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예의없음에 대한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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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실력임을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요즘 것들은 예의가 없다. 이 말을 내뱉을 때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한 술 더 떠 요즘 것들은 참을성이 없다는 말까지 얹는 날이면 내 안의 양심이 슬쩍 손을 든다. "너의 20대를 돌아봐!" 맞다. 20여 년 전, 내가 요즘 것이었던 때는 지금의 요즘 것들보다 더 심했다. 예의도 인내심도 훨씬 없었다. 예의? 조선시대 유물쯤으로 여겼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갑갑했다. 상사와 부하, 어른과 아이, 교사와 학생. 나이와 계급에 따라 나뉜 위계질서 속에서 예의는 복종과 구분되지 않았다. 심지어 강자인 기성세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느낌마저 들어서 예의를 지키고 싶지 않았다. 자고로 청년이란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울 줄 아는 패기가 있어야 하는 법. 기성세대를 향해 늘 전투태세를 갖추며 살았다. 예의상 장단을 맞추는 법도 없었고, 예의를 갖춰 의견을 말하는 법도 몰랐다. 오직 젊음이라는 무기를 방패 삼아 기성세대를 꼰대로 몰아붙이기 바빴던 그때 그 시절. 그야말로 이리저리 치고받고 다니는 천둥벌거숭이였다.
한국전쟁 때 배가 너무 고파서 시체 해골 물을 떠먹으며 이 나라를 지키고자 전투를 벌였다는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먼 산을 보며 딴 짓을 부렸다. 나라를 지킨 애국심이 아니라 분단을 공고히 하는 반공주의라며 날을 세웠다. 자식들 키우느라 허리 굽은 어머니들의 삶은 거룩한 희생보다 닮기 싫은 희생으로 느껴졌다. 무더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외화벌이에 나선 삼촌의 땀은 복고풍 훈계였고,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한 선배들의 과거는 현재의 꼰대로 다가왔다. 세상이 만만하게 보였던 청년 시절, 내가 '정의'였고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게 청춘인 줄 알았다. 그리고 부끄럽지 않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앞서가는 이들이 있다. 청년 중에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스펙 혹은 능력이 좋음에 있지 않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예의 바른 청년들이다. 20대 청년들이 예의를 갖추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더 강력하다. 예의는 청춘의 갑옷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말하는 청년은 많지만, 상대의 의견을 겸손하게 듣는 청년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청년들을 만날 때면 마음이 간다. 될성부른 나무로 쑥쑥 성장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반대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청년들도 있다. 청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정치를 하는 이들이다. 입만 열면 혁신과 정의를 외치지만 그 말 속에는 배려도 경청도 없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법은 배우지 못한 채,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말만 커지게 하는 데 익숙해 보인다. 상대를 공격하는 비판은 있으되, 다름을 수용하는 태도는 없다. 예의는 자신보다 강한 권위에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힘이다. 정치를 하는 청년이든, 사무실 샐러리맨 청년이든,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 청년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태도가 곧 실력이다. 청년들이여!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예의를 갖춰라. 안타깝게도 그걸 나는 20년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면 무엇하랴. 현재가 중요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중년의 무기를 찾는 것이다. 청년 시절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중년들을 떠올리면 답이 보인다.가르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던 중년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청년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멋진 중년이 되자.
/김봉임 종합홍보콘텐츠 ㈜큰그림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