 하고 결국 주지 않았다. 그때 상처를 정말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시대는 변했고, 스타들은 더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그룹 이달의 소녀 출신 츄(본명 김지우)는 전 소속사를 상대로 제기한 전속계약 무효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지난해 6월 27일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츄가 전 소속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이하 ‘블록베리’)를 상대로 제기한 전속계약 효력 부존재 확인 민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앞서 츄는 수익 정산 등을 문제로 전 소속사와 갈등을 겪었던 츄는 2021년 12월 블록베리 크리에이티브를 상대로 전속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블록베리는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22년 11월 츄를 갑질 등의 명목으로 팀에서 퇴출시켰다. 하지만 츄는 갑질이 없었다고 반박, 전속계약에서 수익배분율이 부당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1, 2심에서 츄는 모두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전속계약 무효 이유에 대해 “츄의 전속계약은 그 기간을 정해두었기 때문에 소속사가 변경된다고 당연히 효력을 잃는 것이 아니”며 “원고의 연예 활동으로 2016년부터 2021년 9월까지 약 8억 6천만원의 순수익이 발생했으나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의 수익분배 조항에 따를 경우 원고는 정산금을 전혀 지급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출연료 미지급 문제’는 연예계 전반의 구조적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중들 역시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예계는 예술과 산업이 공존하는 영역이다. 빛나는 무대를 만든 주인공들이, 최소한의 생계와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빛난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는 계약”,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새롭게 써야 할 연예계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이지은 기자 lje@tvreport.co.kr / 사진= 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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