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꼴찌에게 갈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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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최종 득표율 0.98%.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TV토론에 초청된 주요 후보 4명 중 ‘꼴찌’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애초 목표했던 3%(선거 TV토론 참가 자격)는 넘지 못했지만, 왜 진보 정치가 필요한가를 증명한 소중한 숫자였다.
권 후보가 원외 정당이라는 한계를 딛고 인지도를 높인 결정적 계기로 많은 이가 TV토론을 꼽는다. 비방과 혐오가 난무하는 가운데 선명한 진보 의제를 제시하며 토론다운 토론을 한 유일한 후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 후보의 진면목은 토론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그의 공약을 통해 드러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약은 후보가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대선 기간 후보별 복지·빈곤 공약을 분석하는 기사를 준비하느라 10대 핵심 공약부터 정식 공약집까지 샅샅이 훑었다. 그런데 저출생, 보육, 돌봄, 간병, 노인, 장애인 등 주요 복지 정책은 한 사람의 공약으로 보일 정도로 후보 간 차별성이 크지 않았다.
권 후보만 여기에 더해 예상치 못한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철거민, 쪽방 주민, 노점상, 홈리스, 노숙인. 폭염이나 혹한이 기승을 부릴 때나 주목받는,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약자 중의 약자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강제 퇴거·철거 금지,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지구 지정 완료, 노점상생계보호특별법 제정, 홈리스 형벌화 조치 중단 등은 단순한 공약이 아니라 삶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이 외치는 구조 신호처럼 읽혔다.
노동자, 청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에 이어 관심의 변두리로 밀려난 빈민까지. 권 후보가 호명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완전히 지워진 존재로 남을 뻔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은 그에게 큰 빚을 졌다.
권 후보는 유세 마지막 날, 서울 혜화역에서 이동권 투쟁 중인 장애인을 만났고, 구의역에 찾아가 9년 전 사망한 청년 노동자를 추모했고, 강남역에서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밤에는 또다시 노동자가 숨진 태안화력발전소로 달려갔다. 마지막까지 그는 우리 사회 그늘진 곳만 찾아다녔다.
투표 종료 후 하룻밤 새 권 후보에게 후원금 13억 원이 쏟아졌다고 한다. 후원자 수는 3만5,000명. 표를 주지 못한 미안함 이전에 그가 말과 글과 행동으로 보여준 지지와 위로에 대한 보답이었을 것이다.
권 후보는 “지지율 1% 남짓 나오는 후보가 아니고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그 배제되고 밀려난 아픈 마음들의 의미를 잘 헤아리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1%에 기댈 수밖에 없는 그 아픈 마음”에 새 정부도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새 대통령도 마음의 빚을 갚아야 하지 않겠나.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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