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가 답할 수 없는 질문 "노동당은 누구를 대변하는가?"
2019년 고세훈의 「R.H. 토니」
英 집권 노동당 지지율 하락세
극우 영국 개혁당에 보선서 패배
스타머 총리, 반이민 정책 발표
외연확장용 균형재정 공약 어겨
“토니 책 읽으라”던 지지자 무시
정책의 수단과 목적 뒤바뀐 결과
지난해 14년 만에 재집권한 영국 노동당이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집권 당시 33.7% 득표율로 412석을 석권했던 노동당은 5월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극우 성향 영국개혁당에 6표 차이로 패배했다. 지난 1일 설문조사에서도 노동당은 지지율 22.0%로 영국개혁당(28.0%)을 넘지 못했다. 영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원조 노동당 사상가 R.H. 토니의 책을 통해서 알아봤다.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사진 | 뉴시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05/thescoop1/20250605111534645cgdw.jpg)
지난 5월 보궐선거 참패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노동당)의 우클릭을 가속했다. 스타머 총리는 5월 12일 돌봄 노동자 비자를 폐지하고, 숙련 노동자의 비자 요건을 상향 조정하는 이민 제한 정책을 발표했다. 영국 이민자는 향후 4년간 매년 10만명씩 줄어든다. 극우정당에 졌다는 이유로 그들의 반反이민정책을 이어받는 진보정당의 이상한 결정에 영국은 혼란에 빠졌다.
노동당의 지지율 하락은 그 결과다. 정책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명예교수가 2019년 펴낸 책 「R.H. 토니(아카넷)」는 지금 영국 노동당이 처한 모순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R.H. 토니는 노동당에 큰 영향을 끼친 경제사학자이자 사상가다. 토니는 현대 경제 문명의 근본 문제가 "현대인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현대사회는 부富가 수단 아닌 목적이라는 믿음, 곧 모든 경제활동은 그것이 사회적 목적에 기여하든 않든,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믿음 위에 서있다. 그리하여 보상은 서비스와 분리돼서 아무런 기능을 수행하지 않을지라도 정당화된다(183쪽)".
토니는 생산과 축적 그 자체가 목적이면 '탈취사회'일 뿐이고, 생산과 축적이 공공이익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일 때 비로소 인류는 '기능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래된 노동당 지지자들은 지난 2020년 키어 스타머가 당 대표에 취임하면서부터 "R.H. 토니의 책을 다시 읽으라"고 주문했다. 영국 매체 가디언도 2020년 "코로나19 이후 정상적인 경제로 복귀하기 힘들 수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경제에 관한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며 스타머 신임 대표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노동당은 윌리엄 모리스의 도덕적 사회주의, R.H. 토니의 공동체주의를 재검토해야 한다. 특히 R.H. 토니는 다시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토니가 사회적 목적이 상업적·개인적 이익에 우선한 경제적 가치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도덕적 경제란 경제활동을 물질이 아닌 도덕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수단이 목적이 되는 역전 현상은 토니가 '평온한 잔인함'이라고 부른 이중 잣대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05/thescoop1/20250605111536145tlyi.jpg)
"불평등이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판단능력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다…(불평등 수혜자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이익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되, 이웃들의 유사한 요구에 대해서는 돌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 일상적으로는 한없이 온화하고 겸손하지만 그들의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양은 … 분노로 포효하는 사자가 된다(217쪽)".
이를테면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와 같은 사람이다. 토니는 농노제 폐지 소식을 들은 루터의 분노를 이렇게 전한다. "(농노제의 폐지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만들어서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을 … 세속왕국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구상의 왕국은 사람들 간의 불평등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274쪽)"
하지만 기독교의 세계관은 그렇지 않다. 기독교의 그리스도는 "소중한 피를 흘림으로써 예외 없이 농노마저 구원"한 사람이다. 영국 노동당은 선거에서 극우정당에 의석을 뺏기자 이들의 반이민 정책을 이어받았고, 보수층 유권자를 겨냥해 내놓았던 균형재정 공약은 1년 만에 폐기했다.
유권자들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노동당은 이제 누구를 대변하는 정당인가?" 스타머 총리가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돼버렸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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