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시점주의 〈From you〉] 당신이 묻는 부평구는?…쇠락 너머 전환의 길목에 선 '인천의 심장'-프롬유

정회진 기자 2025. 6. 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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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단지 등 조성…산업도시 급성장
국내 최초 경인철도·고속도로 개통
2006년 인구 '57만283명' 전성기

경자구역 개발 속도에 밀려 인구 감소
지역 활력 잃고 다른 지역으로 유출

삶의 질 중심…쇠퇴 아닌 '재생'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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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경계에 선 도시, 부평

부평(富平). '풍요롭고 평평한 땅'이라는 뜻처럼 이곳은 오래전부터 넓은 들판에 곡식이 무르익던 삶의 터전이었다. 논밭 사이로 바람이 지나고, 계절 따라 일손 바빴던 평야는 그 자체로 한 폭의 풍경화였다.

부평은 가만히 머무르지 않았다. 1930년대 말 일제가 군수공장을 세우며 도시화의 첫 물결이 밀려왔다.

이후 전쟁의 아픔과 광복의 함성을 거치며 도시화가 중단되는 듯했지만 부평은 다시 일어섰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5개년 계획에 따라 수출을 위한 공업단지가 조성됐고, 그렇게 부평은 산업 도시로 거듭났다.
▲ 1966년 인천 부평공업단지건설공사 기공식./제공=부평구

서울과 인천항 사이, 교통의 요지에 자리한 지리적 이점은 부평을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와 고속도로인 '경인철도'와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되며 산업은 숨 가쁘게 성장했고, 한국GM 부평공장을 비롯한 대형 제조업체가 잇따라 들어서며 탄탄한 산업 기반이 구축됐다.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인구도 늘어났다. 푸른 논밭은 점차 회색 아파트로 바뀌고, 토지가 정비되면서 대규모 주거 단지가 들어섰다. 1970년대에는 지하철 개통과 함께 지하도상가가 생기며, 부평은 상업 도시로서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공업과 주거, 상업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복합도시' 부평의 모습은 그렇게 완성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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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서의 경쟁력은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1999년 부평구의 인구는 52만8339명. 그리고 2006년 마침내 57만283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한때 인천시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이곳에 살 만큼, 부평은 그야말로 '인천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도시는 영원히 젊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며 원도심의 그림자가 짙어졌고, 사람들의 발길은 새로운 땅으로 향했다.

경제자유구역을 등에 업은 인천 서구와 연수구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부평은 점차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2025년 3월 기준 부평구의 인구는 49만3634명. 한때의 영광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고, 서구와의 인구 격차는 10만명 이상 벌어졌다.

그렇지만 부평은 여전히 생생한 도시다. 한때의 찬란함이 깃든 거리, 골목, 상가,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은 여전히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도시의 성장과 쇠락, 그리고 다시 피어날 기회까지. 부평은 오늘도, 내일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오늘날 부평구 전경./제공=부평구

지금의 부평은 어쩌면 새로운 변곡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산업만으로는 도시가 유지되지 않는 시대에서 부평은 이제 삶의 질과 도시의 매력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오래된 풍경 속에 스며든 기억을 보듬고, 다시 사람을 끌어당기는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상상과 고민이 시작됐다. 쇠퇴가 아닌 재생의 계절을 준비하는 지금, 부평은 또 다른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미리보기>

부평구는 총 7개 카테고리로 구성됐다. 학원가와 학교, 부동산과 산업단지, 유통과 교통, 그리고 인구 변화까지, 부평의 어제와 오늘, 내일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평의 학원지도, 교육열은 여전하다〉 출생아 수는 줄어들지만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과열되고 있다. 부평구의 학원 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삼산동 등 일대 학원가에는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교육비 부담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며, 부평은 교육열이 여전히 뜨거운 곳으로 남아 있다. 불균형도 존재한다. 67개vs 6개. 일부 지역은 학원이 60곳을 넘지만 학원 갯수가 6곳으로 형성된 곳도 있다.

〈아이들은 줄어도 교실은 멈추지 않는다 … 변화하는 부평 교실〉저출산의 영향으로 부평구의 학생 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한때 북적였던 교실은 이제 절반도 채워지지 않는다. 서구 청라국제도시 등 신도시 학생 수는 늘지만 원도심 학교에서는 통폐합과 소규모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숫자가 줄어도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이자 아이들의 배움터로 남아야 한다. 변화하는 부평의 교실은 우리가 어떤 미래 교육을 만들어가야 할지를 묻고 있다.

〈논밭이 아파트로, 저층이 마천루로〉 논밭이던 삼산동과 연립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선 청천동은 이제 20층짜리 이상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부평은 노후 아파트 비율이 인천에서도 손꼽히는 지역으로, 재개발과 재건축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청천동과 산곡동 일대는 대규모 신축 단지가 들어서며 미니 신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캠프마켓 활용과 공병단 부지 개발 등 새로운 사업들도 기대를 모으지만 이 변화가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억 속 백화점, 지금 부평엔 없다〉 부평에는 한때 두 개의 백화점이 들어섰다. 1990년대 문을 연 동아시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인천에서 중심 상권을 상징했지만, IMF와 경쟁 업체 등장으로 결국 사라졌다. 이제 부평 주민들은 백화점을 가기 위해 부평을 떠나야 한다. 그 결과, 부평의 역외소비 유출률은 인천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대형 유통시설의 부재는 부평의 상권에 아쉬움을 남긴다.
▲ 2005년 수출4공단 전경. /제공=부평구

〈남동산단은 알아도 부평산단은 모른다〉 부평은 한국 최초의 국가산업단지를 품은 도시다. 한때 '수출 전진기지'로 불리며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부평산단은 경쟁력 저하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 자동차 제조업의 중심지였던 부평은 산업 전환의 기로에 섰다. 변화하는 산업 구조 속에서 부평산단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부평, 교통의 중심에서 단절의 갈림길로〉 경인선과 경인고속도로는 인천을 성장시킨 교통망이면서 동시에 지역 단절을 초래한 구조물이다. 부평역 주변은 남북으로 나뉘어 생활권이 분리됐고, 경인선 철로는 도보 이동마저 불편하게 만든다. 주민들은 오랜 숙원인 경인고속도로와 경인선의 지하화를 염원한다. 교통 중심지였던 부평이 교통 단절을 넘어 새로운 연결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라져가는 아이들, 떠나는 주민들〉 부평의 인구는 한때 57만명에 달했지만 점차 감소해 현재는 50만명 선도 위태롭다. 청천동과 산곡동 재개발로 반짝 증가세를 보이긴 했지만 지속적인 인구 유출은 여전히 과제다. 부평을 떠난 이들은 경제, 주거, 교통 문제를 이유로 들었고, 남은 이들은 지역 발전을 간절히 바란다. 사람의 손끝에서 도시가 살아나듯, 부평도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 

부평구편 - 정회진 기자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제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부평. 그리고 지금은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네를, 오늘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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