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예지 틈의 사유] 감상의 역사

어린 시절, 가요를 무척 좋아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박남정, 이상은을 좋아했고, 고학년 때는 김건모를 좋아했다. 중학교 진학 후에는 팝송을 듣기 시작해서,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이나 크랜베리스(Cranberries), 노다웃(No Doubt)과 같은 멋진 여성 록커들의 노래를 사랑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내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주로 들었다. 노래 부르는 일이 최고의 취미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억나는 것 안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 내 플레이리스트에 딱히 재즈라고 할만한 것들은 없었다. 대학 진학 후에도 역시 재즈는 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나에게 재즈는 그냥 막연하게 김건모 음악의 어딘가에 묻어있는 색깔, 힙합·알앤비 동아리 활동을 하며 듣게 된 에리카 바두(Erykah Badu)나 질 스캇(Jill Scott)의 음악 어딘가에 영향을 준 요소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재즈는 나에게 그저 음악적인 '분위기' 정도였다.

한편 힙합·알앤비 동아리에서는 종종 공연을 했는데, 반주 음원 위에 노래를 하고, 랩을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실제 악기 연주에 노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신문 광고에 나와 있던 '재즈 아카데미'라는 곳을 발견하고 무작정 휴학을 했다.
'재즈' 아카데미였지만 딱히 재즈만 고집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원래 하던 대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나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알리시아 키스(Alicia Keys)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성학이나 시창, 청음과 같은 이론 수업 시간은 낯설었다. 내가 지금껏 생각도 해보지 않은 세계였다. 쉽사리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이런 것들을 몰라도 난 노래를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나의 무지(無知)를 합리화시켰다. 나에게는 '듣는 귀'가 있었다. 어떤 곡이든 잘 따라 부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다양한 장르의 합주에 많이 불려 다녔다
애당초 나의 목표는 실제 악기와의 합주였고, 그렇게 목표를 이루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럴 즈음, 보컬 수업의 선생님께서 <All Of Me>라는 곡을 과제로 내주셨다. 이건 누구의 노래일까? 당연하게 가수의 이름을 찾았는데, 웬걸 <All Of Me>를 부른 가수가 너무 많았다. 그중에는 보컬이 나오지 않는 연주곡들도 있었기 때문에 잘 골라서(?) 들어야 했다. 누가 부른 게 '원곡'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선 어디선가 들은 3대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사라 본(Sarah Vaughan),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버전을 들어 봤는데, 내 귀에는 어느 한 곡도 같은 곡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한 곡도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았다. 나름 듣고 따라 부르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던 나인데,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 당혹감은 단순히 곡의 난이도 때문이라기보다는, 대체 어떤 음이, 어떤 리듬이 '정답'이지? 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서 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엘라 피츠제럴드와 사라 본의 버전에는 스캣(scat)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가 연습해야 할 '노래'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때의 나에게는 '정답'이 없는 재즈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내 재즈는 나에게 재미없는 음악이 되었다. 난 '명확한 것'이 좋았다.

이후 처음 재즈 음반에 참여할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재즈에 대한 관심은 미미했다. '미미'했다고 말하는 것은 듣는 음악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다 보니 마음에 드는 음악들 중에서는 재즈의 영역에 걸쳐있는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이나 알 자로(Al Jarreau), 재즈 듀오인 턱 앤 패티(Tuck & Patti)를 좋아했다.
앞의 두 명은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 같은 짜릿한 퍼포먼스가, 턱 앤 패티는 턱의 신기한(?) 기타 연주에 톱니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패티의 가창이 좋았다. 무엇보다 이들의 음악 한 편에는 재즈와 팝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본격적인 재즈 청취의 세계로 옮겨가는 '관문'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재즈곡을 부를 일들이 운명처럼 계속 생겼다. 재즈곡을 부를 때의 나는 자연스럽게 '원곡'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연주 자체가 매번 달라졌기 때문에 내가 원곡을 고집하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떤 날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곡의 템포가 좀 더 빨랐고, 어떤 날엔 좀 더 느렸다. 어떤 연주자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달라졌고, 곡의 길이도 달라졌다.
내가 굉장한 능력자처럼 느껴지는 연주도 있었지만, 어떤 연주에는 첫 음을 뱉어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앞서 언급한 '정답'을 상정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날그날의 연주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연주자들의 플레이에 집중해야 했다. 미리 정해진 건 내가 그려온 허술한 악보뿐이었고, 그들의 플레이 안에 내가 찾아야 할 힌트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음악 청취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멜로디와 가사에만 집중하고 다른 악기들은 '전체적인 분위기'로 뭉뚱그려 들었다면, 악기를 하나하나 구분해서 듣기 시작했다. 합주할 때, 가창자로서의 위치를 찾기 위해 화성 진행을, 베이스 라인을, 드럼의 패턴을 들어야 했던 것이 일상의 음악 청취로도 이어졌다. 좀 더 적극적인 청취자가 되었고, 이어폰 속의 세계는 더욱 입체적인 공간이 되었다.
각 악기들이 차지하고 있는 독립적인 세계와 그 독립적 세계들의 배치가 바로 음악이었다. 특히 재즈는 다른 음악에 비해 그 배치가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아니, 더욱 유연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하겠다. 변화하는 배치, 그리고 다양한 사건, 그 사건을 마주하는 각자의 방식이 재즈였다.
유연한 배치 안에서 각자의 강약을 만들어내는 일, 정해진 질서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일이 재즈였다. 내가 재즈를 부르며 '정답'을 찾으려 했던 것이 무의미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나는 왠지 좀 더 자유로워졌다. 드디어 재즈 듣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뭔가를 '알게 되어서' 생긴 재미라기 보다는 오히려 '알 수 없어서' 생긴 감각이었다. 재즈를 듣는다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것들이 주는 안정감 대신, 매 순간의 예상할 수 없는 전개, 서로의 미끄러짐 안에서 생성되고 있는 하나의 '장(場)'을 맞이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만약 재즈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미 만들어진 결과를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과정의 한복판에 함께 놓여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연한 배치가 만들어내는 사건들, 그 사건의 펼쳐짐을 지켜보는 청취자는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그 불확실성 안에서 긴장을 함께 공유하는 관계, 사유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재즈가 그렇게 좋아졌다. 예측 불가하고, 어긋나고, 미끄러지고, 때로는 공백으로 남겨진 모든 것들에 굳이 내가 아는 어떤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그저 생성의 순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재즈는 더 이상 낯선 음악이 아니었다.

글, 칼럼니스트 겸 가수 남예지
문화콘텐츠학 박사, 재즈보컬리스트, 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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