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된 악연` 이종석·위성락… 미중 실용외교 양날개로
대미·대중관계 둘러싸고 절묘한 균형 찾기
자칫하면 갈등 재현 가능성도 배제 못해


20년전 악연이 인연으로 또다시 만났다.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에 임명된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과 대통령실 안보실장에 임명된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야기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 당시 각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과 외교부 북미국장으로 갈등을 빚었던 관계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과 자주외교를 둘러싸고 소위 '자주파'와 '동맹파' 간의 갈등이 문제가 됐다.
특히 2006년에는 미국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둘러싸고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2005년 4월 5일에 작성된 '국정상황실 문제제기에 대한 NSC 입장'이라는 11쪽짜리 문건 '외교부와 NSC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각서를 교환하고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NSC는 이 문건에서 "2003년 10월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5차 회의를 계기로 위성락 당시 북미국장이 미국 측에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것을 노 대통령과 NSC에 보고하지 않고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어 "NSC는 각서 교환 사실을 2004년 3월 후임 김숙 북미국장에게서 보고받고 인지했다"며 "NSC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책임은 인정하지만 이는 외교부의 보고 누락이 1차적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요구한 전략적 유연성을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각서 초안을 교환하고도 노 전 대통령에게 5개월 동안이나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당시 국정상황실은 보고서에서 외교부와 NSC가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바람에 2005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노 전 대통령이 "우리의 의지에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고, 미국 측은 노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이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부인한 것으로 해석해 한미 간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이 사태로 당시 윤영관 외교부장관이 경질되고 외교부 북미라인도 대대적인 숙청 대상에 올랐다. 위성락 당시 북미국장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좌천을 당했던 북미라인은 이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화려하게 복귀했고 위성락 의원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친미파인 외교부 북미라인과 갈등을 빚었던 곳이 바로 이종석 국정원장 내정자가 사무처장을 맡았던 NSC였다. 이종석 내정자는 당시 주한미군 기지 이전, 이라크 파병 등 중요한 대미 외교와 관련해 주도권을 행사했고, 이 과정에서 외교부 북미라인과 갈등을 빚었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사실상 수립하고 집행했던 실력자였다. 외교라인의 자주파와 동맹파 간 갈등으로 윤영관 외교부장관이 경질될 당시 이종석 사무처장도 함께 경질돼 세종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런 악연을 가진 두 사람이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의 양날개를 맡았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실용주의 외교를 표방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자주외교를 지향하는 왼쪽의 이종석 국정원장, 동맹외교를 지향하는 오른쪽의 위성락 안보실장을 두면서 좌우 균형을 맞춘 외교를 펼쳐나가겠다는 구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의 취임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친미파인 위성락 안보실장의 등용은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 카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대중(對中)정책에서는 충돌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한다. 이 대통령이 실용적 균형외교를 강조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이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기대는 이중 행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종석 국정원장과 위성락 안보실장이라는 카드로 좌우 균형을 통해 실용주의 외교를 펼쳐나가겠다는 이 대통령의 구상은 이미 시험대에 올랐다.
백악관은 3일(현지시간) 한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밝혔다.
굳이 한국 대선 결과와 관련해 제3국인 중국을 언급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백악관이 중국을 견제하며 이 대통령에게 대중국 관계에 있어서 거리를 둘 것을 간접적으로 의사 표명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좌우 균형을 잘 잡으면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중국과 러시아, 나아가 대북관계에 있어서 실용주의 외교가 빛을 발할 수 있지만, 자칫하면 노무현 정부 당시의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권순욱기자 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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