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찾는 청년들, 통영 수산업 장인과 연결하고 싶어요”

경남 통영의 장어를 알리는 데 앞장서 온 정여울(33) 웰피쉬 대표가 이번에는 통영에 청년마을을 만드는 데 나선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통영의 장어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장어포를 만들어 해외 판로까지 개척한 정 대표의 웰피쉬는 최근 행정안전부의 ‘2025년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은 지역 청년들의 유출을 막고 도시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비 사업이다. 정 대표는 통영 동피랑에 ‘섬바다음식학교’를 세워 지역과 도시 청년들이 수산업에서 삶의 길을 모색하도록 도울 예정이다.
지난달 28일 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 대표는 “도시 경쟁에서 지친 청년들이 섬과 바다에서 창업의 기회를 찾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도록 지원하고 싶다”며 “청년 창업가들이 통영 주민, 지역 생산자들과 직접 연결돼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장어 재고 해결 위해 간편식 개발
미주 수출하고 식품산업대전 수상
‘장어에 미친 여자’라는 별명 얻어
기자를 꿈꾸며 고려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그가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창업’ 관련 수업을 들으며 창업 실험을 해보면서다.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던 당시만 해도 미용실에 직접 방문해야만 헤어스타일별 정확한 서비스 가격을 알 수 있었다. 정 대표는 학교 커뮤니티에 학생들과 학교 인근 미용실 3곳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올리면 미용사들이 ‘얼마에 가능하다’는 답변을 올리는 식으로 조건이 맞는 학생과 미용사가 연결됐다. “굉장히 반응이 좋아서 실제 사업화를 해보자는 연락을 받기도 했어요. 사업을 통해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고, 그 뒤로 주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계속 고민하게 됐죠.”
대학 졸업 이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에 많이 수출되던 통영 바닷장어가 일본의 수입 규제로 재고가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침 그즈음 일본 여행을 갔는데, 편의점에서 문어 숙회 등 다양한 수산물 간편식을 판매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도 다양한 수산물이 많은데 왜 일본처럼 보편화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일본에서도 이렇게 잘되고 있으니 우리도 수산물 간편식을 만들면 장어를 비롯한 수산물 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바로 통영으로 내려갔다. 통영시청 문을 두드리고 수산업자들을 만나며 경상남도가 조성한 청년임팩트투자펀드 1호로 지원을 받아 1년간 수산 가공 제품 개발을 진행했다. 서울먹거리창업센터에 입주해 각종 제품을 개발한 뒤 경기 성남 분당구 정자동에서 장어 배달 전문점을 운영하기도 했고, 온라인 펀딩 플랫폼을 통해 통영 장어구이 밀키트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웰피쉬를 창업해 ‘통영 바다장어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 제품은 장어를 육포처럼 만들어 반찬이나 안주, 간식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게 한 것으로, 비린내는 잡고 감칠맛은 살린 비법으로 구매자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2022년에는 서울국제식품산업대전에서 이노베이션상을 받으며 미국과 캐나다에 수출하기도 했고, 지에스(GS)25에도 입점했다. 정 대표는 이 과정에서 ‘장어에 미친 여자’라는 뜻의 별명 ‘장미녀’를 얻기도 했다.

서울과 통영을 오가며 생활하던 정 대표는 올해 아예 통영으로 이사했으며, 지금까지 위탁 생산해 온 장어포를 비롯해 개발해 온 10여가지 수산 간편식을 올해 말부터는 직영 공장에서 직접 생산할 예정이다.
이 와중에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지원한 이유에 대해 정 대표는 “저 같은 사람을 많이 만들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아직 청년들에게는 농업과 견줘 수산업은 덜 주목받고 있고 진입 장벽도 높은 편입니다. 그런데 제가 해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산업이라 많은 청년들이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해 공모사업에 지원하게 됐어요.”
정 대표는 다음달 문을 여는 ‘섬바다음식학교’를 통해 지역 전문가들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담은 교육과 숙소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또 어민뿐 아니라 중매인, 식당 주인들과의 연결을 통해 직접 시제품을 만들어 보고 팝업 매장에서 판매도 해보는 방식으로 청년들이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도록 격려할 계획이다. 현재 섬바다음식학교 누리집(wellfish.co.kr)에서 신청자를 모집하고 있다.
“섬바다음식학교는 단순히 기술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청년과 지역이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외지 청년이 지역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그 지역과 진짜로 연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지역은 텃세가 심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진정으로 자신의 철학을 계승해줄 수 있는 청년들을 찾는 어른들도 많습니다. 지역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청년과 자신의 철학을 이어주길 바라는 어른들을 연결해주고 싶어요.”
올해 통영 이사, 청년마을 사업 시작
교육·숙소에 시제품 판매까지 지원
“기술 교육보다 지역 정착이 목표
저같은 사람 많이 만들고 싶어요”
그의 궁극적인 목표와 비전은 “통영을 수산 식문화의 허브로 만드는 것”이다. “섬과 바다의 식문화는 한국을 넘어 글로벌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요. 통영이 섬과 바다의 식문화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미식 도시가 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지역의 장인들이 선생님이 되고, 청년들이 도제가 되어 섬과 바다의 재료를 탐구하고 창업하는 지속 가능한 로컬 생태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케이-청년들이 만들어낸 문화가 전세계에 대한민국의 섬과 바다를 알리고, 외국의 청년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고 믿어요.”
그는 청년들에게 창업을 무조건 추천하지는 않는다. “온전히 혼자 결단을 내리고 그 책임을 혼자 다 져야 한다는 점에서 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창업에는 버티는 힘이 필요하고, 버티기 위해선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에게 그 이유는 생산자들이 애써 만들어낸 생산물의 가치가 소비자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는 수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소명의식이다. 그것이 그를 버티게 했고,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까지 도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기자를 꿈꿨던 그가 외려 취재를 당하는 사업가가 된 기분을 물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의 본질이 기자의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자도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알리고 해결하려는 거잖아요. 저도 수산업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업을 하니까, 제가 원래 살고자 했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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