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죄를 사하노라, 내 맘대로” … 트럼프 ‘정치적 사면’ 남발해 논란[Global Focus]
마가 인사·고액 기부자 사면
뇌물·사기·탈루 혐의도 구제
“제도 취지 어긋나” 비판 봇물
英 국왕 ‘자비의 특권’에 뿌리
사실상 탄핵外 무한 행사 가능
트럼프, 부통령에 권한 위임 후
본인 위해 ‘셀프 사면’ 가능성

워싱턴 = 민병기 특파원
취임 직후부터 온갖 논쟁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 행사를 두고도 논란에 휩싸여 있다. 4년 전 자신이 선동한 의회 폭동 사태 가담자 1500여 명을 사면한 것을 시작으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성향의 인사를 잇달아 사면하는가 하면 자신에게 거액을 기부한 인사를 위한 사면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법조인이 맡아왔던 법무부의 사면 담당 변호사직에도 정치인 출신을 기용해 역대 가장 정치적인 사면을 남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은 사면에 대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고 헌법에 대통령에게 탄핵을 제외한 범죄에 대한 사면권을 부여하고 있어 사실상 무제한적인 행사가 가능하다.
◇무제한적 행사 가능한 美 대통령의 사면권= 미국 대통령이 행사하는 사면권의 법적 근거는 헌법에 있다. 헌법 2조 2항의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범죄에 대해 사면과 형 집행을 유예하는 권한을 가지며 탄핵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단 한 줄이다. 이외 다른 법률에서 사면권의 행사나 제한, 견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헌법이 제한하는 두 가지 제한은 미국에 대한 범죄여야 한다는 것, 따라서 주 차원의 범죄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면권이 없고, 일부 주에서는 주지사가 사면권을 가진다. 다른 제한은 탄핵 사건뿐이다. 이처럼 미국 대통령에게 강력한 사면권이 주어진 것은 사면권이 7세기 영국 국왕에게 부여했던 ‘자비의 특권’에 뿌리를 두고 있고, 미국 건국자들이 사법제도에 의해 억울하게 처벌받은 이들을 쉽게 구제할 수 있도록 강력한 사면권을 원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면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양심’이 사실상 최대 제한 규정인 셈이다. 18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갈런드 사건’ 판례도 대통령 사면권이 막강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대법원은 대통령의 사면권은 범죄 발생 후 언제든 행사될 수 있고 의회의 법률로 제한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은 헌법과 미국 건국자들이 사면제도를 도입한 취지를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마러라고 사저에서 열린 1인당 100만 달러(약 14억 원)짜리 만찬에 참석한 한 여성의 아들을 불과 행사 3주도 되지 않아 사면했다. 1050만 달러의 회삿돈을 탈루해 요트와 명품을 사는 데 쓴 죄로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CEO였다. 백악관의 설명은 “어머니와 아들이 보수 정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바이든 행정부의 표적이 됐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명분으로 위조서류를 이용해 은행에서 3000만 달러를 대출받아 사기와 탈세 등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부부를 사면했고, 뇌물과 사기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열렬한 마가 지지자인 버지니아주 보안관을 사면했다. 민주당 소속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주지사 납치 모의 사건의 범인들에 대한 사면도 논의하고 있다. ‘친트럼프’ 배우 멜 깁슨의 총기 소유 권리 복권을 권고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전 사면 담당 변호사인 리즈 오이어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일반적으로 작동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며 “정말 놀랍고 충격적인 것은 대통령이 수천만 달러, 수억 달러의 배상금과 벌금 및 기타 재정적 벌금을 물어야 하는 개인에게 사면을 허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대통령도 한 적이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지가 보도했다.

◇천차만별인 美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 사면 절차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공식적인 절차로 사면 또는 감형을 원하는 사람이 사면 변호사에게 신청하면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5년의 대기 기간이 지난 후 신청서가 검토되며 연방수사국(FBI) 신원조회를 포함한 철저한 검토 작업을 거쳐 사면 담당 변호사가 사면 승인 여부에 대한 권고안을 작성한다. 그리고 사면 추천은 법무부 차관을 통해 이뤄지고 최종 추천은 백악관 법률고문실이 한다. 추천안을 받아든 대통령은 이를 승인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대통령에게 직접 사면 추천이 들어가는 경우다. 사면권에 제한이 없듯 추천인에도 제한이 없다. 이 경우 대기 기간과 신원 조회 등 과정이 생략되고, 사실상 대통령의 결단만이 유일한 절차다.
역대 대통령들은 다양한 사면권을 행사해왔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795년 펜실베이니아주의 위스키 반란에 연루된 사람들을 사면했다.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은 외국인선동법에 따라 유죄를 받은 모든 시민에게 사면권을 부여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은 남북전쟁 당시 적이었던 남부군의 탈영을 장려하기 위해 사면권을 활용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제한되지 않다 보니 선제적 사면(Preemptive Pardon)도 존재한다. 아직 기소되지 않거나 유죄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개인에 대해 미리 사면을 내리는 조치다. 가장 유명한 선제적 사면사례는 1974년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 전 대통령은 기소된 상황이 아니었지만, 포드 전 대통령이 닉슨 전 대통령에 대해 ‘모든 범죄에 대한 포괄적 사면’ 조치를 취했다.
대통령이 결백하거나 ‘불의의 희생자’로 생각되는 사람들을 사면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인 2018년 105년 전인 1913년 인종차별의 희생양이었던 흑인 복서 잭 존슨을 사후 사면했고, 바이든 전 대통령은 동성 간 성관계에 대한 군대 금지령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군인들을 사면했다. 사면대상자를 특정하지 않은 사면도 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징집 대상자를 사면할 때 ‘포괄적 사면’을 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도 마리화나 범죄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사면권을 행사했다. 또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할 때 특정 범죄를 정할 필요는 없다.
워낙 정치적인 사면을 남발한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셀프 사면’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에 대해서는 1974년 닉슨 대통령 사임 전 법무부는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 대해 판사가 될 수 없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스스로 사면할 수는 없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부통령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하는 식의 여지가 있다.
민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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