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으로 중립적인 언론
[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미디어오늘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어느 때보다도 공약이 없는 선거였다. 탄핵에 이은 조기 대선임을 감안해도 그랬다. 성평등 공약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반해, 서로를 향한 '여성혐오' 논쟁에는 불이 붙었다. 언론은 후보들에게 없는 공약을 묻는 입이자, 무엇이 혐오인지를 판단하는 가늠자 역할을 해야 했다. 적어도 혐오를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역할은 삼가야 했다.
3차 TV 토론 당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여성 성기 관련 발언은 명백한 성폭력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아들이 쓴 댓글을 인용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나, 진위 여부를 떠나 공론장에서 발화되어선 안 되는 표현이었다. 이 후보는 직접적 언급을 자제할 수 있었음에도 그리하지 않았고, TV 토론을 시청한 많은 이들이 정서적 피해를 호소했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를 그대로 송출한 언론 환경이었다. 기실 3차 TV 토론은, 지금껏 이 후보가 사회적 소수자를 상대로 자행해온 갈라치기 정치를 언론이 고스란히 옮기던 행태의 실시간 재현이었다. 게이트키핑 기능이 망가진 종래의 언론과 비슷하게, 그날 사회자의 역할도 발언 시간을 알려주는 초시계에 그쳤다. 사회자가 발언 자체를 막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후 경고성 멘트나, 시청자에 대한 사과조차 없는 것은 문제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토론회여서 사회자가 중립 의무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치더라도, 해당 발언이 그 자체로 문제인 것은 진영 논리나 정치적 중립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토론은 유의미했다. 대통령 선거에 나온 후보의 밑바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말이다. 기존의 활자·영상 매체 인터뷰는 사전 질문지가 제공되기 때문에 캠프 측에서 미리 준비한 답변이 나온다. 그나마도 서면으로 대체해, 후보자 본인의 진의까지는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선거에 출마한 이라면 공중파 방송에서 '아무말'이든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든 그날의 토론 앞에서, 언론은 치열하게 자기 반성을 거듭해야 한다. 해당 발언을 그대로 재반복해 보도한 몇몇 언론은 다시 한 번 '인용'이라는 허울의 2차 가해를 한 것이나 다름 없다.
방송 3사의 앵커인 토론 사회자들이 '중립'이라는 가치에 착실히 천착한 것과 달리, 막상 방송사들의 개표 방송 패널 섭외는 다분히 편향적이었다. 지난 3일 저녁부터 시작된 3사의 개표 방송 패널들은 완벽한 '남초'에, 여실히 우경화됐다. MBC의 패널은 유시민 작가,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SBS는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KBS에는 이소영·김상욱 민주당 의원,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나왔다. 각 사 패널 중 여성은 한 명씩이거나(SBS·KBS), 아예 없었다(MBC). 선거전에서 민주당이 '중도보수'를 표방한 것을 감안하면, 진보를 대표할 만한 패널은 3사 모두 전무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배우자 설난영 씨를 두고 '내재적 접근'이라며 여성과 노동자를 모두 멸시하는 발언을 했던 유시민 작가는 또 한 번 버젓이 개표 방송 패널로 등장했다.
대외적으로는 어쨌든 '중립'이라고 하는 언론의 화살이 향하는 곳은, 만만한 연예인들이었다.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와 래퍼 빈지노, 방송인 홍진경의 의상에 관한 '정치색 논란'은 철저히 언론이 길어 올린 '논란'이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일부 그런 의견이 있다한들, 연예인을 향한 그 많은 '잡도리'와 음모론을 일일이 중계해 '논란'으로 프레이밍한 것은 언론이었다. 옷 색상 하나 가지고 '왜 하필 지금', '의도 없었다지만' 같은 해설성 제목을 달아 해당 연예인에게 잘못이 있다는 뉘앙스를 공개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서울경제>, '왜 하필 지금… 홍진경, 대선 전날 빨간 옷 사진 올렸다 '논란'', 2025년 6월3일, <마이데일리> ''의도 없었다지만' 카리나→홍진경까지, 정치색 논란에 연이은 사과 [MD이슈]', 2025년 6월3일)
특정 색상의 옷을 입었다고, 사진 찍을 때의 '브이' 포즈를 한다고, 하다 못해 사진 배경의 기둥 색상까지 단속하며 정치적 함의를 띈다고 억측을 한다. 사실 직업인이기 전에 민주사회의 시민인 이들이,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한다 한들 문제될 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 속에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내비치면 안 되는 '험한 것'이 된다. 언론 보도가 일상 속 정치혐오에 더욱 일조하는 셈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험한 것은 연예인들의 정치 성향이 아니라, 이준석의 발언이다. 여성혐오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재차 공중파 방송사에 나와 자신의 주관을 설파하는 유시민의 입이다. 젠더적으로도, 정치 이념으로도 편향된 방송사들의 패널 구성과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보도다. '중립'이라는 미명 하에 방조하거나 부추긴 혐오의 값을, 언론은 대선전을 기화로 되새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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