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이재명을 뽑고 권영국에게 후원금을 보냈을까
하루만에 권영국 후보에게 전해진 13억 원 후원금…"완주 축하하는 마음"
"권영국 정치에 희망 가져" "20대 여성 득표율 5.9% 보고 위로돼 후원"
이재명 투표해도 권영국 후원 "미래가치에 대한 투자, 힘 있는 정당되길"
"민주노동당 빈 왼쪽 공간 정교하게 채워줘야" 정치력·대중성 확장 당부도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가 끝난 직후인 지난 3일 오후 8시부터 4일 오전까지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에게 약 13억 원의 후원금이 들어왔다. 지난달 8일부터 투표 종료 전까지 모인 후원금 8억780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 만 하루도 안 돼 모인 것이다. 권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34만4150표를 받아 0.98% 득표율을 기록했다. 득표율 1%도 채 되지 않는 권 후보에게 이토록 많은 후원금이 몰린 이유는 뭘까.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권 후보에게 후원금을 보낸 후원자 6명의 이야기를 4일 서면과 통화로 들었다.
“권영국 정치에 희망 가져” “20대 여성 득표율 5.9% 보고 위로돼 후원”
이들은 권영국 후보가 사실상 유일한 진보정당으로서 목소리를 냈지만 생각보다 출구조사 결과가 저조해 힘을 보태고자 후원에 나섰다고 했다. 박소영(가명·여성·24세·경기 파주)씨는 “득표율이 높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내 예상보다 낮아서 후원했다”며 “그래도 대선을 완주한 권 후보를 축하하는 마음에서, 여전히 응원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재학생인 박씨는 권 후보가 '내 이야기'를 해줘서 이전에도 후원금을 보낸 적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성 의제에 주목하고 재학생들을 만난 권 후보에게 감사했다”며 “전에는 당연히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후원을 기점으로 내 안에 권영국이라는 또다른 선택지가 생겼다. 선거 유세에 도움이 됐으면 했다”고 말했다.
조영주씨(여성·36세·인천)도 “광장에서 분출된 염원들, 사회적 소수자,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후보가 권영국 후보였다. 사회의 가장 아픈 곳으로 달려가는 모습에서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며 “특히 이번 대선 토론에 있어 '무엇이 토론돼야 했나'를 가장 잘 보여주는 후보여서 투표했고, 적은 돈이나마 후원했다”고 말했다.

출구조사 결과 권 후보를 향한 20대 여성 유권자의 '5.9%' 투표율이 후원 계기가 됐다는 후원자도 있었다. 전북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문주현씨(남성·43세)는 “다음을 그려볼 수 있는 정도의 긍정적 수치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안 좋아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그런데 20대 여성 들로부터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 걸 보니 또 위로가 되더라”라며 “나도 사실 5%를 기대했었다. 마음이라도 보태자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후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와 함께 책방 수익금 일부를 권 후보에게 후원했다.
선거 결과의 윤곽이 나온 오후 10시쯤 후원을 했다는 최민우씨(가명·남성·33세·서울)는 “이재명 후보가 무난하게 당선될 거라고 생각해 권 후보에게 소신투표를 했는데, 뉴스에서 이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을 때 기쁘지 않더라”라며 후원에 나섰다고 말했다. 최씨는 “나는 성소수자인데 이 후보 공약에선 차별금지법 등을 찾을 수 없었다. 노동자 보호에 대한 권 후보의 공약이 웹툰 작가인 나에게 더 와닿았다”며 “진보정치가 더 다양성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후원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투표해도 권영국 후원 “미래가치에 대한 투자, 힘 있는 정당되길”
투표는 이재명 후보에게 했지만 권 후보에게 후원금을 보냈다는 후원자들도 있다. “혹시라도 권 후보를 찍었다가 20대 대선처럼 민주당 후보가 아깝게 낙선할까봐”(이경렬·남성·43세·경기 동두천) 이재명 후보를 찍은 경우다. 이씨는 “마음은 권 후보에게 있지만 몸은 이 후보에게 갔다. 이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역시 이재명 후보를 뽑았다는 박성호씨(남성·43세·경기 분당)는 “권 후보에게 표를 줄 수는 없었다”며 “권 후보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가와 별개로, 현 시점 정치력 등을 봤을 때 민주노동당이 수권 정당으로서 권력을 잡고 국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럼에도 박씨는 권 후보에 대한 후원이 “미래가치에 대한 투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이 중도보수 정당으로 가면서 앞으로 더 신경쓰기 힘들어질 진보 의제들을 충분히 채워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표를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것보단 앞으로 민주노동당이 진보 의제를 다뤄줄 힘 있는 정당으로 성장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후원금을 보냈다”고 말했다.
“빈 왼쪽 공간 정교하게 채워줘야” 정치력·대중성 확장 당부도
대선은 끝났지만, 후원자들이 민주노동당에게 바라는 역할은 분명했다. 박성호씨의 말처럼 대선 전 '중도보수'를 선언한 민주당이 진보 의제를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빈 왼쪽 공간을 더 확실하고 정교하게 채워줘야 한다는 당부다. 박씨는 “민주노동당이 지금보다 더 큰 정당으로 성장해 빈 왼쪽을 다뤄줄 수 있으면 앞으로 정치는 더 건강해질 것”이라며 “진보 의제를 정교하게 다루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민주당과 갈등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의제를 풍부하게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다. 그럼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겪어야 하는 일만큼은 없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문주현씨는 지난 2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노동자 김아무개씨를 언급하며 민주노동당의 역할을 다시금 강조했다. 당시 권 후보는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일 밤늦게 기존 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태안군 보건의료원을 찾아 김씨의 유족과 면담했다. 당시 김씨의 빈소가 차려지지 않아 새벽 서울로 왔다가, 투표 당일 오전 다시 태안을 찾아 조문했다. 문씨는 “그 뉴스가 잔상처럼 남아있다”며 “권 후보가 그날 밤에라도 가서 같이 함께했다는 것, 그 행동이 앞으로 이후 세계의 힘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경렬씨는 권 후보가 대선 공약 중 핵심 사안을 정해 새 정부에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우선 '여성가족부 성평등부로 격상·강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확대·법 위반 사업주 처벌 강화' 등 공약을 새 정부에 관철시키길 바란다”며 “지난 밤 사이 권 후보에게 나타난 후원 현상이 큰 디딤돌이 되어 지난 정부에서 '입틀막' 당했던 진보정당이 새 정부에 큰 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소영씨도 “우리는 이미 많이 양보해왔다”며 “더 이상 우선 순위에서 밀리지 않게 민주노동당이 더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노동자 권리, 약자 보호를 얘기해줘야 한다”고 했다.
당 차원의 정치력과 대중성을 확장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민우씨는 “당장 국민이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공약이 많았다. 그래도 이번 선거는 대통령이 되려고 나왔다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알리려고 나왔다고 생각해서 좋다고 생각했다”며 “장기적으로 본다면 당 차원에서 신념을 가지면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더 유연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지 않을까. 언젠가 꼭 진보 대통령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박성호씨도 “권영국 후보에 대한 호감·지지 상당 부분은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에 대한 향수와도 엮인다고 생각한다”며 “노 의원은 노동자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보여주면서 진보 관련 이슈를 이끌고 나간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가 돌아가시고 그 이후 정의당의 모습은 정체성에 대해 반문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박씨는 “실망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가 그래도 권 후보가 대선 토론도 하고 유시민 작가의 발언도 당당하게 비판하는 걸 보며 '이분이라면 과거 노회찬에게 보냈던 노동자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면서 당을 이끌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진보정치의 확장에 힘써야 한다는 당부도 나왔다. 조영주씨는 “차기 정부는 내란이라는 명백한 범죄를 단죄하고 차별과 혐오를 끝마치는 정치를 해야 한다”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정부가 됐으면 하고 세대·계급·젠더 갈라치기하는 정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도록 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양당제의 끝은 극우의 세력화라는 것을 인식하고 진보정치의 확장이 민주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진보의 확장, 다양성 정치의 확장에 힘쓰는 정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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